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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민주주의 20년의 결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글    이제훈<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참여사회』 9월호엔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을 인터뷰하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알다시피 그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으로 ‘촛불’을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008년 8월 20일 현재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서 농성 중이다. 그가 농성을 끝내게 된다면, 한동안 그를 만나려면 참여연대보다는 구치소나 감옥을 찾아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9월 10일로 참여연대가 창립한 지 14년이 된다. 그러니 『참여사회』 9월호엔 ‘참여연대 관계자’를 인터뷰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이자, 협동사무처장이고, 참여연대 최초의 수배자인 그가 아니면 누구를 만나야 할까?

 




영혼 있는 촛불은 폭풍도 끄지 못하나니

8월 7일 저녁 6시 30분께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조계사로 찾아갔다. 저녁 예불이 한창이다. 그는 이 날도 108배를 올렸다. 삼복더위에 땡볕 내리쬐는 마당 한복판에서 108배, 땀투성이다. 그가 씻으러 간 사이 조계사 경내를 둘러봤다. 속세의 인연은 질기고도 질기다. 세속의 번뇌를 끊어내야 할 도량 경내에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가득 걸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민주공화국! 이명박 정부는 기독교공화국 이명박 정부는 공직 이용 종교편향 즉각 중단하라!” “총무원장 스님 검문검색 어청수 경찰청장 즉각 파면하라!”

농성장 한 귀퉁이엔 ‘두 눈으로 촛불 속의 영혼을 보라’라는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의 시국법회 법어가 적혀 있다.

“한 눈으로 보면  촛불만 보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촛불 속의 영혼까지 보입니다. 씽씽 바람이 되는 인연,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있는 촛불은 폭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이 촛불 앞에서 두 눈으로 보면 안 보이던 종달새의 노래 소리도 다 보이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한 눈을 감고 두 뿔로 들이받는 쇠귀신은 보지 못하면서 안 보이는 금송아지 꼬리만 보인다 합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이 법어를 이교도의 헛소리로 치부하고 말았을까?

 
 



생활 속 실천으로 촛불 정신 이어가야


조계사에서의 일과는?

“밥 때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시간 놓치면 먹지 못한다. 오전 6시 30분에 아침을 먹는다. 농성자 각자 자유시간을 보내다 오전 10시에 상황실 회의를 한다. 시간 맞춰 점심을 먹고 오후 1~5시엔 2개조로 나뉘어 시간을 보낸다. 농성 천막에선 일도 해야 하고 방문자도 많다. 저녁엔 108배도 하고 촛불집회 생중계도 본다. 보통 밤 10~11시께 퇴근한다. 경찰의 침탈 가능성이 있어 농성은 천막에서 하고 잠은 총무원 건물 지하에서 잔다.”

농성장엔 어떤 분들이 찾아오나?

“아무래도 지인들이 많이 오신다. 참여연대 임원 회원 간사, 학교 동문 선후배, 단체 분들. 일반 시민들도 많이 오시는데 집중 촛불집회가 있는 날 특히 그렇다. ‘농성장에 와보고 싶었다’,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다’며 일부러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어떤 방문자가 가장 반갑나?

“모든 분들이 반갑지만, 아무래도 아들이 가장 반갑다. 가장 보고 싶기도 하고.”

대책회의 상황실장으로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며 느낀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 싶은 것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새로운 대중의 발견이다. 처음엔 충격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확실히 대중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20년 민주화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시장만능주의에 굴복하고 금권에 무기력해 보이는 건 일면에 불과하다. 다른 측면에서는 생명이나 삶의 안전,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등에 대한 매우 수준 높은 의식과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본다. 이런 적극적, 긍정적 에너지를 어떻게 시민사회운동으로 수렴할 것인가, 운동의 목표와 활동을 어떻게 이들과 소통하고 공유할 것인가가 요즘의 가장 큰 관심사다.”

촛불의 정신을 이어가려면 뭘 해야 하나?

“시민사회운동은 촛불의 동력이 줄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자발성은 역동적, 창조적이고 투쟁이 한창 정점을 향할 때는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탄압이 전면화하고 운동이 하강하는 상황에서는 스스로 전망을 조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광범위한 대중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다른 계기가 주어지면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것이다. 어떻게 국면을 전환해 난국을 타개할 것인지 시민사회운동이 책임 있게 모색하고 찾아내 시민들한테 설명해야 한다. 사회운동은 감각을 예리하게 벼리고 집요하고 끈질긴 자세로 이슈를 포착해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께는 생활 속의 실천을 부탁드리고 싶다. 우리가 광장, 거리에서 들었던 촛불의 의미를 계속 살려가려면, 우선 미국산 쇠고기가 버젓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질적으로 다른 사회 만들어가는 촛불 2라운드를

농성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솔직히 기한이 없다. 이게 끝이 아니고 새로운 투쟁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농성을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촛불 시즌 원을 끝내고 시즌 투로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시즌 투의 실마리와 기조가 잡히고 이를 이끌어갈 주체가 분명하게 형성되면 그 시점에서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농성자들 간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촛불 시즌 투’란?

“촛불의 동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다. 안타까운 심정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100일 넘도록 쉼 없이 달려왔고, 중심 이슈인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수입전면화로 폭발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촛불운동의 이후 전망에 대해 여러 고민과 토론이 있는데, 하나만 강조하자면, 호흡을 다시 가다듬고, 이명박 정부의 한계와 실체를 드러낸 촛불항쟁의 성과에 기반을 두어 촛불 2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중심 이슈는 민주주의의 위기 문제와 더불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 민생 경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민주주의 위기는 심각하고 전면적이다. 최근 집회대응 방식이나, KBS 장악 시도, 조중동 광고 불매 네티즌에 대한 탄압을 보면 ‘표현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에 도전하고 심지어 부정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또한 민주주의의 내용적 측면, 즉 ‘누구를 위한 민주주인가’의 문제도 심각하다. 현 집권세력은 ‘강부자 내각’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민생경제를 내세우지만 대기업과 재벌중심 정책을 펴고 있다. 개별 이슈에 대응하고 각 단체 사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전선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각개 약진하다가는 각개 격파되고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촛불항쟁이 이슈투쟁인지 가치투쟁인지 고민해봤다. 현상적으론 ‘미친 소 먹기 싫다’는 구호도 있듯이 이슈투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건강하게 생명을 이어가며 품격 있게 살고 싶은 열망 같은 가치가 있다. 이걸 가치투쟁으로 보면, 호흡을 길게 가져가도 된다. 단지 방어하는 싸움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사회로 갈 수 있다. 촛불에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에 대한 조선일보·문화일보의 법적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촛불 구속자들, 특히 대책회의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일종의 정치재판을 하고 있다고 본다. 조중동은 촛불의 정당성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훼손하려는 것이다. 그래야 조중동의 권력이 유지되고 강화된다고 보는 것 아니겠나? 한심한 것은 권력도, 검찰도, 법원도 조중동의 프레임을 따라가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안진걸 팀장 보석결정을 항고하면서 제출한 증거가 보석결정과 판사를 비난하는 조선일보 사설이란 점만 봐도 드러난다. 

조중동과의 싸움을 더 이상 피할 때가 아니다. 그들의 권력이 크지만 약점과 한계도 노출했다. 전략적이면서 집요하게 그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항쟁 과정에서 시민을 ‘폭도’로 규정한 것에 대한 대대적인 집단소송의 조직이나, 허위사실 왜곡보도에 대한 릴레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방안이다. 이미 큰 성과를 낳은 광고 불매운동도 확대 전개할 필요가 있다. 구독과 취재 거부 운동도 해야 한다.”




시련 이겨나가도록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 보내주시길

이런 질문 좀 뭣한데, 혹 감옥에 가게 되면 뭘 하고 싶나?

“좋은 점은 책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책을 읽고 싶다. 정치사회적 변혁이 일어나던 시기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변혁의 동인을 꼼꼼히 탐색해보고 싶다. 현재 한국사회, 그리고 세계가 처한 조건과 비교해본다면 여러 시사점이 있을 것 같다.”

다시 참여연대에 돌아오게 되면, 어떤 운동을 하고 싶나?

“첫째, 대중운동적 지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중적 에너지가 촛불집회에서 분출됐다. 기존 운동 메시지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 인터넷 상에서 어떤 고민과 토론이 이뤄지는지 살펴 운동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1년간 인터넷 사업이라고 한 게 홈페이지 개편사업이었다. 셋째, 청소년들이 촛불을 가장 먼저 들었는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 너무 모른다. 청소년들의 문화 생활적 메시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참여연대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는데, 어느 순간 뒤처지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됐다.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참여연대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9월 10일이면 참여연대 창립 14돌인데,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요즘 참여연대가 뜻하지 않게 시련을 겪고 있다. 간부들이 구속 수배되고,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손해배상 소송도 걸리고. 이런 때일수록 회원들께서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과 신뢰, 자긍심을 변함없이 보여주시면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촛불집회의 와중에 참여연대가 일반 시민은 둘째치고 우리 회원들과 소통을 제대로 해왔는지, 회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반영하는 노력에 게을렀던 것은 아닌지 반성을 많이 했다. 회원들께서도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농성장을 벗어나도 된다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쓸쓸함과 기대가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우선 사우나에 가서 냉온탕을 오가며 긴장을 풀고 싶다. 그러고 나서는 참여연대 후배들을 불러 호프집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맘껏 노래부르고 싶다.”

박원석은 1969년 세상에 나왔다. 88년 사회학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90년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94년 참여연대 창립에 함께 했다. 의정감시센터, 정책실, 연대사업부, 시민권리국 등에서 일했다. 2003~04년엔 안식년을 얻어 홍콩대학에서 국제인권법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2월부터 협동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10년 전에 결혼했다. 그의 ‘인생의 동반자’는 서울YMCA에서 활동했고, 국가인권위 창립 때부터 그 곳에서 일하고 있다. 평소에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왔는데 요즘은 “전혀 못하고 있어 미안”하단다. “나중에 빚 갚을 날이 있겠지”라고 위안한단다.

열 살 난 아들에게서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 “아빠 이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아들이 편지라도 보낼까 하는 기대에 알려줬단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빠 이름으로 등록한 게임에 로그인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이 요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열 살짜리도 알 건 다 안다. 아빠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긴 하지만, ‘나쁜 일’을 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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