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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09월
  • 2008.08.04
  • 1106
  • 첨부 3

<참여사회 9월호 이슈>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변호인의 고찰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이루어진 2건의 국민참여재판을 중심으로



김형국
변호사 kimhk@seoulbar.or.kr


저는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국선 전담 변호사로 일하는 김형국 변호사입니다.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서 2008년 1월부터 국민의 형사 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 위 법에 따라 일정한 형사 사건에 대하여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는 지난 5월 27일과 7월 7일에 두 건의 국민참여재판이 실시되었고 저는 국선 변호인으로서 재판에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일반 국민이 형사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그 역사도 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처음 시도되는 새로운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논의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제가 참여한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재판 참여는 국민의 일상적 주권 행사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매우 드문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근대적 민주주의와 현대적 민주주의로 구분됩니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징표는 투표권의 보장을 통하여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선발하는 것입니다. 대표를 통하여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시키는 제도, 일명 ‘대의제’는 당시 주된 정치체제였던 군주제와 비교하면 매우 발전된 것이나 국민의 직접적인 주권 행사를 제한하여 ‘국민은 투표를 통하여 주권을 자유 위임하였다’거나 ‘국민은 손과 발이 없이 대표를 통해서만 행동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현대적 민주주의는 국민의 일상적 주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중요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제도,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도, 여론조사, 언론의 자유 보장 등은 모두 국민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국정에 반영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즉 현대 민주국가의 국민은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선거철에만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국민 주권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형사 재판은 국민의 주권에 기초하여 가장 강력한 권력인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절차입니다.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그동안 직업 법관들의 전유물이었던 형사 재판에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여 국민의 정서와 상식을 형사 재판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우리나라 국민은 가장 강력한 국가 권력인 국가 형벌권에 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일상적 국민 주권 행사 수단을 얻게 되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이렇게


국민참여재판은 검사의 공소제기,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의 신청과 채택, 준비 절차, 배심원선정 절차, 공판 절차, 배심원 평의 절차, 판결 선고의 순서로 진행되며, 위 절차 중 공판 절차는 모두 진술, 입증 계획 진술, 증인 신문, 서증 조사, 구형과 최후 변론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음은 제가 변호인으로서 참여하고 바라본 두 재판의 요약입니다.


[사건 1]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강도상해 및 상습절도죄로 기소되었는데 강도상해는 술에 취한 피해자로 기재된 자를 따라가 그의 돈이 들어 있는 잠바를 강취하였다는 내용이며, 상습절도는 병원 입원실 등에서 재물을 훔쳤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하여 변호인은 피고인이 피해자로 기재된 자의 잠바를 잡아당긴 것은 사실이나 이는 절도에 해당할 뿐 강도가 아니라는 점, 자수한 점, 건강이 좋지 않은 점, 성장 환경과 가정사정 등 피고인이 범행을 하였으나 참작할 만한 여러 사정이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피해자로 기재된 자의 잠바를 낚아챈 것이 강도에 해당할 것인지 아니면 날치기와 같은 절도에 해당할 것인지의 여부와 아직 미성년자인 피고인에게 소년 보호처분을 할 것인지 징역형을 선고할 것인지 여부였습니다.

배심원의 평결은 강도죄를 인정하였고, 어떤 처분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재판부는 강도죄를 인정하고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사건 2]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강간치상으로 기소되었는데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고소인과 성관계를 할 생각으로 고소인을 여관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였으나 고소인이 저항하자 근처 여관의 주차장으로 끌고 가 강간하려다 멍이 드는 상처를 입혔다는 내용입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고소인을 강제로 끌고 들어가려 한 일이 없고 주차장으로 간 것도 자연스럽게 이동한 것이며 주차장에서 술에 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졌는데 고소인이 강간하려 한 것으로 오인하고 피고인을 밀치고 뛰어 달아나자 쫓아간 것일 뿐 강간할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피고인이 주차장에서 고소인을 강간할 생각이 있었는지 여부인데 변호인은 고소인과 피고인이 나이트클럽에서 입맞춤과 애무를 하고 약 10시간을 동행한 점, 여관이 밀집한 골목을 오랫동안 돌아다닌 점, 사건 발생 장소인 주차장은 외부에서 쉽게 보이는 곳으로 이런 장소에서 바지를 벗고 성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점, 고소인은 끌려다니면서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하나 사건 발생시간인 오전 10시 30분 경에는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데 고소인의 비명을 들은 사람이 없는 점,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피고인은 고소인 부근에 앉아 있었고 경찰을 보고 달아나지 않은 점을 들어 강간할 생각이 없음을 주장하였습니다. 검사는 피해자의 진술을 기초로 유죄의 입증을 해나갔습니다.

배심원은 피고인에게 강간의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하였는데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강간의 고의가 있다는 이유로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국민 일반 관심 사건을 대상으로 해야 


현행 국민의 형사 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을 살인, 강간상해, 강도상해 등 중대한 범죄에 한정하고 있고, 대법원 규칙에서는 부정식품 제조와 오염물질 불법 배출,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중 마약 범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대 사건은 일반 국민들과 거의 관련이 없는 예외적인 일탈 행위이며, 국민들에게는 정서적 충격은 줄 수 있으나 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사실인정을 제외하고 국민의 상식과 직업 법관의 판단 사이에 특별한 차이는 없습니다. 대법원규칙으로 규정한 사건은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대의제를 기초로 하되 가장 강력한 국가 형벌권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라면 국민 일반의 관심사가 되는 사건으로 국민의 정서와 상식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그 대상 사건으로 하여야 합니다. 최근 촛불집회와 관련한 형사 재판이나 존엄사에 대한 형사 재판, 환경과 관련한 시위 사건 등을 그 대상으로 하여 국민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수사기록도 제출토록



범죄에 대한 신고가 접수되면 수사기관은 수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를 수사기록이라고 합니다. 수사가 종료되고 형사 재판이 진행되면 검사는 법원에 증거를 제출하게 되는데 이때 모든 수사 기록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유죄 입증에 필요한 기록을 정리한 증거 기록을 제출합니다. 증거 기록은 법원과 변호인에게 공개되지만 수사 기록을 보려면 별도의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증거 기록에 포함되지 않은 수사 기록에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검사는 가장 객관적인 기관이라고 합니다. 검사에게는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만이 아니라 무죄의 증거나 양형상 유리한 증거도 제출하여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기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수사 기록으로 분류되고 법원에 제출되지 않는 것은 위와 같은 검사의 위상과 걸맞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실례로 2008년 7월 7일 국민참여재판에서 증거 기록에는 사건이 발생한 주차장이 있는 여관 관리인의 진술이 없습니다. 고소인은 비명을 지르며 강간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였다고 주장하므로 그 비명을 들은 사람이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그 비명을 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사건이 발생한 여관의 관리인일 것입니다. 위 관리인은 변호인이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변호인 외에 경찰관이 여러 번 질문하고 갔으며 비명을 듣지 못하였다고 수차례 답변하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이런 수사 내용은 변호인이 현장에 가서 확인하기에 앞서 증거 기록으로 법정에 제출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배심원 선정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할 배심원은 먼저 배심원 후보자를 법원의 관할 구역에 거주하는 국민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 후 그 배심원 후보자들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을 통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배심원 후보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선정합니다. 배심원들의 인적사항은 철저히 보호되고 있고, 배심원들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일시적으로 부여된 번호로만 불립니다.

변호인은 간단한 질문을 통하여 배심원 후보자 중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배심원을 선정하도록 하여야 하며 검사는 반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질문 몇 개를 하고 피고인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질문을 통하여 피고인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호의적일 경우는 검사의 기피 신청을 통하여 배제될 것입니다. 결국 변호인이 수행해야 할 일은 검사의 기피 신청을 피하면서 피고인에게 호의적인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는 정교한 질문표와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안목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은 경험이 누적되지 않아 이런 질문표와 기술이 부족하며 법률 전문가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심리학자나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배심원을 이해시켜라!


공판 단계란 형사 재판을 실제로 진행하는 단계입니다. 보통의 형사 재판에서는 법률 용어를 사용하여 간명하게 진행하므로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일반 국민인 배심원을 설득하여야 하므로 이런 법률 용어를 사용할 수 없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최대한 풀어서 설명하고, 증거도 그 내용과 이 사건에서 가지는 의미를 연결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했습니다.

2008년 5월 27일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소년보호처분의 종류가 10가지에 이르며 그 중에서 피고인이 받은 소년보호처분이 가장 미약한 것임을 소년법을 제시하며 설명하여야 했고, 2008년 7월 7일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강간상해와 강간치상의 차이가 상해의 고의가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하여야 했고, 상처와 상해의 차이를 국어사전과 판례를 제시하면서, 강간과 강제추행의 차이를 다소 민망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설명하여야 했습니다.

일반 형사 재판과 달리 많은 준비와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법률 문제에 대하여 문외한이던 국민들이 법률 전문가들만 이해하던 내용을 알게 되고 알게 된 내용을 사건에 적용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의 권리가 강화됨을 느낀 것은 보람있는 일이었습니다.


무죄로 추정한다면서 피해자라니?


보통 형사 재판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형사 재판이 청구된 사람을 피고인이라 부르고 그 사람에 의하여 범죄 피해를 당하였다고 공소 사실에 기재된 사람을 피해자라고 부릅니다.
피고인은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며 이를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원칙이며 세계의 문명국가에서 통용되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재정하고 있는 법정에서 피해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피고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그 범죄에 대한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피고인은 스스로 무죄를 주장하는데 검사나 재판부가 피고인을 고소한 사람을 피해자라고 칭한다면 피고인은 이 재판이 이미 피고인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는 전제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할 우려가 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 재판의 중요한 원칙이며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에는 이런 원칙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출석한 법정에서 피해자라는 명칭의 사용은 제한되어야 하며 ‘고소인’ 또는 ‘피해자로 기재된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조하여 적절한 용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형량은 배심원단 합의로 제시하도록



배심원들은 재판을 마치면 별도의 회의실에서 재판부의 관여 없이 유죄와 무죄에 대해 토의를 하고 유죄라고 평결할 때는 재판부와 같이 피고인에게 선고할 형량을 협의합니다. 형량의 협의 과정은 구체적인 방식이 규정되어 있지 않고 재판부마다 적절한 방식을 채택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비공개로 구체적인 방식을 알 수 없지만 배심원 한 명, 한 명에게 형량에 대한 의견을 묻고 이를 종합하는 방식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배심원 한 명, 한 명이 개인적인 형량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 그 의견은 배심원단의 의견이 아닌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며 재판부에 특별한 의미를 주기 어렵습니다. 국민참여재판제도가 국민의 정서와 상식을 형사 재판에 반영하는 취지를 볼 때 형량에 대한 의견도 배심원단의 합의된 의사를 재판부에 제시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며 이를 잘 구현하도록 협의를 진행하는 재판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 관심을 먹고 자란다


현대 사회는 형식적 국민주권주의에서 실질적 국민주권주의로 나아가는 시대라고 합니다. 현대 민주국가는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형사 재판에서 일반 국민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실질적 국민주권주의의 실현에 중요한 징표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하여 실질적 국민주권주의의 실현에 진일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형사 재판’은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이 가치의 실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행된 지 7개월이 된 이 제도가 잘 정착되길 바라며 무엇보다 국민의 관심이 이 제도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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