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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08월
  • 2008.07.28
  • 973




   산사 가는 길의 전기자동차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gojinayo@hanmail.net




태풍이 휘몰아친 주말 오후에 무료해 죽겠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잔뜩 찌푸린 낮은 하늘 사이로 빗줄기가 오락가락 하는 틈을 타 나들이를 나섰다. 목적지는 집에서 40㎞쯤 떨어진 경기도 양평 용문사. 천 살 먹은 은행나무로 잘 알려진 절이다. 옛날 셈법으로 100리길이지만 사통팔달로 시원스럽게 길이 닦인 요즘은 채 한 시간 거리도 되지 않는다.

찜통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공기는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그러나 우람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용문산 계곡은 어둑어둑했고 한기마저 일었다. 선풍기 앞에서 에어컨 앞으로 옮겨 앉은 것처럼 체감온도가 바깥보다 4~5도는 낮게 느껴졌다. 간밤에 쏟아진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 물소리가 요란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희미하게 천둥이 치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천둥소리에 무섭다고 돌아가자 보채는 둘째를 군것질거리로 달래며 상가의 야외탁자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차 한 대가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자동차는 어딘지 모르게 색달랐다. 계곡 물소리 때문인지 엔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4인승이었는데 아주 아담했다. 동화의 한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였다. 자동차의 꽁무니에 ‘전기자동차’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자동차는 독경 테이프를 튼 채 운행하고 있었다. 존재감 미미한 자동차의 예고 없는 등장에 사람들이 놀라거나 부딪치기라도 할까봐 일부러 기척을 내려는 것일까. 아이들은 이 깜찍한 차를 타보고 싶다고 했다.

용문산에는 아기자기한 계곡도 많고 절도 많다. 그 중 사나사 계곡은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피서지였다. 그늘에 앉아 계곡물에 발 담근 채 한여름 더위를 잊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턴가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1㎞ 남짓한 좁은 길을 오가는 차들이 거슬렸던 것인지 모른다. 평화로움을 깨뜨리는 자동차 소음, 매연과 먼지, 갓길에 주차된 차량들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차량들. 그런 차들을 피해가며 걷거나 그런 광경을 보아야 하는 것이 마음 불편했던 것일까. 여름에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즐기려고 부득부득 차를 몰고 올라온 얌체 피서객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때가 아니어도 주말이면 그 길엔 차가 많았다. 번호판을 보면 외지 차가 적지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절을 찾은 신도들 같았다.

먼 길 오가자면 한가롭지만은 않겠지만 텅 빈 주차장에 차는 세워두고 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벗 삼아 걸으며 바쁜 마음 잠깐 내려놓아도 좋으련만. 편리함과 속도만 좇는 세상에 산사를 찾는 마음들이기에 남다른 기대를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산사 가는 많은 길이 포장되어 있지만 절에 사는 스님네들부터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용문사 가는 길에 전기자동차를 보면서 걷기가 힘들면 친환경 탈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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