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0월 2008-09-01   1665

회원 인터뷰_송영민, 명광복 회원: 촛불 밝히니 세상이 책이 되었다

회원 인터뷰

송영민·명광복 회원
촛불 밝히니 세상이 책이 되었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mairim@hanmail.net

뜰이 슬퍼한다./ 차갑게 꽃 속으로/ 빗방울이 스며든다./ 마지막 길을 향하여/ 여름은 조용히 몸서리친다.//…(중략) 여름은 조용히/ 그 고달픈 눈을 감는다. (헤르만 헤세 <9월>)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결에 가을빛깔이 언뜻언뜻 보인다. 하지만 한낮엔 쉽사리 제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여름이 한창이다. 마지막 열매를 영글게 하고, 마지막 단맛을 넣기 위한 은총의 열기를 뿜어댄다. 온 천지에 골고루 평등하게.

서울을 품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의 한 자락 야트막한 낙산(혜화동 일대). 대낮, 승용차도 헉헉대며 오른다. 가난한 살림살이가 빛의 화살에 숨김없이 드러난다. 길모퉁이에 널려 있는 후줄근한 빨래들. 한 그루의 나무 그늘보다는 물건을 재어두는 공간이 절실하고, 엘리베이터보다는 건강한 다리가 필요한 건물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동네이다. ‘촛불부부’로 회자되는 송영민·명광복(38세) 회원들의 일터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이다.

당황스런‘인터뷰’논쟁

옥탑으로 들어서니 가지 꺾인 향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공중에서 흙 한 줌으로 살아가는 나무의 고달픈 여정이 안타까웠지만 주변엔 저절로 돋아난 풀꽃들이 한 세상을 살고 있었다. 메꽃· 봉숭아· 벌개미취· 금계국…. 하나같이 성형미인이 아닌 꽃들이 아낌없이 햇살을 나누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곳곳이 하늘공원들이다. 지상에 땅 한 뙈기 갖기를 소망하는 이들의 꿈이 천상까지 닿아 수풀을 이룬다.

분명 TV 화면용 선남선녀는 아니었다. 반바지와 청바지에 핑크빛, 감청색 티셔츠, 찬물로 막 세수를 한 듯한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참여연대 전직 간사 출신의 부부. 부부라기보다는 남매 같다. 오랜 산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시간과 함께 먹은 달력의 나이가 아닌 정신적 나이, 지성의 나이가 서로를 닮게 한 듯하다. 출판사 대표의 직함을 가진 송영민 회원, 직장 동료이자 남편인 명광복 회원.

한집(?) 식구 같은 느낌이 들어 긴장감 없이 자리를 마주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갈 때의 당혹함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순발력이 지능지수를 앞지른다는 걸 감지할 게다. 필자에겐 두 가지 모두가 하위 순위이니 어떡하랴.

지면의 주인공이 된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한다. 더구나 스스로 ‘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사전에 겸손하게 거절을 하는 사람들도 막상 눈을 맞추면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 명광복 회원에겐 단호함이 겸손함을 누르고 있었다. ‘촛불부부’보다는 촛불집회의 부상자를 찾아 인터뷰하는 게 순서 아니냐는 느닷없는 첫 마디다.

그의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비록 몸은 다른 곳에 있지만 ‘동지’처럼 살아가는 회원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라는 송 대표의 설득 아닌 설득 끝에 자리는 평정되었다. ‘돈벌이’보다는 출판인의 정신- 사람을 귀히 여기는-이 깃들여 있는 출판사 대표다운 배려였다.


 
 

베스트셀러 읽는 재미와 감동 준 촛불집회

‘촛불부부’로 명명되고 있는 걸 부부는 공히 불편해했다.
“집이 청와대 근방에 있어요. 일이 끝나고 가는 길목이 집회장인데 자연스럽게 참가하게 되었지요. 또 같이 일을 하니까 함께 가는 건 당연하고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양심이 빛을 발한다. 조계사 촛불농성단에서는 송영민 회원을 ‘커피녀’로 부른다. 불볕 천막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자 들락거리며 일거리를 찾았다. 초기에는 시민들의 지지와 각 단체의 관심이 봇물을 이뤄 농성단도 힘이 넘쳐났다. 각종 먹거리와 음료수, 일용품, 빨랫감을 걷어가는 사람,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농성장이었다. 그 가운데 그는 냉커피 배달을 맡았다. 그것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산 ‘착한 커피’로. 오늘까지 변함없이.

“특별한 일이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가 마시려고 내리는 커피의 양을 좀 늘려서 시원하게 해다 주는 것이었는데, 저를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매사가 이런 식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머리보다는 발이 먼저인 사람들이다. 본인들이 듣기 거북해 해도 ‘촛불부부’로 칭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다. 일상이 물 흐르듯 흘러가니 선(善)은 항상 그들 편이지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하고 변덕스럽다. 명광복 회원의 해학이 번쩍이는 발언에 가슴이 서늘했다.

“촛불집회 최대의 피해자는 출판업계입니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누가 책을 사서 읽겠어요? 한 대형 서점이 50% 가까이 매출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라던데 출판업계가 오죽 했겠어요. 더구나 불황의 바로미터가 출판업계인데.”

그래도 그들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들떴다. 비록 생업에는 지장이 있더라도 애초 시작이 가난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기에 두렵지는 않았다. 용기 있는 출발이 아니었던가.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음을 아는 것이리라.

가난하지만 더불어 사는 행복을 느끼는 일, 시민운동이 고민하는 주제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서 넓고 두터운 독자층을 만난다면 그것은 시민단체 회원이 늘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연 출판사. 그것이 이들의 출판 철학이라면 철학이란다.

출판도 시민운동 키우는 일

공안정국과 더불어 소강상태에 들어선 촛불집회에 대한 소회가 궁금했다. 항상 먼저 말하는 쪽은 송영민 회원이다.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순수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정권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어요. 한나라당, 창조한국당,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주부,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정당과 관계없이 자신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하여 나온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정권 퇴진을 위해 나온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재협상을 요구하며 정부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렸는데 추가협상이라는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 국민의 소리를 외면한 거잖아요. 그러니 현장의 소리는 더욱 극렬해지고, 정권의 위기를 느낀 보수층들은 사주하는 조직적인 세력이 있다면서 정부의 탄압국면을 거들었죠.”


  

눈빛 하나로 명광복 회원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촛불집회는 강제성이 없으니 자유로울 수밖에 없죠. 시민들 스스로가 한 행동이잖아요. 싫으면 안 나오면 되고, 버스를 끌 사람은 버스를 끌고,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였죠. 시위를 이렇게 하라고 주도하는 사람도 없고 대책회의(광우병대책회의)도 집회의 안전망 같은 역할을 자임하고 궂은일을 할 뿐이었지 조직적인 힘은 없었죠. 또 시민들은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고. 앞장서서 스크럼을 짜고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머릿수라도 채워야 한다는 맘으로 나갔는데… 전방위적인 탄압을 하니 시민들은 무섭잖아요. 사람들은 이 정도로 했으니 대통령이 무슨 답을 주겠지 하는 기대를 했죠. 그런데 결과는?”

   

     

좌중 모두가 허탈한 웃음을 날렸다. 촛불집회의 과정을 보면서 정반합(正反合)이라는 철학 용어를 떠올렸다. 촛불여론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하여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민심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대립과 갈등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보다는 공권력으로 민심을 짓밟아버렸다. 진보된 합의를 못 이룬 정부를 민주정부라 할 수 있을까. 소수의 가진 자들과 소통만 하는 정권을 다수가 지지를 할 수 있을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을 뿐이다.

침울한 분위기에 휴대전화의 경쾌한 음악이 자리를 흔들었다. 마무리를 할 상황이 된 듯했다. 촛불집회를 통해 출판인으로서 발간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리고 마지막 질문-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주문했다.

“촛불을 꺼도 좋도록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잖아요. 책 내는 일은 천천히 생각할 거예요. 지금 생각으로는 대책회의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시민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게 궁금해요.”

이어 명광복 회원이 말한다. “시민운동 흥망사 같은 걸 내고 싶어요. 저는 이번에 시민운동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 유화적인 정권 하에서는 시민운동이 열려 있는 공간에서 크게 다루어질 수 있지만 공안정국으로 가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부부는 허허롭게 웃으며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에는 한 목소리를 냈다. 실무에 매몰되지 않았나, 체계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 하고 뒷줄에만 서 있지 않았나, 먼저 깃발을 들었어야 하지 않았나, 회원가입이라도 많았어야 했는데…. 한 식구다운 비판이었다.

‘커피녀’는 또 조계사로 향할 준비로 분주했고, 옥상 가득 쏟아졌던 햇살에는 바람기가 살랑거렸다. 여름은 조용히 그 고달픈 눈을 감듯이 탄압정국에도 필경 끝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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