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1   1322

참여마당_인터뷰: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힐 촛불소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힐 촛불소녀


김지인 회원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mairim@hanmail.net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이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가을편지>일부 고정희)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이라고 한다. 구구절절한 연시가 바닥난 감성을 자극하고,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로 애원하는 노랫가락이 마음을 흔든다. 분명 정서는 아날로그식인데 감정은 디지털화된 지 오래이다. 손편지보다는 전자우편에 익숙하고 때론 휴대전화 문자로 심경을 날린다. 세태는 이러한데 시절을 역주행(?)하는 한 소녀를 만났다.

김지인(18세) 회원. ‘참여사회’책자에 오를 기록이 많은 여학생이다. 90년 생으로 최연소 인터뷰이요, 수학능력고사를 20여 일 앞둔 고3학생이요, 직접 만든 예쁜 봉투에 자필로 쓴 장문의 글을 우편으로 참여연대 앞으로 보낸 주인공이다. 사람냄새 나는 필체를 펼쳤을 때 간사들의 환성과 감동은 산모롱이를 돌다 홀연히 만난 꾀꼬리단풍(노랗고 빨간 여러 빛깔의 단풍)이었으리라.

인왕과 북악산이 풀어내는 가을 물감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참여연대 옥상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대학입시에 일상을 저당 잡힌 ‘작은 화분에 담긴 꽃’이 아닌 풋풋한 들꽃이다. 보랏빛 쑥부쟁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사진 촬영에 웃음을 쏟아낸다.

앞머리를 비스듬하게 자른 여고생 특유의 헤어스타일에 장난기가 엿보였다. 청바지에 헐렁하게 걸쳐 있는 주홍빛 티셔츠의 카피에 눈이 갔다. ‘Keep Peace’ 자신의 항변으로 짐작되었고 다분히 그럴 소지가 있을 학생으로 느껴졌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자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학교 교육의 ‘획일화’가 논조였다.

꿈은 가까이 있다

“수능 패턴에 맞추기 위해 7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8교시는 자율학습으로 학교에 잡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종종 땡땡이를 치곤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대학입시가 최대 관건이라는 걸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0교시에서 11시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로 이어지고, 오로지 학업상담만이 상담의 본령이 된 지 오래이다. 교육과정은 차치하고라도 학생들의 개성과 감정마저도 획일화시킨다고 불만이 가득하다. ‘너만 그런 게 아냐, 모두 힘들어, 조금만 참어…’라며 위로라고 해주는 말씀들이 조금도 힘이 되지 않고 오히려 무기력증후군을 양산하니, 학교 교육의 위압감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단언할 수 있으리라.

말도 못 하게 하는’ 학교에서 어찌 창의적인 생각과 민주적인 절차가 있을 수 있겠냐며 불평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때론 애교심 충만한(?) 발언도 사이사이 끼워놓았다. ‘전통이 강한 우리학교지만 그래도 다른 학교와 비교하면 우리는 덜 한 편이예요, 우리를 지지하는 선생님도 더러 계셔요…….’

한때는 자퇴를 하겠다고 6개월간을 부모님께 투쟁(?)을 했지만 결국 윤리선생님의 중재와 설득으로 평화롭게 투쟁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사회과학부를 목표로 꿈과 희망을 펼치겠다는 각오와 확신을 얻었다. 더구나 해외교육프로그램인 ‘피스보트’과정을 생각하며 지금도 가슴이 박동 친다며, 세계를 일주하며 인권과 평화를 논한다는 그 자체가 진정한 학문의 길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뱃전에서 난데없이 들꽃 향내가 넘실대는 듯했다.

회원 가입이 올해 2월이었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 뉴스에 많이 오르는 시민단체라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죠. 그런데 작년 말 윤리시간에 대선후보를 조사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제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자료를 찾아 조사하는데 11시간이 걸렸어요. 한마디로 기회주의자의 표본이더라고요. 그런데 여론은 CEO로, 경제를 살리는 후보로 몰고 가더라고요. 5,000억 부채로 현대건설을 결국 부도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인수위가 어설프게 ‘엉망 영어’ 한반도대운하 정책 밀어붙일 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회원으로 가입을 했지요. 회비는 최소 금액으로 하고 친구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지요.”

악동 같은 표정이지만 웅숭깊은 속마음이 ‘묵은 회원’을 능가한다는 느낌이 들어 든든했다. 그 후 고3수험생이라는 본분(?)을 버리고 민주시민으로서 꿰차고 나간 자리를 짚어보면, 20회에 가까운 촛불집회 참석, 자유발언, 한겨레신문 인터뷰, 청소년을 위한 엔지오 가이드북에 촛불집회에 관한 원고 기고, 촛불농성 100일 문화제 참가……. 더구나 오늘 인터뷰 후에는 무박2일로 떠나는 가을 정선 답사를 위해 가벼운 배낭까지 메고 나왔다. 수능이 눈앞에 당도한 시점인데 그야말로 여유만만하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속하기에 그런 여유가 있는 것일까. 자못 의아했다.

“그간 공부를 너무 안 했어요. 답사 다녀와서 정신 바짝 차려서 공부에 올인 해야지요.”
이 무슨 선문답인가. 아니 그보다는 결승점을 앞두고 전력 질주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리라. 과연 10대다운 자신감과 모험심이 매혹적이었다.


민주주의 실현은 ‘참여’와 ‘연대’로

진보적인 시민단체에 재갈을 물리고 채찍을 휘두르는 요즘, 참여연대에 10대 회원- 내면에 많은 목소리를 지닌 예민하고 호기심 많은- 이 성큼성큼 다가왔다는 건 행운인지도 모른다. 한층 정교해지고 대중화된 현대사회의 포섭 기제, 특히 미디어나 이미지를 집권 세력이 장악함으로써 젊은층의 정치적 각성이 쉽지 않을 것을 예측한 한 지식인의 글이 떠올랐다. 변혁의 가능성을 낙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 앞에 앉은 이 신선한 젊은이를 보면 성급한 예단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희망을 감지하는 센서가 가정(假定)의 세상을 열었다. 상근자로 활동한다면 어떤 부서에서 무슨 업무를 맡고 싶으냐고 물었다. 총알 같은 답변이 나왔다.



“시민참여팀에서 교육과 홍보를 담당하여 회원 확보를 일순위로 하고 싶어요.”

야무진 생각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졌다. 시민운동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민생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참여’해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연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연대는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회원으로 힘이 부족하다. 회원 확보를 위해 참여연대의 역할을 홍보하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영상 미디어나 여러 매체, 퍼포먼스를 통해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장문의 손편지 내용 중 회원 확보를 위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참여연대 안에서만 행사나 캠페인을 진행하기보다는, 시민들을 ‘알게 하는’ 강의와 토론시간 준비 때는 다른 단체나 학교에서도 전문가를 초빙하고(이건 잘 되더군요. 굳이 적을 필요가 없었는데), 캠페인 진행에 있어서도 여러 곳의 자문을 받고,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주최하거나 진행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회원 간 교류 확대와 10대 회원의 확보, 입소문 빠르고 활동 여유가 있고 생활 실천거리를 찾는 주부회원 확보…지금 회원들이 참여연대 회원임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며 그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 가입을 권유하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언제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거쳐 참여연대의 간사가 될 날이 올지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시절 탓인지 아늑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가을인데…….

‘참여사회’의 고급(?)독자라 책자에 대한 서평과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하자,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제가 고3이라 특별히 주목을 받는 것 같아 좀 부담스러워요. 신문도 때로는 귀찮아서 보기 싫고, 마음은 촛불집회에 나가야 하는데 피곤해서 침대에서 뒤척거리기도 하고, 실천보다는 말이 앞서기도 하고, 소시민적인 게으름도 많고…이 인터뷰 자체도 그래요.”

 영락없이 선생님 앞에 반성문을 내미는 학생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초롱초롱 반짝인다.

 “책이 오면 제일 먼저 신입회원 명단부터 보고, 내가 날개를 달게 없나 그것부터 봅니다. 특집이나 이슈 같은 지면은 상당히 유익해요. 특히 통계나 도표 같은 자료는 꼼꼼히 살펴보는데 교실에서 못 배우는 걸 책을 통하여 많이 배웁니다. 그러니 책을 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입니다. 애정 어린 비판? 책도 마찬가지지만 회원 참여 공간이 적은 것 같아요. 회원 모임이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운영되어 회원 가입이 늘었으면 해요.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아야 힘도 나잖아요. 촛불집회 때 절실히 느낀 경험이라 어쨌든 회원 확보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정곡을 찌른다. 맑고 투명한 피부색과 어울리는 10대다운 대화법이다. 보랏빛 쑥부쟁이 꽃송이는 연신 바람 따라 한들거리고 가을밤은 깊어만 간다.
 아직 정선으로 떠날 시간은 여유로운데 고3 수험생은 입시와는 상관없는 책을 안고 아우라지 강가를 거닌다. 또 누구에게 가을편지를 쓰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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