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1   939

참여마당_ 삶의 길목에서: 삼인삼색, 다양한 가족들




삼인삼색,

다양한 가족들


고진하『참여사회』 편집위원 gojinayo@hanmail.net


노래 듣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뉴스도 안 보는 내가 주말 오전에 주부들이 나와 노래 자랑하는 프로그램만은 챙겨본다. 최근에 이 프로그램에서 우리 사회 가족의 다양한 현주소를 확인하고 기분 좋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출연자의 결혼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기혼여성만 출연할 수 있다. 그런데 어려보이는 한 출연자가 결혼식을 아직 못 올렸다고 밝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반사적으로 혼인 신고를 하고 살다 나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신부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부모님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인데 아기를 갖게 되어 결혼식보다 먼저 아기를 낳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시쳇말로 ‘속도위반 커플’인데 출연자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뿌듯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아기 엄마를 응원하러 무대에 올라온 아기 아빠도 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적인 인정을 의미하는 결혼식이나 혼인신고가 없었어도 생명의 잉태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확정하는 손색없는 요소임을 그들은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 주에 최고점수를 받은 출연자는 중량감 있는 체구와 폭발적인 가창력, 독특한 머리 모양으로 눈길을 끄는, 국제 결혼한 여성이었다. 배우자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구미나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국민이 아니라 파키스탄 남성이었다. 카메라가 방청석에 앉은 가무잡잡한 피부의 한 남성을 클로즈업 해주었다. 아시아 나라의 배우자를 맞이한다고 하면 ‘혼기 놓친 총각이 가난한 나라에서 신부를 맞아오나보다’ 하는 것이 통념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아시아권 남성과 결혼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편견과 눈총을 이겨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두 사람은 이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며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절정은 전 주의 승자와 그 주의 최고점자가 대결하는 마지막 부분이다. 마침 그 주에는 3주인가 4주 동안 연승가도를 달려온 실력파 주부가 파키스탄 남편을 맞은 그 주의 최고득점자와 격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연승 주부는 한국의 지방 도시로 시집와 살고 있는 일본인 여성이었다. 그는 그날도 역시 외국 태생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정도로 매끄러운 한국어 실력과 흠잡을 데 없는 노래 솜씨로 멋들어지게 한 곡조 뽑았다. 사회자는 방청석의 남편에게 부인의 노래를 어떻게 들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경상도 남자(태생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거주지는) 아니랄까봐, “잘 들었습니다” 하는 멋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에 남편이 말수가 적지 않으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일본인 아내는 “그런 편인데 가끔 ‘확’한다”며 남편이 은근히 다혈질 성격임을 내비쳤다.

같은 노래지만 부르는 사람마다 다른 맛이 나는 노래도 즐기고, 다양한 사연도 들으면서 우리 사회가 점차 다원화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도 그만큼 유연해지고 합리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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