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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1월
  • 2008.10.06
  • 1196
  • 첨부 9




다름을 넘어 공존으로 이끄는

나눔의 기술, 대화
 



나무그늘
작가 afterdoing@naver.com


지난 9월초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 있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제가 자주 보는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생각났습니다. 부부와 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보여줍니다. 물론, 끝날 때까지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아직도 코너는 지속되고 있고요.

최근 ‘대화가 필요한’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되고 있지는 않지요. 대체, 대화는 어떻게 풀어야 하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대화를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고 풀어줍니다. 한문(對話)으로 옮겨도 역시 그런 의미입니다.

마주 대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둘러앉는다는 것 외에도 심리적이나 심정적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이겠지요. 또, 주고받으려면 서로 알고 있거나 알아가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한 번의 대화로 끝날 일들은 없으니까요. 서로 모르면 대화가 지속되기 어렵지요.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나를 알리고 상대를 알게 됩니다. 나를 일방적으로 알리면 연설이 되고, 나는 사라지고 상대방 이야기만 듣게 된다면 그것도 대화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즉, 대화는 쌍방향으로 ‘주고받는’ 행위이니까요. 대화는 모두들 필요하다고 하지만,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을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질문법, 대화법에 관한 책들도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에는 훌륭한 분들의 좋은 대화를 엿듣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모범을 보고 나면, 우리의 대화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도 조금은 그런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화 형식으로 쓰인 책을 읽는 재미는 ‘개인’이 글 속에 녹아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입말이 많이 등장하고 대화 상대에 대한 반응까지 살필 수 있어서 훨씬 더 필자들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책속에 묻혀있던 필자가 책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로 펄떡이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고른 책은, 지식인들 간의 논쟁이나 대화를 기획 출판하고 있는 휴머니스트의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동서의 차이 알고 같은 점 찾아 ‘우리’에 다다르기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는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장의 작업일지를 기초로 하여 책 말미에 실어둔 책 기획부터 마칠 때까지의 이야기부터 읽어봐야 합니다.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에서 시작하여 대표 철학자 선정하고 그와 대화를 나눌 주제를 선정하고 진행한 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선정된 동양철학자 이승환 교수(고려대)와 서양철학자 김용석 교수(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 철학과 교수 역임)는 127일 동안 다섯 차례의 대담 30여 시간, 네 차례의 개별 인터뷰 8시간, 동영상 촬영 10시간의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사진 800컷, 녹음 테이프 120분짜리 15개, 메일 210여 통, 녹취 원고지 2,010매의 결과물을 남깁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서로의 논문과 저서를 모두 읽고, 이야기 나눌 주제를 선정하는 등 대화를 하기 전 준비 과정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게 됩니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아는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제대로 못하는 부분이지요. 동서양의 두 철학자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서로의 관점에 대해 충실하게 논쟁합니다. 적당히 봐주기 없이 서로의 생각을 드러내고 차이를 줄여갑니다. 결국은 서로 다른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알고 그 속의 같은 점을 찾고, ‘우리’라는 도달점에 다다르는 모습을 조금씩 보여줍니다. 대화의 시작과 끝이 어때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눈 철학적 대화의 완성도나 적절성을 제가 판단하거나 여기에 잘 정리할 깜냥은 못되지만, 대화가 진행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다양성 공존하는 세상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



『대담』은 휴머니스트의 지식인 대담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입니다. 경희대 영어학부 도정일 교수와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생명공학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주제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지요. 책 앞쪽의 들어가는 말은 도정일 교수가, 책 말미의 맺음말은 최재천 교수가 쓴 형식도 재미있습니다.





도정일 교수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동물을 연구하는 인간, 최재천과 인간을 공부하는 동물, 도정일”이 만나서 엮어낸 책 『대담』은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보다 술술 잘 넘어갑니다. 제가 철학이란 주제에 더 무지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대화자들의 입말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일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의 정체성을 가진 미디어여서 대화보다 훨씬 더 정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마주보는 대화는 둘의 생각이 한 자리에서 동시에 발생하며 하나로 모아지지만, 편지를 통한 대화는 독립된 둘을 주고받습니다. 상호 영향은 받지만 여전히 그 자체로 독립적입니다. 말은 글보다 덜 정돈되었지만, 현장의 분위기까지 전달되어 더 생생하고 친숙합니다. 또 도정일 교수의 도발(?)과 최재천 교수의 날카로움이 부딪히며, 고수가 합을 겨루는 느낌을 보여주니 『대담』이 훨씬 발랄하고 생생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훨씬 더 많이 반영된 선호임을 분명히 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고수는 유전자, 생명복제, DNA, 인간, 예술과 과학, 교미와 섹스, 암컷과 수컷, 젠더, 프로이트, 종교와 창조, 진화라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격론을 벌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벌인 것은 전투가 아니라 대화입니다. 한쪽이 한쪽을 죽이는 승부를 겨룬 것이 아니지요. 이들은 때문에,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21세기에 우리 는 ‘두터운’ 세계를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공생인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삶의 제1조가 아닐까”라고 한 도 교수나 “공생인간, 호모 심비우스”를 강조하는 최 교수 모두 함께 살아가기를 강조하지요. “경쟁을 넘어 협동으로”라는 결론을 진화론이 대세인 생물학자가 꺼낸다는 것도 인상적이고,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는 말로 책을 마감한 도 교수의 편안함, 이걸 그대로 책에 실은 센스 있는 편집부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은 책입니다. 실은 대화라는 주제를 고르고 일부러 사서 본 책인데, 개인 소장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려두고 싶습니다. 책 뒤쪽에 대담 중에 나온 화두와 쟁점을 따로 정리해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해준 배려도 좋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는 은퇴 생활에 설레는 마음



『황병기와의 대화』, 가야금 명인 황병기 교수가 재미 작곡가 나효신 씨와 나눈 일곱 차례의 대담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을 사던 때는 한참 국악을 들어보겠다고 황병기 교수의 ‘침향무’ ‘비단길’ ‘산운’ ‘미궁’ 같은 음반을 사 모으던 시절이었습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서울대 법대를 다니다가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진로를 바꾸었다는 신기한(?) 사람이라는 좀 우스운 이유에서 구입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어려운 전문 지식은 그냥 넘어가고 읽어도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이 책을 보며, 한 분야에 정진하여 명인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사람들이 들이는 노력과 그들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참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느꼈지요. 대담 마지막에 “내년에 정년인데,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하는 나 씨의 물음에 황 교수는 “설레는 마음이 있어요. 왜냐하면 아무 계획이 없이 살 수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이 구절을 읽고 마음에 울림이 컸던 기억이 납니다. 은퇴를 앞두고 편안하게 아무런 계획 없이 살 수 있어서 설렌다는 말을 나도 그 때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얼마나 쉼 없이 달려왔으면 이젠 계획 없이 지낼 수 있어서 설렌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곰씹었었지요.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결실기에 ‘누군가와 편안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리영희 선생의 책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은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진실을 따랐다는 이유로 아홉 번 연행되어 구치소에 다섯 번이나 가고 언론과 대학에서 계속 쫓겨나는 등 굴곡 많은 시절을 보낸 선생의 고단한 삶과, 그 속에서도 지켜낸 올곧음이 임헌영과의 대화를 통하여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이 자서전이 나오기까지에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고희를 맞이한 지난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서 오른쪽 손과 다리의 사용이 불편해진 상황에서 구술을 통한 대화를 하게 된 것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알려면 그의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가 읽었던 책들 속에서 그 흐름을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책 중에 리영희 선생이 좋아하시는 책 제목들이 있기에 정리해 봅니다. 네루의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몽테뉴 『수상록』, 파스칼 『팡세』, 루소 『고백록』,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대화』,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찰리 채플린 자서전』 등입니다. 






책 마무리에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則不殆)는 성현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자서전 같은 것을 마다했지.”라고 한 부분은 마음에 새겨두고자 합니다.


26살 차이의 퇴계와 고봉, 13년간 편지를 주고받다



58세의 퇴계 이황과 32살의 고봉 기대승이 편지로 교류했다는 것은 거짓말 같은 일입니다. 그것도 퇴계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3년 동안에 걸쳐서 꾸준하게. 이들의 편지는 개인 생활과 학문적인 쟁점에 대하여 두루 아우릅니다. 목차에 나오는 제목들만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학문의 도반(道伴)으로서 존중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사단칠정론이니, 이기론 같은 어려운 이야기는 차치하고, 13년간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런 존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상상해 봅니다. 지금부터 편지를 나눌, 대화를 나눌 친구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일까요? 읽는 내내, 그런 존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두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마음에 공간을 만드는 인문학과의 대화



가장 최근에 구입하여, 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1/5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충분히 읽어볼만하다고 강력히 추천합니다.

김우창 선생과 독문학자 문광훈이 나누는 대담 형식으로 정리된 책 『세 개의 동그라미 : 마음·이데아·지각』은 지금까지 나온 김우창 선생의 다른 책보다 조금 수월하게 읽히는 느낌입니다. 선생이 혼자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대화자가 선생의 생각을 풀어서 한 번 더 독자에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선생의 자택에서 2006년 6월부터 10월까지 모두 11회(매회 4~5시간)에 걸쳐 진행된 대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책에는 자상한 할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나오고 인문학자로서의 세상에 대한 발언도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도 인용되어 있는 책 속의 한 구절로 이 책의 소개를 대신합니다. 

“인문학을 너무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하는 것으로 파악할 때,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의 경험도 중요하고, 또 자연의 경험도 중요하고, 도시 공간의 경험도 중요하지요. 공간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 마음속에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마음속에 공간 의식을 기르고 살려야지 그것을 추상적인 틀에 넣어버리면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지요. 좋은 경치만 자주 보아도 마음이 너그러워지지요. 마음에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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