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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잘 쉬면 삶이 달라진다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ikik1955@hanmail.net


우리 모두 쫓기며 살고 있다. 조직에 속해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그렇고, 조직 바깥에서  삶을 가꾸는 자유롭게 보이는 사람조차도 그렇다. 그런데 사람은 쉬지 않으면 안 된다. 유대땅 신화에 나오는 야훼라는 신도 천지창조를 한 뒤, 얼마나 피곤했으면 끝날에는 쉬었을까. 쉰다는 일은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잠을 자는 일처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나팔꽃도 저녁이 되면 잎을 오므리고 잠을 청한다. 쉬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모래가 서걱이고, 혈행이 빨라지고, 급기야는 터져버린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출현해 내외로 요란하게 난리를 피우자 그 원인에 대한 여러 분석 중에 “그분이 도무지 쉴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반드시 사고를 친다.


쉬기에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여름’이다. 냇물이 달려가고, 바다가 출렁이고, 숲에서는 새소리가 들리고, 햇살은 뜨겁다. 여름 그늘에서 수박을 쪼개고 삼겹살이나 구워먹는 게 잘 쉬는 게 아니다. 책 한 권을 손에 들자.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어디로 갈 것인지, 왜 사는지,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잘 쉬면, 습관적으로 살던 삶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쉴 때 책이 좋은 도구인 까닭은 읽다가 피곤하면 책을 홱, 집어던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자발적 가난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은 살아 생전에 비록 소수의 눈 밝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사랑을 받긴 했지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동화작가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그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 그의 사후 1년 만에 그를 추모하고 기리는 진지한 목소리들이 다양하게 쏟아지는 것을 봐도 그렇다. 어떤 이는 그를 근현대 한국아동문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도 평가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살아 생전에 푸대접하곤 하는데, 권정생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 같다. 영향력이라곤 있을 것 같지 않은 시골교회의 종지기 출신인 권정생은 작품으로뿐 아니라 인간으로도 참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동화작가였으므로 그의 동화책을 권해야 마땅하겠지만, 권정생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가는 그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통해 더 잘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의 어떤 권위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 인물, 돌려서 말하지 않고 곧바로 결론에 이르는 담백한 세계관, 쉽게 읽히지만 깊은 생각을 펼친 사상가가 거기 있다. 사상가가 별 것인가? 다르게 말하는 사람이 사상가, 아니겠는가.

이 책은 그의 대표적인 산문집으로서, 그의 사후에 출판사에서 몇 편의 글과 그에 대한 글을 찾아 보탠 책이다. 전직 ‘거지’로서 평생 결혼도 않고, 양복도 한번 못 입어보고, 시골 교회의 가난한 종지기 혹은 농부이거나 농부들의 친구로서 일관한 작가가 지켜오고, 꿈꿔온 ‘우리 현실’을 만나게 된다. 그의 글은 때로 깊은 공감과 부끄러움 속에서 지금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석유문명과 학살과 전쟁을 일으키는 우리 삶이 얼마나 허약하고 파괴적인가에 대해 깨달음을 촉구한다. 선생은 이라크 전쟁과 우리가 자동차를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직언한다.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모은 적잖은 금액의 인세는 남녘의 소년소녀 가장과 북녘의 굶는 어린애들을 위해 쓰라고 유언했는데, 그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자발적인 가난’을 평생 실천했다. 깊은 사상은 절대 현학적이지 않다는 것, 깊은 생각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또한 이 책의 큰 소득이다.





마음속에 평화와 생명의 나무 심기



유럽을 휩쓴 양차 대전 중에도 한눈팔지 않고 평생 동안 황무지에 나무만을 심어온 고집쟁이 엘제아르 부피에에 대한 짧고도 소박한 이야기다. 한쪽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에 몰두할 때, 외진 산기슭에서 질문 없이 우직하게 나무만 심는 사람이 왜 없었을까.

책은 가볍고, 내용은 간단하고, 문장은 정확하고도 쉬우며, 그림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 소박한 책이 담고 있는 사상은 깊고도 심원하다. 저자 장 지오노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가 중의 하나인데, 그가 쓴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전쟁은 파괴와 죽음 외에 아무런 소득도 없음에 반해 나무를 심는 행위는 지구를 살리고, 새를 울게 하고, 없던 시냇물을 흐르게 하고, 버렸던 땅으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한다.
노인은 그 간단한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를 심는 행위는 이때 곧 평화와 생명을 심는 행위가 된다.

이 아름다운 책은 만화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손에 들면, 단숨에 읽어치울 이 간편하고 짧은 내용의 책은 나무에 대해, 산다는 것에 대해, 인간에 대해, 전쟁과 평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처음 읽는 이에게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여운을, 두 번째 읽는 이에게는 또 다른 질문과 만나게 한다. “나는 지금 도대체 뭘 심고 있지?”라는 질문이거나 “내가 도대체 한 그루 나무보다 나은 존재일까?”라는 질문, 말이다.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너무나 유명한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부당한 법(악)에 고의로 저항하는 것, 그것은 신에 대한 의무이다”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신정국가의 국민이 아니므로, 끝 구절, ‘신에 대한 의무’를 ‘인간이 행할 궁극적인 도리’로 고쳐 읽어도 될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범우문고 75번, 1978년도판, 『시민의 반항』이었다. 70년대 후반이었으므로 유신시절이었다. 가위눌렸던 시절, 그때 20대였던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매일 밤마다 꿈꾸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외치기 위해 광화문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말없이 모여드는 꿈이 그것이었다. 그런 꿈마저도 긴급조치위반법으로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던 참으로 고약한 시절, 이 책은 내게 하나의 경전 같이 나타났다.

이 책은 미국정부가 멕시코 전쟁을 일으키자 그 전쟁에 사용될 것이 뻔한 인두세 내기를 거절한 대가로 읍내에 구두 고치러 나갔다가 보안관에게 잡혀 하룻밤 옥살이를 한 뒤, 그 분통을 참지 못하고 소로우가 1849년에 한 잡지에 발표한 글이다. 필요불가결한 사상만을 담고 있으니 그 분량이 길 수가 없다. 생전에 소로우는 『월든』과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이라는 단 두 권의 책만 세상에 냈으나, 두 책 모두 초판도 안 팔렸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세상은 20권짜리 전집으로 그의 위대성에 경의를 표했다. 특히 『시민의 불복종』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라는 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그 후 마틴 루터 킹과 수많은 무정부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내가 동의한 것 이외에는 나의 신체와 재산에 대해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면서 소로우는 심지어 공자까지 들먹인다. “중국의 공자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기본으로 볼 만큼은 현명했다”라고.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들이다. 바로 촛불집회에서 불려지던 ‘헌법제1조’의 노랫말이 아니겠는가. 내 젊은 날, 밤마다 꾸던 꿈은 ‘87년 6월항쟁’, 2008년 촛불집회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왜 이리도 갈 길이 아득하고 멀기만 한지.




주류가치에서 벗어나라 외치는 뜨거운 책


김종철은 흔한 이름이다. 하지만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한 사람뿐이다. 김종철이 1991년 대구에서 『녹색평론』을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낙동강페놀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의 젊은 시절은 이 나라가 어떤 질문도 허락하지 않은 채 막 공업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할 때였다.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푸른 하늘에 퍼부어질 때, 종신대통령의 야무진 꿈을 꾸던 독재자는 “이제는 이 민족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젊은 김종철은 “저것은 하늘(자연)에 대한 불경”이라고 탄식했다. 세월이 흘러 독재자는 술판에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고, 김종철은 얼마 전 『녹색평론』 100호를 펴냈고, 그 기념으로 자신의 두 번째 평론집 『땅의 옹호』를 펴냈다.

부제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위하여’이다. 모두 신 들린 듯이 경제 타령을 해쌓는 마당에 ‘자발적 가난’을 잘못 이야기하다간 돌 맞기 십상인 발언이다. 그가 말하는 가난에 대해 많이들 오해를 하는데, 그는 “나는 가난 그 자체를 예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문제는 ‘어떤 가난’이냐 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급히 해소되어야 하는 절대적 빈곤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빈곤’이 뜻하는 것, 즉 “오늘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가난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서비스의 절대적 결핍 그 자체로 인한 궁핍감이라기보다는 ‘생활의 질’의 열악함에서 오는 고통을 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물자나 서비스의 결핍이 재앙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호혜적 인간관계의 그물이 있다면 세상이 이토록 자기파멸적인 자원착취와 환경파괴, 삭막한 탐욕의 전투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김종철이 한결같은 토하는 외로운 소리다. 그 그물을 그는 세상이 이제 노골적으로 버리기로 작정한 농촌 공동체에서 찾고 있다. “지금 세상은 ‘국익’이나 ‘국가경쟁력’이라는 덫에 걸려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데 혼란을 겪고 있다”고 그는 우려하고 있다. ‘경제’라는 마술적 주술을 부려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정권의 출현으로 우리 사회가 작금에 겪고 있는 혼란을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이 책은 첫 에세이집, 『간디의 물레』 이후 주로 녹색평론에 썼던 글로서 우정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공동체에 대한 꿈이 전편에 깔려 있다. 그가 사숙하는 이반 일리치의 영향일 것이다.

이 사회를 덮고 있는 주류가치로는 이 사회의 모순을 타넘고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읽기에 어느 정도의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명쾌하고 단순한 한 고집쟁이 지식인의 분명한 시각을 접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범람하는 잡서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바보짓은 없을 것이다. 아예 책을 읽지 말거나, 읽으려면 좋은 책, 진실이 담긴 ‘뜨거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열일곱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만약 아주 젊은 세대가 아니라면, 휴가 동안 빙그레 미소를 짓거나 주변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며 같이 즐길 책으로 이 책보다 적합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책은 1965년부터 1981년까지 사용되었던 고등학교 국어책의 글들을 모은 것으로, 목차나 편집도 옛날 교과서의 그것을 그대로 살렸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당시 배우던 교과서에 인색하게 삽입되어 있던 컷마저 그대로다. 그러니 어찌 재미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미적분이 담긴 수학이나 원소기호표가 담긴 화학책이 아닐진대. 한때 인사동에서 자주 보이던 ‘초등학교 교과서’를 만날 때의 감흥과 아주 다르다. 초등교과서는 다시 살펴보니 반공 승공 멸공을 다룬 피비린내 나는 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발췌한 이 책은 사라진 옛사랑의 기억이 실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듯 멜랑콜리한 감흥을 자아낸다. 지식공작소의 박영률 기획자가 책의 앞머리에서 유혹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이 열일곱의 청춘을 만나보길 원합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순정의 소나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마른 가슴은 축축해지고 거친 피부에는 홍조가 돌아오면서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의 물결 속에 잠겨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추억은 그렇게 당신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할 것입니다”라는 말로.

유씨부인의 <조침문>도 담겨 있고, 정비석의 <산정무한>도, 안톤 시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양하의 <신록예찬>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놀라운 일이어라. 백범의 <나의 소원>도 그때 배웠다는 것은(중학교 국어책을 담은 책도 있다).




웃음으로 만나는 슬픈 통찰



아무도 전시륜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딱 한 권의 책만 남기고, 그것도 수년 전 이국땅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1932년 충청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공대 재학 중 군에 입대해 마산일보에 구혼광고를 내 세상을 즐겁게 만들더니, 제대 후 미국 켄터키 주 베리아대학에서 철학을, 같은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힘겹게 살았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다른 나라 사람이 되었으니 영어로 글을 썼다. 낮잠, 책읽기, 게으름 피우기가 주특기인 그는 아무도 허가증을 주지 않았건만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의 소원이 하나 있었으니 평생 끼적거린 자신의 글이 한국어로 출판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간을 앞두고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1998년이었다. 필자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우연히 원고를 접하게 되었고,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의 책을 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적이 있다. 결국 책이 나왔고, 최근에는 개정판이 나왔다. 책의 제목과 앞글을 그래서 필자가 맡았다.

제목 그대로이다. 평생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한 공부가 아닌, 취미로서의 공부를 한 사람이므로 이 책이 담고 있는 교양의 내용과 두께는 진짜 교양이라 할 만하다. 문체는 기지와 유머로 차고 넘친다. 과장이 없고, 역사의 무게에서도 자유롭지만 인간에 대한 슬픈 통찰이 있다. 웃으며 읽지만 여운이 깊다. 허명과 헛소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 올 여름에는 보석처럼 숨어 있는 이 책을 반드시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책을 소개해준 필자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아주 잠깐은 들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참여사회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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