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13   1183

참여연대는 지금_굿모닝 세미나: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흉보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흉보다

글쓴이  아름이. 기르는 고양이와 이름이 같다. 그는 세미나를 거르는 법이 없다. 단 하나의 예외상황은 길을 헤매는 길고양이를 만날 때이다. 길고양이가 다쳤을 때는 어김없이 병원으로 달려간다.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 구석구석 바라보고 애정 어린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작년 10월 『페미니즘의 도전』을 시작으로 <굿모닝세미나>에 참여한 지도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굿모닝세미나>를 ‘페미니즘’ 강좌로 생각하고 열심히 강의만 들을 생각이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이신 정희진 선생님은 4주째에 오세요. 그 때까지 여기 모이신 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질문거리를 만들어가요.”

세미나 진행자인 솜사탕 님(세미나 참가자들끼리 부르는 별칭)의 뜻밖의 제안에 참가자들은 순간 동요했다. 페미니즘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하라니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10여 명의 참가자 중에 남성은 내가 유일했다.

‘이러다가 말도 한마디 못하고 듣기만 하다가 오는 거 아니야?’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공부가 더 많이 남는 거 아니겠어?’

우여곡절 끝에 힘겹게 3주간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저자와의 대화’ 까지 마치고 나니, 강좌보다 오히려 토론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재밌고 효과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답은 내 안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페미니즘을 다룬 첫 세미나 이후로도 『남자의 탄생』,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희망의 밥상』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세상살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세미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미나가 거듭되다보니 계획한 내용과 달리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고민거리들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게는 행운이다. 친한 사람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말 못할 이야기라도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후련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고해성사가 따로 없다.

세미나를 하면서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내가 점점 말이 많아지고, 또 말을 빨리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말문이 트인 아기’같다고 할까. 물론 말이 많아져서 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꼭 해야 할 말조차도 사람들 눈치를 살피느라 꺼내기 싫어했던 내게는 긍정적인 변화임이 분명하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소통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건 사회에서건 마이크는 언제나 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않는가. 그들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불행히도 가는귀가 먹었는지 힘 없는 존재의 작은 목소리를 듣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둔감한 귀에 똑똑히 들리도록 날카롭지만 합리적인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말하는 것보다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입바른 소리조차도 내지 못하게 되는 폐단이 생기고 말았다. 합리적인 비판과 토론 문화가 부재한 현실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작은 토론모임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좋은 책을 나침반 삼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의 경험에서 용기를 얻어 세상 끝까지 들리게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세상은 당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잖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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