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2월 2008-02-18   1623

특집: 태안사례를 통해 본 시민행동_태안사고와 자원활동, 그리고 시민운동

태안 사고와 자원활동, 그리고 시민운동

이시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 seejaelee@korea.com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텔레비전에 비친 기름범벅이 된 해안,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쓴 철새들,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어민들….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 했다. 대단한 의지를 발휘할 일도 아니다. 이념과 도덕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기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솝우화’라는 블로그를 가진 여성 네티즌은 자기 안의 자원의식의 촉발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태안 가자’ 거대한 자원봉사 물결
뉴스를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태안의 불행은 이 여성의 마음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나도 믿을 수 없는 그 뭔가’ 때문에 태안에 가지 않는 동안에는 뭔가 찜찜하고 빚진 기분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리라. 쇼핑을 가자는 친구의 권유에 반발이라도 하듯이 태안 행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 후 며칠 동안 그야말로 끝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태안에 가서 봉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의무감 같은 것을 가졌다. 그래서 그 결정도 간단했다. 
동네 피시방에 가듯 간단하게 나선 것이다. 이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서 우리는 이미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지역의 대학생들도 ‘방학이다. 태안 가자!’라는 슬로건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많은 교회들도 태안 갈 사람들을 모집했다. 인터넷에서는 자원봉사를 권유하는 수많은 사이트들이 있고 블로그가 급조되기도 했다.
환경연합은 사고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였다. 보통 현장 견학 갈 때는 버스 두 대 분의 회원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번째 모집에서 300명이 모여들었다. 급히 더 많은 버스와 장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환경연합 홈페이지에는 하루에 1만 건 이상의 접속수가 집계되었다. 그 동안 환경연합은 1만 5,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현지에 보내고 현지 상황실에서 이들을 안내했다.
자기 권력의 행사이자 자기실현의 충만감 맛보는 자원봉사
정부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렇게 대대적인 자원봉사활동이 있었던가? 태안 자원봉사활동은 한국 자원봉사역사의 원년을 기록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자들 가운데는 친구들이나 연인들, 혹은 가족단위로 참가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절 등 종교단체, 환경단체, 대학 등 중간집단의 모집에 신청해 참가하였다. 물론 군인, 공무원, 그리고 회사들도 계획을 세워 봉사자들을 보내기도 했다. 자발적이라고 보기 힘든 공무원들도 현장에 가서 기름제거작업을 하면서 그 엄청난 재난에 놀랐고, 또 다수의 자발적인 참가에 감동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아무리 가볍게 태안 행을 결정하더라도 거기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will)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대단한 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분명히 의지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자원성(voluntarism)은 자주성, 주체성을 포함하고 있다. 라틴어에서는 자유, 용기, 정의의 뜻도 있다고 하며, 프랑스어에서는 ‘기쁨의 정신’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자원활동은 누구의 종용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자기 권력의 행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원활동에서 더 많은 만족과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와 새들의 죽음, 어민의 고통, 만리포해수욕장과 신두리 사구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는데 대한 슬픔도 사람들을 움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얕게 널리 퍼져 있는 공공의식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동정의식과 공공의식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자기중심성의 기쁨, 보람, 행복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의 자기실현이란 결국 자발적으로 자신의 내면 의지, 에너지, 근육을 외부화하는 것이며, 그것의 결실인 것이다. 따라서 자원활동은 자기실현의 충만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월드컵 응원에서 싹튼 비조직적 집합행동
사람들은 왜 이렇게 대대적인 자발적인 집합행동에 나서는 것일까?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여러 차례의 큰 집합행동을 경험하였다. IMF 금융위기 때 국민들의 금모으기운동이 그 시초가 될 것이다. 국가경제의 위기를 맞이하여 장롱에 보관한 금을 모아서 외환위기 극복에 나섰다. 1987년 6월 항쟁도 큰 집합행동이었지만, 이는 학생운동단체, 사회단체 등 중간집단이 주도한 운동이었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험한 최대의 집합 행동이었다. 누구도 동원하지 않고, 그야말로 국민들이 삼삼오오 거리에 나와서 응원했다. 나는 700만 명이 참여했다는 이 집합행동은 장래 우리의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 기억될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학에서는 집합행동이 비이성적, 피암시적 군중행동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강하다.   
월드컵 서포터즈 운동은 하나의 집합행동의 ‘틀’을 제공했다. 이 틀의 특징은 특정한 조직자가 없다는 점이며, 참여하는 데 비용이 매우 적게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 이 틀은 이후의 여러 집합행동에서 다른 내용을 담아내었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촛불집회 그리고 2002년의 대선에 이르는 과정, 그 후 대통령탄핵반대운동에서도 이 집합행동의 틀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탄핵반대운동은 시민단체들이 조직했지만, 모인 사람들은 단체가 동원한 것은 아니었다. 
정보네트워크와 자원활동의 원동력은 ‘접속’에의 욕구
이러한 대중적 집합행동의 발생에는 기술적 환경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 문자메시지 등 정보네트워크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집합행동을 유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제 사람들은 정보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고 누구나 발신자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주어진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보발신이 바로 정보의 상호교환과 상승효과를 가져오고 대규모 집합행동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보네트워크와 자원활동이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정보나눔의 자발성과 자원활동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기초 동력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블로그, 미니홈피를 만들어 정보를 발신하고 타인과의 접속을 추구하고 있다.  자원활동은 근본적으로 대타(對他)적 행동으로서 타인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자원활동의 ‘의지’는 사회적 연결, 관계, 네트워크의 의지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정보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집행행동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네트워크의 익명성을 악용하여 이성적인 담론을 거부하고 일방적인 논리만을 주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2006년에 일어난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조작사건, 2007년 아프간 인질사건, 최근의 여성부 폐지를 둘러싼 논쟁 등에서는 이성적인 논리가 설 자리가 없었다. 익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이버공간에서 책임 있는 공론형성이 이토록 어렵다.
또 하나, 대중적 집합행동은 다른 기존의 사회운동에 비해서 ‘거래비용’이 매우 적게 든다는 것이다. 대중적 집합행동은 이념적인 지향을 공유할 필요가 없고, 신분을 밝히고, 시간을 내고, 명단을 올리고, 회비를 지불하는 이른바 거래비용을 많이 지불할 필요가 없다. 월드컵 서포터즈들은 빨간 티셔츠만 하나 사 입고 거리에 나서면 된다. 태안에 가는 사람들이 모두  쉽게 가는 것도 아니고, 가벼운 마음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 참가는 대체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원활동에는 참여하지만 환경단체나 사회단체의 회원으로 등록하는 일은 매우 적다.
얕고 넓은 집합행동과 조직운동이 만나려면
한국의 시민운동은 2000년 총선 낙선운동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낙선운동 명단에 오른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 후 시민운동은 적지 않는 성과를 내었지만 대중 동원 능력은 급격하게 저하했다. 촛불시위도, 탄핵반대운동도 모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구도 시민운동의 성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시민운동은 성장하지 못했다. 회원 수는 정체됐고, 언론매체에서도 크게 다루지 않게 되어 그 위상이 상대적으로 저하됐다.
시민들은 사회단체를 통하지 않고도 정보발신이 가능하고 집합행동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사회집단을 통해서 사회에 참가한다는 전통적인 통로가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미국에서도 중간집단의 붕괴현상이 현저하다는 보고가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사회참여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시위나 탄핵반대운동, 반전운동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중간집단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사회의 일원으로서 행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태안 사고에서도 환경단체가 열심히 참여하였지만, 시민들을 동원했다기보다 몰려오는 시민들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일에 진력했다. 환경연합 활동가들은 기름유출에 의한 생태파괴와 오염의 원인을 밝히고, 오염자의 책임을 추궁하며, 정부의 늑장대응을 질타할 생각으로 현지에 내려갔다. 그러나 현지의 급박한 사정과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대응방식을 바꾸어야 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우선 기름제거 작업에 참여하고, 차후에 원인규명과 책임추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환경연합의 태안 상황실에는 여러 명의 ‘시민간사’와 ‘시민기자’가 상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시민간사들은 일일 자원활동가로 참여하였다가 상근활동가와 마찬가지로 기름제거 작업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무급 시민활동가들이다. 이 시민간사들은 환경단체 활동가들과 일반 시민 참가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생겨난 범주의 운동가들이다. 시민간사들은 시민들과 운동가들을 매개하는, 집합행동과 조직운동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이 집합행동 현상에 접근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정보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공간과 시간을 압축함으로써 접속의 비용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긴 설명이나 의례적인 인사도 필요 없이 문자메시지 하나로 태안에 갈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가 있었다. 시민들의 모금도 수억 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안 사고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사회의식은 이처럼 얕게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민운동도 정보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이렇게 널리 퍼져 있는 의식과 행동을 동원하는 이른바 롱테일(long tail)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다.  
얕게 널리 퍼져있는 시민의 공공의식을 어떻게 자극하여 사회변혁의 힘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가 바로 시민운동의 과제이다. 정보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집합행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