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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12월
  • 2008.12.04
  • 1300




뉴라이트의 등장과 시민사회의 변화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socioshin@cau.ac.kr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신문 지면과 네티즌들의 글에 ‘뉴라이트’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오르내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 뉴라이트 쪽 인사들을 정부조직의 핵심 직위에 대거 임명했고, 뉴라이트 인사들과 회동을 가졌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촛불집회가 한창이었을 때는 뉴라이트가 다른 보수단체들을 규합하여 연대조직을 만들고는 ‘애국’, ‘구국’을 외치며 맞불집회라는 걸 개최했다. ‘대한민국 헌법1조’와 ‘민주공화국’을 노래하는 촛불시민들에 대항해서 이들은 ‘부시환영 애국시민연합’을 결성했다. 흥미로운 애국자들이다. 그 뒤 8월 15일이 다가오자 뉴라이트는 ‘건국60주년 기념행사’라는 걸 대대적으로 개최하면서, 일제강점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지우고 이승만·박정희 독재체제를 찬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른바 ‘역사교과서 논쟁’이 불거졌다. 뉴라이트라는 일부 학자들은 현행 교과서들이 친북·반미·좌경 사상과 자학사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에 부응하여 기한이 한참 남은 검인정 교과서를 수정하려 했고, 이에 반발하여 역사학자 660명이 수정 반대 서명을 하고 역사교사들과 해외 역사학자들도 반대 운동에 나섰다. 많은 네티즌들은 뉴라이트를 ‘친일매국노’로 규정하면서 격앙했다. 이처럼 뉴라이트는 사회 곳곳에서 끝없이 도발하면서 분란과 증오를 키우고 있다.

시민입법 가고 보수우익 입법시대 오나

중앙정치와 정부영역에서도 뉴라이트는 핵심 권력으로 부상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호전적인 ‘젊은 우익’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나성린 한나라당 국회의원(현재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화싱크탱크원장), 신지호 한나라당 국회의원(전 자유주의연대 대표), 조전혁 한나라당 국회의원(전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부여된 국정 임무는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목을 죄고, 보수우익에 반대하는 모든 사회세력을 무장해제시키는 법안을 만드는 일이다. 시민입법 운동의 시대는 가고 이젠 보수우익 입법의 시대가 도래했다. ‘중견 우익’들의 활약도 그에 못지않다.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현재 바른사회시민회의 고문), 유석춘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전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이석연 법제처장(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 제성호 외교통상부 인권대사(전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등 많은 뉴라이트 인사들이 정부·여당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이후 곳곳에서 ‘뉴라이트’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고, 그들의 도발에 시달리고, 또한 그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해온 사람들이며, 이 나라에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총체적 사회 변화 노리는 ‘우익사회운동’

‘뉴라이트’라는 명칭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닐뿐더러, 결코 한국에서 처음 탄생한, 한국 보수우익의 고유한 창조물도 아니다. 뉴라이트는 이미 1960년대부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구미 여러 나라에서 등장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흐름이다. 이것은 참으로 ‘국제적인’ 현상이었는데, 왜냐하면 미국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들을 지칭하는(혹은 자칭하는) 이름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우익’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뉴라이트’(New Right), 독일의 ‘노이에 레히테’(Neue Rechte), 프랑스의 ‘누벨 드로아트’(Nouvelle Droite), 이탈리아의 ‘누오바 데스트라’(Nuova Destra) 등, 번역하면 모두 ‘새로운 우익’ 혹은 ‘신우익’(新右翼)이다. 이들의 등장배경과 성장과정, 이데올로기와 정치전략은 한국의 뉴라이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유럽과 미국에서 뉴라이트 운동의 공통점은 이들이 진보적 또는 자유주의적 방향의 사회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와 구분되는 핵심 지점이다. 사실 뉴라이트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올드라이트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뉴라이트와 구분되는 의미에서 올드라이트는 진보적 세력의 도전이 강해지기 이전까지 보수적 전통을 대표하면서 구(舊)지배체제의 중요한 권력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회집단이다. 이들은 굳이 ‘운동’(movement)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운동이란 사회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제도외적 집단행동이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사회체제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고 보수우익 세력이 그러한 체제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에는 단지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필요할 뿐이지 뭔가를 변화시키려고 운동을 벌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올드라이트에게는 ‘우익=보수’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그러나 진보적 정치세력과 시민사회 집단들에 의해 사회구조와 문화지형이 변함에 따라 이 등식은 깨졌다.

1960~7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는 탈권위주의 운동, 페미니즘 운동, 환경운동, 반전·평화운동, 흑인민권운동, 반(反)권위주의 교육운동 등 다양한 시민운동들이 삶과 노동의 일상세계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그와 같은 총체적인 사회변화 속에서 사회의 보수우익 세력들은 단지 방어적으로 기존의 것을 지키는 데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고, 이미 변화된 사회현실을 공격적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사회정치적 권력을 회복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한 뉴라이트 운동들은 진보적 사회운동에 반발하고 대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제도와 문화의 진보적 요소들을 전면적으로 공격하는 그들 나름의 사회변혁의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 운동은 단지 ‘운동에 반대하는 운동’(counter-movements)이 아니라, 사회체제와 문화·의식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기획을 추진하는 ‘우익 사회운동’(right-wing social movements)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극에 달한 보수 위기감이 낳은 뉴라이트

한국에서 ‘뉴라이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특히 노무현 정권 중반기이자 탄핵 후폭풍으로 보수 정치세력이 심각한 위기에 빠진 2004~2005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이 유럽의 뉴라이트나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을 과연,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참조했는지는 연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다만 분명해보이는 것은 진보적 사회개혁에 대한 반격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뉴라이트는 구미의 뉴라이트와 유사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뉴라이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특히 노무현 정권 하에서 결집되었는데, 거기에는 한국 보수우익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이른바 ‘386’이라고 불리는 운동권 출신 인물들이 정치권력의 중심부로 대거 진입했을 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지식인들과 전문가 집단이 정부·사회기관 곳곳에서 지위를 획득했다. 진보적 시민사회 단체들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계속 견지했지만, 이슈에 따라서는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 참여하여 일종의 개혁동맹을 구성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수십 년 동안 기득권과 사회적 발언권을 독점해온 보수우익 세력은 이런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위기감을 느낄 만했다. 그런데 특히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가 정권붕괴는커녕 오히려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불러일으킨 데다, 곧이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다. 이에 보수 진영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한국 보수우익은 ‘군사독재의 협력자’, ‘부패한 차떼기당’, ‘반동수구 세력’, ‘반(反)민주·반(反)헌법 세력’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에서 모든 권력과 영향력을 상실할 것처럼 보였다. 뉴라이트는 바로 이 시점에 태어났다.

진취 개혁 포장하고 정권 실정 틈타 확산

이처럼 위기로부터 탄생한 뉴라이트가 매우 빠른 시간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여기에는 뉴라이트 자신의 효과적 전략과 외적인 환경요소들이 함께 작용한 듯이 보인다. 우선 뉴라이트는 보수·반공·권위주의와 같은 옛 이념과 정체성을 전혀 버리지 않았으면서도,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노무현 정권과 진보 시민단체를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뉴라이트 진영이 반공 이데올로기와 친일·친미 이념, 시민들에 대한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2008년 촛불집회를 겪으면서야 일반 시민들에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기 이전까지 뉴라이트는 자유·자율성·개방·다양성·효율성 등 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전면에 부각시켰고, 선진화·일류국가·경제성장 등을 약속하면서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이러한 시도가 3~4년의 짧은 시기 안에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만든 외적 요인은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이다. 노무현 정권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다 많은 정의와 평등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기대를 배신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여론에 도발하는 발언과 행동을 반복했다. 이들은 시민사회의 폭넓은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가야만 했던 방향에 완전히 역행했다. 이에 반해 뉴라이트는 강경한 반북(反北) 담론으로 다수 국민의 보수적 외교안보관에 호소했고, 노무현 정부와 진보진영 전체에 친북용공의 낙인을 찍었다. 그와 더불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중산층 몰락, 청년 실업, 경제적 불안, 양극화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공략하면서, 친기업·신자유주의 정책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켰다.

위와 같은 정치전략은 조선·동아·중앙일보 등 막강한 대중적 영향력을 갖는 보수 언론을 통해 매일같이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주요 종합일간신문의 신구(新舊) 보수단체들에 관한 보도 빈도를 보면, 보도 빈도가 가장 높은 상위 10개 단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재향군인회, 뉴라이트전국연합, 교과서포럼, 자유주의연대, 선진화국민회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 자유기업원, 신노동연합(뉴라이트신노동자연합), 뉴라이트재단 순이다. 이 중에서 7개가 뉴라이트로 분류할 수 있는 단체다. 이처럼 뉴라이트는 신문지상을 통해 자신의 핵심 상징과 담론, 정치적 비전을 시민들에게 전달했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한 예로 2005년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수행한 ‘2005년 파워조직 25곳 영향력-신뢰도 조사’에서 뉴라이트는 영향력에서 19위, 신뢰도에서 12위를 차지했다. 자유주의연대나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이 2004~2005년에 창립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놀랍도록 빠른 성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느슨한 ‘네트워크’와 탄탄한 ‘전국연합’

2004~2007년에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조직체는 ‘뉴라이트네트워크’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이다. 뉴라이트네트워크는 2004년 창립한 자유주의연대를 중심으로 하여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교과서포럼,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자유네티즌협의회폴리젠 등을 포함하는, 문자 그대로 느슨한 ‘네트워크’다. 이 중 핵심 단체인 자유주의연대는 국가의 기업규제와 분배정책, 복지정책을 신랄히 비판하는 급진적인 시장자유주의 이념을 표방했으며, 그와 동시에 공격적인 반북·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뉴라이트네트워크는 내적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그룹이기 때문에 하나의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규정할 수 없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과격한 반북활동 단체고, 교과서포럼은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승리사관 등 우익·친미·친일 역사담론을 확산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한편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5년에 출범했다. 뉴라이트네트워크가 느슨한 그룹이었던 데 반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전국에 200여 개 지역조직과 10여 개의 부문조직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에 속해 있는 하위조직으로 대표적인 것은 뉴라이트신노동연합, 뉴라이트교사연합,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뉴라이트기업인연합, 뉴라이트의사연합, 뉴라이트불교연합 등이며, 이 밖에 바른정책포럼, 뉴라이트싱크탱크, 목민정치학교 등 싱크탱크와 정치교육 기관도 포함되어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시민단체임을 주장하면서도 공공연히 정치색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연대나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이 시민사회 이념 지형을 변화시키고 중장기적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 데 비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현실정치의 스케줄에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했다. 이 단체는 2007년 말 대선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다종다양성과 유연성이 무기

덧붙여야 할 것은 위에 언급한 두 그룹이 ‘뉴라이트’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많은 크고 작은 단체들이 뉴라이트를 표방하며 등장했다. 사회운동 연구의 표현을 적용하자면, 뉴라이트 운동은 몇 개의 대표단체가 끌어가는 동질적인 조직복합체가 아니라 다종다양한 조직들과 조직네트워크들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다중조직장’(multi-organizational fields)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뉴라이트 운동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뉴라이트 운동은 반공·반북의 묵은 이념에서부터 신자유주의적 성장제일주의, 그리고 공동체주의와 가치보수주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의 우익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각 단체들은 이러한 이념과 이데올로기 중 어느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는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은 진보 진영과의 대결이라는 공동의 전선에서 기꺼이 연대하곤 했다.

더 나아가 이들 단체들은 단지 뉴라이트 내부의 결속뿐 아니라, 그들이 올드라이트로 명명했던 단체들과도 기꺼이 연합한다. 올드라이트 단체들 가운데 영향력과 동원력이 가장 강력한 단체는 한기총이다. 1989년에 창립된 한기총은 (당시) 진보적 성향의 기독교교회협의회나 민중교회 운동 등에 대한 대응으로 탄생했는데, 오늘날 보수 개신교 신자들의 의식과 현실해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재향군인회는 보훈처 소속 단체로서,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상당한 재정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재향군인회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편은 아니지만 회원이 수십만 명이며 전국에 여러 지국을 갖고 있는 체계적 조직이다. 이와 더불어 매우 활동적인 행동부대들도 있다. 육해공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대령연합회)가 대표적인데, 이 조직은 집회·시위 등의 ‘기동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올드라이트 단체들은 앞서 언급한 뉴라이트 단체들과 성격을 달리하는 측면이 많지만, 보수우익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양자는 기꺼이 연대해왔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동질적인 단일 집단이 아니라 내적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우익운동의 장(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와 분명히 구분되는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보수우익의 낡고 새로운 여러 요소들을 모두 끌어안고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거대한 카멜레온이다. 그러한 내적 다양성 덕택에 뉴라이트 진영의 단체들은 때로는 올드라이트와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때로는 기꺼이 이들과 연합하며, 때로는 정장을 빼입은 기업CEO처럼 자율성과 시장경쟁을 외치다가 때로는 피투성이 전투복 차림으로 친북좌익척결을 부르짖는 고도의 유연성을 보여왔다.

놀랍도록 빠른 성장과 몰락
그러나 바로 이러한 다양성, 이질성, 복잡성 때문에 뉴라이트는 또한 갈등과 분열의 잠재성을 항상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보수우익 세력은 한국정치의 권력자원을 독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제도정치 내에서 경쟁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뉴라이트를 결집시켰던 전선이 희미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조건 하에서 뉴라이트 진영내의 각 단체들이 불러들인 비난여론이 다른 단체들에게 옮아붙을 때마다 뉴라이트 내부에서는 서로 불똥을 피하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고 반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권력밀착 때문에 다른 단체들까지 ‘이명박 2중대’ 소리를 듣게 된다든지, 교과서포럼 진영의 역사교과서 논쟁 때문에 뉴라이트전국연합까지 매국노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상황이 그런 것이다.

이 지점에서 뉴라이트는 진보 진영에 맞서는 대오를 유지하는 대신에 비난여론의 총량이 늘어나는 대가를 치를 것이냐, 아니면 자기 단체의 이익만 챙기는 대신에 뉴라이트 전체 대오를 약화시킬 것이냐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전자(前者)의 길을 선택하면 개별 단체의 실책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뉴라이트 진영 전체의 신뢰도가 급락할 수 있고, 후자(後者)를 선택하면 일부의 이탈로 인한 대오의 약화가 남은 단체들의 기회주의를 촉진시켜 해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지난 봄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를 대동단결시켜줬던 촛불시위가 일단 정치의 전면에서 퇴각한 현재 상황에서, 뉴라이트 단체들은 부담을 함께 짊어지기보다는 각자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한 듯하다. 실제로 이미 일부 단체는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버리기도 했는데, 일례로 뉴라이트네트워크의 핵심 조직이었던 자유주의연대는 2008년에 뉴라이트재단과 통합한 뒤 곧바로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버리고 ‘시대정신’으로 개명했다.

더 나아가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의 관계 역시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동행’으로 남아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회복되지 않는 채로 MB-뉴라이트 밀착관계가 지속된다면 뉴라이트 진영 전체의 지지 기반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08년 5월 28일에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공동으로 수행했던 ‘2008년 파워조직 25곳 영향력-신뢰도 조사’에서 뉴라이트의 신뢰도는 조사대상 25개 단체 중 23위였다. 2007년 동일 조사에서 이 단체의 신뢰도는 10위였다. 실로 놀라운 몰락이다. 이에 반해 참여연대의 신뢰도는 전년도의 14위에서 11위로 올라섰고, 민변은 17위에서 12위로 상승했다. MB-뉴라이트 밀착관계 속에서 뉴라이트의 권력은 비대해졌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뉴라이트의 매력과 활력, 도덕적 영향력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권력은 달콤한 독(毒)이다. 뉴라이트가 권력에 취해 있는 동안 그들은 서서히 시민사회의 지적-도덕적 주도권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나 뉴라이트가 설령 해체와 몰락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그 반사이익을 저절로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우리는 지난 봄 서울광장을 메웠던 수백만의 촛불이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며, 그 거대한 시민의 힘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솟구쳐 나온 것인지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먼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거기에 21세기 한국 시민사회의 ‘마그마’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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