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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12월
  • 2008.12.04
  • 1525
  • 첨부 6




감동이 밥 ‘멕여’ 주냐고 묻지 말라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ikik1955@hanmail.net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우국(憂國)의 마음으로 자신이 경험해 알고 있는 경제지식을 토대로 깜냥껏 직언을 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대중들이 그의 말에 너무 큰 신뢰를 보내며 일희일비하자 권력이 불쾌와 질투를 표했다. 권력의 그런 옹졸함에 진저리를 느낀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하면서 비장하게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이제 대한민국을 지우겠다”고. 그런데도 그에 대한 신뢰와 인기는 더욱 열렬해졌다.

2008년 겨울 벽두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글줄이나 읽는 보통사람들은 지금 미네르바의 ‘새 글’을 원하지 다른 글들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황당한 계절에 지난 여름에 이어 다시 책 소개를 하게 된 게 조금은 난감하다. 이 지면의 책임자와 “위로의 책을 소개할 것이냐? 아니면 이럴 때일수록 ‘바로 보기 위한 책’을 소개해드릴 것인가?”, 의논했다. 며칠 고민하다가 나는 어설픈 위로나 습관적인 비판의 책보다도 ‘감동의 책들’을 소개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필자가 소개하는 책들이 미네르바의 글보다 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감동이 밥 ‘멕여’ 줄까? 지금은 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때다. 그러나 고래로 책 읽는 사람들은 최소한 밥은 먹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최소한 밥은 먹는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미네르바가 제공하는 정보와 예측만큼이나 삶에 대한 평형감각과 자기응시의 시간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종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종일까?”라는 내용으로 채워진.


가난한 어린이들과 젊은 지식인의 우정의 회상록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정말’이나 ‘참으로’ 같은 부사를 마구 남발해 소개하면서도 그 남발이 과히 부끄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을 영역한 성공회대 조병은 교수가 권말에 쓴 글에 김명환 교수의 말로 밝혔듯이 이 작품은 ‘신영복 문학의 백미’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시대를 뒤덮었던 음울한 공기를 문득 시퍼런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그의 또 다른 책, 『더불어 숲』이 우리 시대에 던졌던 감동과는 또 다르다. 육군사관학교 시간강사가 사형언도를 받을 정도의 빨갱이로 간주된 뒤, 무기로 감형을 받은 뒤, 198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자그마치 20년. ‘어른’이 많지 않은 우리 시대, ‘신영복’이라는 ‘어른’이 준 감동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보낸 끔찍하게 긴 세월의 영어생활을 분리해 이야기하면 그것은 경솔하고 무례한 이해이거나 어쨌든 모독이 된다.

이 작은 이야기는 그가 감옥에 가기 전에 만났던 가난한 어린이들 여섯 명과 젊은 지식인 사이에 오고갔던 우정의 회상록이다. 실제 사형집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감옥 바닥에 엎드려 재생휴지에 써내려간,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추억의 생환(生還)’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피워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특별하게 비뚤어지지 않은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하는 훈훈한 감동에 천천히 몸이 달궈진다. 그 온기는 석유난로의 온기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화롯불의 온기 같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필 수 있는 우정의 모든 내용과 조건을 이 작은 이야기는 다 담고 있다. 계급이나 계층이 달라도 만약 예의만 잃지 않는다면, 참다운 우정에는 나이 따위가 장애이긴커녕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그러나 애달픈 사랑처럼 그런 들국화같은 우정도 세월의 단애에 침식해 아득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만약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면, 사람은 노력할 수 있는 한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이 책은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전한다.

자주 정신 나간 담론에 빠져 있고, 옹졸할 뿐 아니라 타락하기까지 한 한국문단은 그러나 우리 시대의 이 아름답고 빼어난 작품을 ‘문학’으로 온당하게 예를 갖출 태세가 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자 여러분은 한때 그의 육필서간집『엽서』에 실렸다가 최근에 다시 예쁜 단행본으로 재출간된 이 아름답고 기품 있는 책을 꼭 구해, 가족 모두와 돌려 읽기 바란다. 집안이 훈훈해질 것이다.


참으로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책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가방끈’이 짧았다. 학교에 다닌 시간이 짧았으므로 독학을 해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의 지성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 이 한 세상을 견뎌내고 자신을 실현하기란 얼마나 힘든 노릇일까? 그런데 주제 사라마구가 그 일을 해냈다. 그의 3부작이라 일컫는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중, 이 책이 첫 번째 책이고, 가장 유명한 책이다. 지난 11월에 이 작품으로 만든 영화도 수입되었다. 그의 소설에서 특정한 시간과 구체적 공간을 기대하면 안 된다. 공상과학소설도 아니면서 그는 가상의 공간, 이른바 그만의 ‘소설공간’에서 섬뜩하고 기이한 상상력을 펼친다. 그런데도 그 공간은 역사시간이나 실제 공간 못지않게 구체적이다. 특히 젊은 날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주제 사라마구가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는 시각을 유심히 살피노라면 우리 현대사가 겪은 체험이 떠올라 전율을 느끼게 된다. 가까스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첫해 겨울,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이야기는 이내 우리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한 도시가 있다. 한 사람씩 눈이 멀기 시작한다. 당국은 눈 먼 사람을 격리시킨다. 나중에는 장님들을 격리시킨 권력자들도 다 눈이 먼다. 눈이 멀면서 눈 뜨고 살 때에는 몰랐던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 사람도, 사회도 서서히 추악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유독 눈먼 창녀 한 사람과 눈이 멀지 않는 유일한 여성인 안과 의사 부인만 끝까지 ‘인간성’을 지킨다. 나중에는 눈먼 사람들을 돌보고, 야수가 되어버린 자들로부터 지키는 일이 너무나 힘겨워 자신도 어서 눈이 멀고 싶어하는 한 여성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고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의 추악함과 숭고함이 괴테나 단테 식으로, 혹은 칸트처럼 고답적으로 표현되지 않아서 이 책은 결국, 참으로 독창적이면서 도전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가슴을 두드려 패는 '진짜 책'


호이나키는 ‘또라이’다. ‘가방끈’이 상당히 긴 사람이었는데도 그는 긴 ‘가방끈’으로 얻을 수 있는 ‘종신 교수직’이라는 명예와 안락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성자도 아닌 사람이 자발적 고행으로 자신의 삶을 채웠다. 평생 폼 잡고 뻐기며 살 수도 있었는데 그는 몸을 쓰며 살기로 결심했다. 뭣 때문이었을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정의야말로 각인각색의 신기루일지도 모르는데, 그는 왜 그런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을까? 그것이 공부한 자의 책무라고 생각했고,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웬델 베리가 말한 ‘덕 있는 삶, 독립적 인격, 자신감의 원천’을 그는 육체노동에서 발견한다. 그런 점에서 영문학자인 이 책의 역자가 붙인 제목은 호이나키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된다. 그 험난한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라는 대목이 바로 그렇다. 비틀거리지 않고 뚜벅뚜벅 당차게 잘 걸어간 정의의 사도가 이 긴 인간사에 어디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호이나키가 이른 인식과 그 끔찍하고 유별나게 가혹한 실천은 답답할 정도이고, 급기야는 무섭기조차 하다. ‘타자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라는 라깡 식의 통찰은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에도 간혹 남들이 부러워하는 욕망을 잘 실현해놓고선 어느 날 적당히 소문을 내면서 그것을 버리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 호이나키처럼 그 이후의 시간을 채운 내용들이 치열한 것 같지는 않다. 대체로 명망가들의 자기포기는 또 하나의 쇼이기 십상이었다.

이 책은 읽기가 매우 어려운 책이다. 카프카처럼 말해서 도끼로 얼음을 깨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을 두드려 패는 ‘진짜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겁하고 흐리멍덩한 삶과 견줘보려는 투혼으로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된다. 호이나키 같은 ‘또라이’를 만든, 더 지독한 대선배를 책의 끝부분에서 만나게 된다. 아나키스트 애먼 해나시가 바로 그이다. 그의 거듭되는 지독한 일인시위로 미국 뉴욕의 강제적인 방공훈련이 없어졌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한 시도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혁명이다.’ 그는 그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믿었다.” 호이나키의 멘토가 한 말이다. 이러한 ‘또라이’들에 의해 비겁하고 안일하고 자기변명을 일삼는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가 조금씩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면 안 된다.


까닭 없이 부끄러워지고 처연해지는 백석의 시

우리에게는 ‘소월’도 있고, ‘지용’도 있고, ‘윤동주’도 있고, ‘한용운’도 있다. 그뿐인가. “일본이 이토록 일찍 망할 줄 몰라 친일했다”고 하더니만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을 예찬하던 힘에 대한 굴종이 체질로 육화된,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시인인 ‘미당’조차 있다. 저 멀리로는 ‘황진이’도 있다(시를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황진이’를 빠뜨릴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 이 엄동설한에 소개하고 싶은 시인은 단연코 ‘백석’이다.

전집이라 시집 같지 않게 두껍지만 자주 만져 가장자리가 좀 해어진 나의 『백석전집』을 펼치자마자 오늘 밤, 나타나는 노래는 32쪽의 「흰 밤」이다.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전문)

이런 시를 조선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나는 50대 중반의 양띠다. 아직 상당히 젊은 나이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이 시의 서늘한 정취를 느낀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선 내 딸애들이 이 시를 나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나보다 먼저 여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흰 밤’을 모두 체험한 세대들이다. 그래서 이른바, ‘민속적 상상력’이라 그의 시세계가 요약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백석을 느끼고, 백석의 정서와 같이 살았던 이들이 모두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잘난 ‘근대’를 얻고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의 시만큼이나 슬픈 일이다.

어쨌거나, 뭐니뭐니해도 백석으로 떠오르는 구슬픈 절창은 남들이 모두 이 시를 입에 올리든 말든,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잃고, 또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로 시작해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로 끝나는 시, 말이다. 순정한 마음으로 시가 끌고 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서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내야 마땅할 것만 같은, 백석의 남신의주 박시봉방, 말이다.

비련의 사랑이 원인이 되어 낭인으로 만주벌판을 헤맬 수밖에 없었던 끔찍하리만치 비참했던 시인의 삶은 아무나 ‘시인의 운명’을 수락할 수 없다는 것을 숙연하게 확인하게 한다. 백석을 읽노라면 까닭 없이 부끄러워지고 처연해진다. 이 처연함도 그러나 우리 삶을 이루는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방대하고 치밀하면서도 극적인 책

청년 카네티가 처음 ‘군중’을 만난 것은 19살 때였다. 1924년 국수주의자들에 의한 독일 외상 라테나우 암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였다. 그는 경악했다. 그것은 성난 물결이었고, 뜨거운 화염이었으며, 동시에 세찬 질풍이었다. 군중은 바위처럼 단단하면서도 비누거품처럼 쉽게 부서지기도 해서 더욱 카네티를 전율시키고, 경악시켰다. 그는 이때의 체험을 이렇게 말한다.

“이 군중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군중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내 피부로 이 군중을 느꼈고, 이 군중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때까지 군중을 마치 나를 향해 습격해오는 것 같은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때에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 어떤 저항하기 힘든 힘에 의해 군중 속으로 빨려들어가 나 자신이 군중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데모가 끝나 군중이 해산하고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갈 때, 나는 나 자신이 지금까지보다 가련한 존재가 되고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고 만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3년 후인 1927년, 카네티는 다시 군중 속의 하나가 된다. 성난 시민들이 빈의 법무성 건물을 불태워버릴 때, 그 시위에 참여했던 체험이었다. 카네티는 이 체험으로 말미암아 바스티유의 폭풍우에 대해 책을 통해 보지 않아도 이해해버린다.

이 두 번의 운명적인 체험 이후, 그는 35년여 간 ‘군중연구’에 자신의 삶을 투신한다. 가히 필생의 작업이라 할 만하다. 이 장엄한 책은 실로 방대하고, 치밀하면서도 극적이다. 어마어마한 자료와 넘치는 인용과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카네티만의 독창적이고 깊은 통찰로 점철되어 있다. 문학, 종교, 인류학, 심리학, 생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카네티는 ‘군중의 물리학’ ‘권력의 정신분석학’을 완성했다. 그래서 세상은 그가 쓴 시나 소설 때문에 그를 시인이나 작가라 말해야 할지, 그가 쓴 희곡 때문에 극작가라 말해야 할지, 이 경이로운 책 때문에 사회과학자라 말해야 할지, 그의 방대한 지적편력으로 말미암아 인류학자라 말해야 할지, 끝내는 사상가라 말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그러나 그는 어떤 학파, 어떤 체제(장르),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자신이 헐값으로 분류되기를 완강하게 거절했다. 단지 ‘카네티’라는 한 정신을 그는 자처했던 것 같다. 1960년, 책이 발간되자 이 놀라운 노작은 곧 ‘20세기의 서양고전’으로 자리매김되면서 그의 생전에 불멸의 가치를 얻게 되었다. 그를 일러 20세기의 ‘르네상스적인 인간’이라 말하는 연유가 여기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결국 이 놀라운 정신이 이 작업과 함께 수행한 소설 『현혹』에 노벨문학상 수여라는 형식으로 최소한의 예를 갖춘다.

필자가 접한 『군중과 권력』은 반성완 선생이 번역한 1982년 한길사 초판본이었다. 550쪽에 달하는 책을 읽고 난 뒤에 쓴 메모를 펼쳐보니, ‘1992년 3월 2일’에 이 책을 완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몇 달에 걸쳐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어디 있었고 뭘 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었을까? 직장에 매이지 않고 살던 그즈음 내게 의료보험증은 있었을까? 어떻게 이토록 벅찬 치열한 정신을 만날 염을 냈고, 이 책에 무수히 밑줄을 그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간정신에 대한 경탄과 새로운 발견의 기쁨과  내 정신의 초라함과 편벽,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데 대한 절망을 직시했을 것이다.

학원사판도 있고, 한길사판도 있고, 모두 절판된 뒤 펴낸 바다출판사판도 있다. 하지만 바다출판사판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이 책은 오래된 도서관이나 ‘양식 있는 헌책방’에 가야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나라 새 책방에는 정말 나무에게 너무나 큰 죄를 범하고 있는 쓰레기들이 범람한다. 그건 그렇다손치고, 찾아 읽으려는 뜻만 있으면 그러나 반드시 이 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봄의 우리 촛불집회를 ‘군중’이라 해야 할 것인가, ‘공중’이라 해야 할 것인가, 누군가 이 책을 인용하면서 쓴 칼럼도 있었다. 이런 책을 한번 접하고 나면,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것과 혹 어쩌다 책을 펴냈더라도 책을 펴내기 전보다 더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독자는 그러나 특별히 무장할 필요가 없다.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위대한 저작을 읽어나가면 될 것이다. 반드시 그 정신이 격랑을 만난 뗏목처럼 요동칠 것이다.


청구회 추억
| 신영복 (지은이), 김세현(그림), 조병은
| 돌베개 2008년

눈먼 자들의 도시
| 원제 Ensaio sobre a Cegueira/Blindness
| 주제 사라마구(지은이), 정영목(옮긴이)
| 해냄 2008년(개정판41쇄)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 원제 Stumbling Toward Justice
| 리 호이나키 (지은이), 김종철 (옮긴이)
| 녹색평론사 2007년

백석전집
| 백석 (지은이), 김재용 (엮은이)
| 실천문학사 1997년

군중과 권력
엘리아스 카네티 저/강두식,박병덕 공역 | 바다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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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한번 사서 읽어 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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