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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04월
  • 2008.03.13
  • 833

 

 

풍선으로 꿈꾸는 세상이야기



홍남숙 회원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mairim@hanmail.net

입춘 지나고 우수가 집 앞까지 왔는데 바람 끝에는 칼날이 번쩍이는 날이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기온이 낮다는 날, 눈코 뜰 새 없다는 홍남숙(43세) 회원에게 어렵게 시간을 얻었다. 도봉세무서 앞에서 그녀의 작업실까지 찾아가는 길은 짧은 거리였지만 바람이 사정없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겨울이 깊으면 봄 또한 머지않았다는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홍선생 풍선아트-풍선아트전문교육기관’이라는 큼직한 간판 아래 실내의 분위기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알록달록, 올망졸망, 알숨달숨한 풍선들이 따뜻한 바람을 한껏 품고 길을 밝히고 있었다. 절로 발길을 멈추게 하는 인테리어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빨간 풍선 같은 ‘홍선생’이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마기 없는 머릿결에 갈색 뿔테 안경. 커리어우먼의 자신감 넘치고 활달한 모습에 잠시 긴장했다. 하지만 커피를 내놓는 손을 보며 쉽게 말문이 틔었다. 그 손끝에서 얼마나 많은 풍선이 탄생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탄성을 선물했을까. 마이더스의 손이 따로 있으랴. 손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자, 못 생겼다는 한마디로 겸손함을 대신했다.


이번 총회에서 만 10년 성실회원으로 감사패를 받는 소회를 물었다.


“참여연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어요. 처음 둥지를 튼 용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믿음을 갖게 해 주어 고맙지요. 긴 세월이 흘렀으니 간사들이나 회원들을 예전처럼 속속들이 알지는 못 하지만 무조건 믿는 거예요. 그리고 참여연대를 통해 내 삶의 한 획이 그어졌으니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죠.”


그에게 참여연대는 ‘청춘의 역사’였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발을 딛기 시작해 ‘엄마’가 되고도 초심 그대로이니. 초창기인 ‘용산 시절’은 봉사의 나날이었다. 당시 사무실은 임대료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일(미술학원 경영)이 끝나면 달려가서 이것저것 힘을 보태었다. 예술적인 감각과 손재주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글씨체와 행사용 조형물은 참여연대의 위상을 빛내주었다. 간사와 회원 구분이 없었던 때였지만, 간사들의 밀린 월급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회비 한 번 더 내기까지 했던 시절이었다.


회원모임인 ‘청년마을’의 창립 멤버가 되면서 그녀는 그 마을의 청년과 사랑에 빠졌고, ‘누나’라고 부르던 후배 회원과 일가를 이루었다. 청년마을 여섯 번째 커플이라 하니, 청년마을은 선남선녀들에겐 예사로운 회원모임이 아닌 성싶다. 이제 이들은 청년마을 소속의 ‘장년마을’ 사람들이라 한다.


‘안국동 시절’엔 느티나무 카페의 매니저로서 소통과 담론의 장을 시원스레 제공하기도 했다. 요즘 ‘뜨는 사람’들 중에는 느티나무 그늘 한자락이 스쳐가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일을 끝내고 새벽에 퇴근하는 간사들의 발이 되어주기도 했다. K· T· L… 님에 얽힌 에피소드는 『참여사회』 책자의 부록으로 훌륭했다. 발간할 기회만 있다면.


위기에서 떠오른 풍선아트의 길


위기가 기회이고, 절망 끝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언어의 성찬만은 아니었다. 12년 간 운영해오던 미술학원도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정부에서 어린이집, 유치원에 대한 보육료를 지원하자 원아들은 풍선에 바람 빠지듯 나갔다. 그렇잖아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이라 신바람 나게 학원을 접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를 바라보니 참으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구라는 한 별에서 보면 점 하나 찍어지지도 않는 곳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그날이 그날처럼 살고 있다는 게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더군요. 뭔가 삶에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여겼는데 마침 아들 생일이었어요. 생일선물로 풍선 장식을 했더니 주변에서 깜짝 놀라더군요.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반응이 하도 좋아 학원 문을 닫아버렸죠.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오더라고요. 정말 미술학원 망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대책 없이 긍정적이라고 할까. 오늘의 정신적 풍요 앞에 가난한 과거는 달콤한 추억거리 밖에 되지 않는 듯했다.


풍선아트의 의미와 전망에 대하여 말을 건네자,


“풍선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예요, 부드러움과 감각을 매개로 꿈을 펼칠 수 있어요. 풍선으로 못 만드는 게 없어요. 심지어 옷까지 만들어요. 물론 입을 수 있죠. 아무나 쉽게 잘 할 수 있지만 꾸준해야 끝까지 갈 수가 있어요. 경기를 안타는 직종이라고 할까? 장사가 안 될 땐 이벤트로 한 번 할 수 있고 또 잘 되면 기분 좋아 풍선 장식하고. 요즘은 돌잔치엔 기본이고 교회에서 하는 결혼식에 종종 환영을 받죠.”


굳이 풍선 장식이 대행사업의 들러리이기보다는 실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반짝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한번 배워놓으면 평생 쓸 수 있는 재주요, 쉽게 배울 수 있어 성취감도 솔솔하고, 재료비도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최근엔 학교에서도 방과후 수업을 위한 교사 교육으로, 백화점 문화센터 출강, 대형마트의 이벤트 행사 등 길은 활짝 열려있다. 풍선에 더 큰 꿈을 싣는다면 유아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풍선이 갖는 특성상 온도의 영향을 받기에 계절이 제한된다는 게 단점이라고 한다. 독립된 작업장을 마련하는 날이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란다.


장년마을에서 노년마을로 갈 때까지


이번 정기총회에서도 그녀는 어김없이 풍선 장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10년 성실회원으로서의 참여연대의 방향과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같아요. 가치관이나 정체성의 문제라고 할까. 대학 총장인지 정치꾼의 나팔수인지…. 예전 같으면 저런 총장을 쫓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텐데 오히려 지금은 그 대학이 뜬다고 좋아 하는 세태이니, 참여연대가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하기야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불을 지르고도 탐욕의 불길은 주체 못하는 이가 70대 노인이기만 하랴. 나라 전체를 토건업자들에게 내주고 돈만 챙기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물꼬를 누가 막겠는가. 참여연대에 거는 기대는 당연한 것 아닐까.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작은 모임들이 많이 있으면 해요. 행사 안내하며 나오라고 하기 보다는 나와서 소외감 느끼지 않게 ‘끼리끼리’어울릴 수 있게 회원들을 좀 묶어주었으면 해요. 예를 들면 애들 엄마는 엄마끼리, 하는 일이 비슷하면 비슷한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나가서도 아는 얼굴이 드물면 다시 나갈 마음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회원들을 묶어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그래도 어리광 부리듯 투정하고 싶네요.”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하나로 참여연대를 지지하고 행사마다 풍선을 달아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 그가 있기에 ‘통인동 시절’이 온 게 아닐까. 청년마을에서 장년마을로 나아가 노년마을로 전입할 때까지 믿음은 흔들림이 없을 성싶다.

추위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데 수강시간에 맞추어 제자들은 모여들었다. 모두가 풍선에 꿈을 띄우는 사람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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