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30   884

특집_유가 폭등이 미치는 영향: 석유파동의 기억보다 오늘이 더 무서운 이유

석유파동의 기억보다 오늘이 더 무서운 이유


김선미 참여연대 회원 windy1969@hanmail.net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공포가 있다. 흑백텔레비전 속에서 벌어지던 장면들은 전쟁이나 아비지옥을 연상시켰다. 석유 값이 폭등하고 시장의 물건들이 동이 나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파괴되어갔다. 가장이 직장을 잃고 가족이 붕괴된다. 평화롭던 이웃관계가 무너졌다. 석유파동이 장기화 되면서 벌어지게 될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린, 계몽적 성격의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것을 ‘엄마 없는 하늘 아래’보다도 애절하고, ‘전설의 고향’ 납량특집보다 소름 끼치게 기억하고 있다. 

살림 하던 친정 엄마의 생생한 기억

‘1차 석유파동’은 1973년, 내가 고작 네댓 살 때라 별 기억이 없다. 아마도 그 프로그램을 본 것은 1978~1980년 사이 2차 석유 파동직후인 것 같다. 나에게 석유파동은 텔레비전에서 본 공포물의 추억일 뿐이지만, 살림을 하던 친정 엄마의 기억은 생생했다. 당시 수원에 5층짜리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 집은 방마다 연탄아궁이가 있었다. 자가용이 있을 리 없고, 출퇴근이나 등하교 모두 걸어다녔으니 대중교통조차 이용할 일이 많이 없었다. 그나마 부엌에 있던 석유풍로조차 연탄 대신 가끔 재빨리 물을 팔팔 끓이거나 불 조절을 세밀하게 하는 요리에 쓰는 것 말고는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름이 아까워 끼니때마다 밥을 새로 짓지도 못하고, ‘스텐 밥통’에 한가득 담아 이불 속에 묻어두고 살았다. 어린 나는 밖에서 들어오면 아랫목에 묻어둔 밥통을 난로 삼아 끌어안을 때 느껴지던 온기 말고는 기억이 없다.

“사람들이 석유 값 오르면 나일론 값도 오른다고 면제품을 막 사두고 그랬어.”

지금과 비교하면 석유 의존도가 턱없이 낮았을 때인데도,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분위기였다고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외갓집 동네에선 기름보일러를 들여놓았다가 걷어내고 다시 아궁이 놓는 집도 많았지.” 엄마는 기억 속에서 주섬주섬 옛 이야기들을 뽑아냈다.

그런데 나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어린 시절 동화 같은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올 봄 우리 가족은 경기도 광주의 시골마을 단독주택에서 서울의 3층짜리 공동주택으로 이사했다. 기름보일러를 쓰던 시골집은 국제유가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 나오기 한 해 전에는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장작을 때는 열로 보일러를 순환시키는 난방 겸용 벽난로까지 설치했다. 10년 전 시골집에 이사 갈 무렵, 국제 유가가 배럴 당 40달러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우울하게 들었는데, 이제는 200달러를 육박하고 있다. 이웃들도 연탄이나 장작보일러로 난방 시스템을 교체하는 집들이 부쩍 늘었다. ‘기름 값이 오르니 주위에서 너도나도 기름 안 쓰고, 덜 쓰려고 갖은 애를 써서 주유소까지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며 단골 주유소 주인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때그때 유조차를 불러 기름통을 채워넣어야 하는 시골집에서는 실내온도조절기 눈금 하나를 올리는 데도 손끝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내복을 입고 두툼한 솜이불을 덮는 생활습관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이사한 뒤로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도시가스요금 청구서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얼마나 쓰고 사는지’ 실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한밤중에 기름이 똑 떨어져 날이 밝을 때까지 추위에 떠는 불편 따위는 이제 없을 것이다. 기름을 시킬 때마다 ‘생활비도 빠듯한데 1드럼만 넣을까 아니 오르기 전에 가득 채워둘까’ 하던 고민도 면한 것 같다.

석유, 지구의 온 몸을 쥐어짜 낸 에너지

그러나 나는 이 편리한 시스템이 불안하다. 체감온도와 기름 한 방울의 가격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게 오히려 무섭다. 자신의 행위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도 태연하게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실핏줄처럼 도시 곳곳으로 뻗어 있는 가스관과 전기선이 언제까지 우리에게 무한정 공급될 수 있을까.

도시로 이사 와 당장에는 난방용 석유를 쓸 일이 없어졌지만, 사실은 더 많은 석유를 쓰게 되었다는 것도 요즘 깨닫는다. 호박잎이나 돌나물, 쑥 같이 마당 어디에나 지천으로 돋아나던 것을 돈을 주고 사먹게 되면서, 결국 ‘내가 석유를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기름 값이 폭등하고 채소류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다. 그나마 우리 집은 대부분의 먹거리를 생협에서 공급 받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덜한 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동네 슈퍼라도 가야할 때면 정말이지 지갑 열기가 무서워진다. 태양이 기른 제철 과일과 채소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철모르는 채소들은 그야말로 온전히 석유를 때서 기른 것들뿐이기 때문이다. 또 날마다 볕에 이불을 내다 널어 저녁에 그 이불에 누우면 느껴지던 바람 냄새와 푸근한 감촉도 도시는 용납하지 않았다. 좁은 베란다로 고양이 오줌만큼 지나가버리는 옹색한 햇볕에는 도저히 일광소독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 창밖으로 마음껏 먼지를 떨어낼 수도 없다. 도시 사람들이 왜 비싼 전기세를 물면서 스팀 청소기와 세탁기를 많이 쓰는 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된 데에는 왕복 120여km에 이르는 출퇴근 거리 때문에, 길 위에 펑펑 기름을 쏟아붓는 일이 부담스러웠던 탓도 있다. 이제는 적어도 교통비로 인한 에너지 소비만큼은 눈에 띄게 줄였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도시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석유 의존을 강요하고 있다. 현대 문명은 결국 오늘 머리 위에 떠 있는 찬란한 태양빛은 가리고, 대신 수억 년 전 땅속에 묻혀 있던 태양 에너지를 뽑아쓰면서 엄청난 돈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석유는 수억만 년 동안 쏟아져 내린 태양빛이 지구 안에 응축된 것이다. 결국 지구의 온 몸을 쥐어짜 낸 에너지인 것이다. 인류 조상들의 뼈와 살이 녹은 지구의 ‘과거’를 들쑤셔내 연소시키면서 우리가 문명의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한 결과는 무엇인가. 이산화탄소 장막으로 푸른 하늘을 뒤덮는 일이었다. 결국 잠자는 과거의 태양을 끌어내 미래의 태양마저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앞에 닥친 문제는 단순히 석유가격이 얼마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석유로부터 자유롭게 살았으면서도 기름 한 방울 쓰는 일에 벌벌 떨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으로 도배하고 사는 우리는 너무도 무심하고, 무모하다 싶도록 용감하다. 나는 그 점이 무섭다. 어린 시절 보았던 흑백텔레비전 속 영상보다 처참한 현실이 이미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방방마다 쫓아다니며 안 쓰는 플러그를 뽑으며 잔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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