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6월 2008-05-19   1599

북리뷰_ 인도를 통해 문명의 공존을 말하다

인도를 통해 문명의 공존을 말하다

이옥순 작가·연세대 연구교수  indo21@naver.com

냉전체제가 사라진 이래 ‘문명의 공존’은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문명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다 인정하는 비폭력과 평화의 땅 인도를 빼놓을 순 없으리라. 3세기 불교학자 나가르주나가 부처의 기본적 가르침을 비폭력이라고 정의했고, 20세기 간디가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때만” 진정한 비폭력이라고 말한 인도에는 자이나교, 불교, 힌두교, 시크교 등 인도에서 시작된 모든 종교가 비폭력과 평화를 믿고 실천하며 공존했다. 인도에 피난처를 구한 이방의 종교도 힌두 지배자의 보호를 받으며 정착했다. 8세기 페르시아의 배화교도는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인도에 도착했다. 이미 인구가 초만원인 구자라트의 왕은 배화교도들이 우유가 가득 담긴 잔에 한 방울의 우유도 흘리지 않고 금화를 넣으며 읍소하자 거주를 허락하였다. 파르시라고 불린 인도 배화교도는 현재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이 되었다. 남부지방 코친에 도착한 유대인도 힌두 왕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왔다. 서방에서 물리력을 앞세워 도착한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인도에 뿌리를 내렸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포용의 힌두교

인도에서 여러 종교와 문명이 충돌 없이 공존한 건 인구의 다수가 믿는 힌두교와 무관하지 않다. 종교의 박물관처럼 다양한 믿음을 인정하는 힌두교는 삶의 의미와 방식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망라한다. 유심론과 유물론, 일원론과 이원론처럼 상반되고 모순되는 믿음과 배타적 브라만교에 반발하여 일어난 불교와 자이나교까지 수용한 힌두교는 바가바드기타의 구절처럼 “어디에서 어떻게 나에게 오든지, 그들이 내게로 오는 어떤 길을 택하든지 그들은 내 제자이다. 나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창시자나 예언자가 없고 교리나 신도를 위한 ‘하라, 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이 없는 힌두교는 바이블이나 코란과 같은 성서가 없고 기독교와 이슬람에서 보이는 예배의 형식도 없다. 기원전 1500∼500년경에 성립된 브라만교에 북부 인도에 존재한 다양한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대중을 이끄는 종교 이념으로 발전되고 전(全)인도적 성격을 가진 힌두교에는 헤브라이즘에서 보이는 정통과 이단의 구별이 없이 모든 것에 개방적이다.

종교라기보다 삶의 방식으로서 힌두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고 신에게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며, 신을 따르고 추구하는 형태와 방식은 달라도 모든 사람들이 신에게로 가는 같은 노정에 있다고 여긴다. 사람의 수만큼 수많은 신이 존재하고 그 수만큼 다양한 믿음과 종파를 인정하는 융통성과 관용이 특징인 힌두교의 땅에서 교회와 사원, 모스크와 회당이 나란히 자리잡고 연방주의적 여러 문명이 수천 년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용과 상호존중은 제국의 힘

인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여겨지는 3명의 지도자(아소카, 악바르, 간디)가 모두 관용과 비폭력을 실천한 건 주목할 만하다. 50년을 재임한 무굴의 두 황제(악바르와 아우랑제브)의 엇갈린 통치방식도 문명의 충돌과 공존의 결과를 잘 보여준다. 13세에 황제에 올라 50년간 재위한 악바르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융성한 무굴문화를 열었다. “모든 백성이 내 자식들”이라고 말한 그는 ‘자식들’이 지역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 평화롭게 살도록 관용을 실천했다.

 악바르는 힌두교도와 결혼동맹을 맺고 무슬림이 독점한 고위관직에 힌두교도를 임용하였다.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힌두교도와 시크교도에게 부과하던 인두세와 순례세를 폐지한 악바르는 조로아스터교도, 힌두교 브라만, 자이나교도, 요가수행자를 초대하여 토론을 즐겼다. 예수회에게 많은 돈을 기부하여 선교단과 학교를 짓게 도운 악바르는 기독교도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무굴문화의 융성은 평화로운 공존의 산물이었다. 음악을 멀리하는 이슬람의 전통을 깨고 힌두의 고전음악이 궁정에서 인기를 끌었고, 힌두교도 탄센은 황제의 후원을 받으며 음악으로 이슬람과 힌두 문화를 통합하였다. 이슬람 양식의 건축에 힌두의 조형미를 더한 무굴 양식의 건축도 독특한 경지를 이뤘다. 미술에서는 페르시아풍의 세밀화에 힌두의 전통적 회화수법이 가미된 무굴세밀화가 발달했다. 

이와 반대로 악바르의 손자이자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반세기간 제국을 다스리며 최대 영토를 확보했으나 제국의 몰락에도 기여했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그는 코란에 기초한 이슬람법을 힌두교도와 시크교도에게 적용하고 인두세와 순례세를 재징수하며 박해하였다. 종교탄압에 분개한 여러 힌두 세력은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는 가장 강하게 도전한 마라타를 정복하려고 26년간 몸소 군대를 이끌고 정복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왕궁에서 술과 가무를 금지하는 한편 선대왕과 달리 건축에도 돈을 쓰지 않은 아우랑제브는 다수가 힌두인 나라에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고 기도하였으나 적을 만드는 위험한 정책이 부메랑이 되면서 그 꿈은 사라졌다.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인 관용과 개방적 정책으로 제국의 전성기를 연 악바르는 인도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여겨지지만 자기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제한 아우랑제브는 최악의 황제로 평가받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공존의 비법,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어느 날 잠자는 사자의 갈기를 겁 없는 생쥐가 갉아먹기 시작했다. 잠이 깬 사자는 화를 내며 생쥐를 잡으려고 했지만 생쥐는 약을 올리듯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하찮은 적을 직접 상대할 수 없다고 여긴 사자는 마을에 내려가 고기를 미끼로 고양이를 사자 굴로 데려왔다. 사자는 생쥐의 소리가 날 때마다 고기를 던져주며 생쥐를 잡으라고 고양이를 격려했고, 생쥐는 고양이가 무서워 쥐구멍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여러 날이 흐른 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생쥐는 쥐구멍 밖으로 나왔고, 곧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생쥐가 사라지자 사자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고 얼마 뒤에는 아예 고양이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공존과 상생의 본질을 꿰뚫는 이 인도 우화는 “고양이는 생쥐가 있으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만화의 주인공인 톰에게 제리가 필요하듯 부자는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낮은 아이들이 있어서 비교우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약소국이 없으면 강대국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힘세고 잘나고 강한 자들이 ‘윈-윈’의 정신을 저버리고 ‘나’를 과신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세상의 모든 비극이 탄생한다. 

“내가 반을 접을 테니 너도 반을 접어라!”

양쪽이 반씩 양보하는 카다도라는 타협의 방식은 인도의 부자 집단 구자라트 상인들의 성공비결이었다. 인도 서해안을 낀 구자라트 지방의 상인들은 타협의 방식으로 해상무역을 벌여 많은 부를 일궜다. 대양을 작은 호수로 여긴 그들의 활동은 동남아에서 서아시아와 이집트는 물론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국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었다.

구자라트 상인 출신의 간디는 19세기 말 남아프리카에서 이 방법을 써서 명성을 쌓았다. 변호사인 간디의 설득으로 이해당사자들은 재판을 하지 않고 화해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비용과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감정의 앙금을 없앴다. 간디는 이런 중재과정을 통해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확신하였다. 구자라트 상인들이 평화가 번영을 보장하는 사실을 알고 갈등과 투쟁보다 화해와 타협을 선호했다.

인도는 서북지방을 통해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과 정복을 받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그리스, 페르시아, 아랍, 터키, 아프간, 몽골의 침입을 받고 11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지배 800년과 영국의 통치 200년을 겪었다. 그러나 인도는 새로 온 이들과의 정치적 협력과 문화적인 동화와 융합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수많은 종교, 언어, 종족, 문화의 상생과 공존의 현장인 인도는 상이한 문명과 종교가 공존하려면 관용과 상호존중이 필수라는 걸 만방에 예증한다.

공존을 생각하며 읽을 책

인도를 통해 문명의 공존을 생각하며 함께 읽을 책 몇 권을 소개한다. 먼저, 하랄트 뮐러 의 『문명의 공존』이다. 독일의 뮐러는 냉전이 종식된 후 세계 정치를 분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하나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관심을 끌자 상이한 문명권 사이의 갈등이 세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이분법적이라고 비판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건 여러 문명의 공통점과 공감대를 찾는 대화와 협력이라고 『문명의 공존』에 적었다.

뮐러는 세계의 문명권을 대결구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파악하고 문명 간의 협력, 동맹, 조화로운 공존과 대화가 세계 공동체의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문명의 공존이 중국의 도전이나 이슬람 근본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의 문제라고 말한 뮐러는 강자인 서구에게 개방과 다른 문명에 대해 더 많이 배울 것을 조언했다. 그의 처방은 인도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개방, 관용, 문명간의 대화이다.

 헌팅턴을 비롯한 서구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슬람의 위협은 미국의 일방적 입장을 대변한 데 지나지 않았다. 뮐러도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 이미지의 생산과 수용의 위험성을 설명하였다. 중동 출신의 비교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미국의 공격이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양이 이슬람문명, 곧 동양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원한 ‘무지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호전적이라는 부정적 이슬람의 이미지는 사실인가? 사이드는 일찍이 1978년에 출간한 『오리엔탈리즘』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된 관점을 비판하였다. 사이드는 서구유럽이 친숙한 ‘우리 서양’과 낯선 ‘그들의 동양’으로 구분했다고 보았다. 가장 큰 이분법은 ‘서구〓문명’과 ‘동양〓야만’이었다. 낙후한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타락한 어린애로, 합리적이고 도덕적 어른인 서양에 비해 열등하여 그 훈육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발전한 서양과 낙후한 동양’의 대비는 서구가 비서구 세계를 인식하는 고정불변의 공식이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라크 인을 판단력과 자기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부족한 어린애로 여기고, 그 ‘피터 팬’을 대신해 이라크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의의 ‘샘 아저씨’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문명의 충돌을 말한 헌팅턴과 문명의 공존을 주장한 뮐러가 서양의 역할을 강조한 점에서 같은 입장이라고 파악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쓴 목적이 서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 받는 아랍과 제3세계를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책이 출간된 이후 세계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서구 문화의 상대적 진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판은 거세지만 한번 각인된 편견을 전복할 방법은 마땅치가 않다. 차별인식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일상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서구 사회가 동양 사회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건 누가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주장처럼 어리석다. 이옥순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와 동양의 공존에서 나아가 동양과 동양의 공존에 대해 생각한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소설과 여행기 등 문자미디어에 담긴 인도 이미지를 분석한 책에서 저자는 ‘동양’인 한국이 인도를 먼 ‘동양’으로 저평가하고 서구를 중심에 두는 기이한 현상에 주목한다.

식민통치를 겪은 우리가 인도를 통치한 영국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고 구성한 ‘열등한 인도’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건 발전한 자신을 확인하고 선망하는 서양을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만한 시선은 인도와 우리의 관계개선에 장애물로 작동한다. 다원적인 인도를 다면적으로 접근하고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는 것이 세계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공존과 상생의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 『간디의 자서전』을 읽는 것도 좋다.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관용과 상호존중, 대화와 같은 평화로운 해결안이 늘 유효한 공존의 비법이다. 비폭력을 설파한 간디가 전쟁과 유혈로 얼룩진 20세기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건 그래서이다. 가공할 폭력수단의 개발에 공헌한 아인슈타인도 핵무기가 가져올 대량파괴에 대한 처방으로 간디의 비폭력을 들었다.

‘눈에는 눈’이라는 서구의 논리라면 세상에는 장님만 남을 것이라고 말한 간디는 비폭력으로 폭력으로 대응하는 대영제국을 ‘도덕적으로’ 이겼다. 간디의 자서전에는 채식주의와 금욕, 비폭력과 소박한 생활을 실험한 삶과 평화적으로 인도의 운명을 바꾼 신념이 담겨 있다. 비폭력은 미국의 흑인운동과 아프리카의 인권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평화로운 방식의 투쟁은 정당성을 얻고 외부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효과적이다. ‘좋은 전쟁’이 없듯이 ‘나쁜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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