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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08월
  • 2008.07.28
  • 1025



    편치 않은 한여름 밤의 꿈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연일 폭염 아니면 장맛비 온다는 소식뿐이군요. 편치 않은 한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치 않은 이유가 어찌 날씨 때문만이겠습니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조계사의 농성장 천막 안에서 찜통더위에 시달릴 수배자들 생각이 나서 짜증이 더욱 솟구칩니다. 거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촛불 집회에 나올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할까 싶어 제 마음마저 어둑해지곤 하지요. 설마 별 걱정을 다한다고 비웃진 않겠지요. ㅎㅎ

김 선생, 오늘은 작정하고 제 하소연을 할까 해요. 혹시 제가 참여연대에 찾아오는 사법피해자들 때문에 종종 곤욕을 치른다는 얘기를 했었나요? 아무리 언론이 NGO가 권력의 제5부입네 호들갑을 떨어도 아직 많은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민원기관 정도로 여기고 있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시민단체가 해야 할 주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해요. 아마도 시민단체를 찾는 억울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 억울함을 법원에서 처음으로 토로했겠지요. 하지만 1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는데도 패소하게 되면, 정의가 무너졌다고 분노하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자연스럽게 사법피해자가 되곤 하지요. 사법적 판결이 자신의 주장과 거리가 멀수록 사법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극심해지고, 극단적으로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지요.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사법피해자들에게 사법부의 판결이 곧 정의에 대한 판단이 아니며 실체적 진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또한 패소했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느낄 필요가 없음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그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지요. 양심의 결백과 정의의 승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구명만을 일관되게 요구하는 거의 한 맺힌 수준의 그들을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법피해자들이 오랜 재판 과정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크게 피폐해 있어서 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며 불편한 마음을 달래곤 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얼마 전 사법피해자와 똑같은 심정을 느꼈습니다. 삼성 판결 때문이었지요. 김 선생도 ‘교묘한 형식논리를 동원하여 이건희 전 회장 등 삼성그룹 경영진의 국기문란 범죄행위에 대해 총체적 면죄부를 부여’한 재판 결과를 알고 계시지요. 재판정에 다녀온 참여연대의 한 간사는 ‘운동을 계속 하면 뭐 하나’ 하는 회의까지 들었노라며 참담함을 토로하였습니다. 저는 그를 달리 위로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삼성 그룹 전 현직 경영진들에게 모두 무죄나, 면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법원의 결정을 접한 후 지금까지 허탈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더욱이 이건희 전 회장측이 항소심에서 ‘조세포탈 부분이 사기·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하는지, 벌금형의 액수는 적절한지’를 따지려고 항소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기를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참여연대를 비롯한 경제 민주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노력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었단 생각과 사법부가 더 이상 사법정의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판단은 결국 저로 하여금 자진해서 사법피해자가 되게 했습니다. 어쩜 저는 항소심에서도 실망스러운 판결이 계속된다면 사법피해자를 넘어 정신질환자가 될지도 모르겠단 끔찍한 상상을 하기도 한답니다.  

저에게 끔찍한 상상력을 발동하게 하는 것은 삼성 판결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6월 30일 새벽 6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임시로 활동하고 있는 참여연대에 압수 수색이 들어왔었지요. 저는 압수 수색이 들어오기 며칠 전부터 검찰이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설마 했습니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바이기에 영장을 청구한단 얘길 듣고도 그리 새삼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법원이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몸 안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기에 꼭두새벽부터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파손하면서까지 들어왔는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충격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증거 인멸 시도가 명명백백했던 삼성그룹 본관 건물을 압수 수색할 때의 젠틀함과는 매우 대조적이더군요. 그 날 경찰이 압수한 물품은 현수막, 마이크, 비옷 등입니다. 폭력시위 혐의의 입증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심지어 압수한 비옷은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불법단체인 양 몰아붙여 국민과 대책회의를 분리하려는 의도로 감행된 우스꽝스러운 과잉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국민들이 압수 수색 이후 참여연대가 범죄집단인 양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하긴 누군들 새벽녘 수십 명의 경찰이 들이닥쳐 사무실 곳곳을 뒤져대다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나 큼직한 상자를 챙겨 나오는 모습을 보고 의연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작정하고 하소연을 한다고 했지만, 너무 심했지요? 제가 요즈음 거리에서 데모를 하다가 사복경찰에 채이거나, 참여연대 사무실을 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 채 빙빙 배회를 하는 꿈을 상습적으로 꾸다보니 엄살이 늘었어요. ㅎㅎ 80년대식 공포정치 시대를 경험한 사람만이 꿀 수 있는 꿈이라구요? 아니랍니다. 조중동 신문에 대한 광고게재를 반대하는 소비자운동에 동참한 네티즌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나 압수 수색 등 공안정치로의 회귀를 연상케 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폭압적인 파시즘 정치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조차 저와 같은 꿈을 꾸게 하지요. 김 선생은 요즘 어떤 꿈을 꾸시나요? 설마 저와 비슷한 꿈을 꾸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잠이라도 편히 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한여름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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