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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08년 07월
  • 2008.06.30
  • 898




10대들의 불장난, 광장을 불 밝히다

권세중, 신정아, 오나경(앞에서부터)

글    이제훈 <한겨레> 통일팀장 nomad@hani.co.kr
사진  김영광사진가 k-photo@hanmail.net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가 심각한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은 여고 1학년생인 딸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광우병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먹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는, 한 친구가 ‘국민주권시대인데 국민들이 먹지 않겠다면 수입을 하지 말아야지, 왜 안 먹겠다는 걸 수입하겠다는 거냐'고 비판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청계광장에 촛불이 켜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달 가까이 내달려온 촛불행진의 시작이었다. 딸은 한동안 밤늦게 퇴근하는 나를 기다렸다가 많은 것을 물었다. 그전엔 잠시 훑어보고 덮던 신문도 정독하는 날이 많아졌다.

5월 마지막 날-그날 대한민국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여학생을 발로 밟고, 거리의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쳤다-그러니까 토요일 저녁 딸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전에도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딸과 함께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촛불집회에 한번 나가보고 싶다는 딸한테 이렇게 말했다. ‘신문과 방송으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만, 현장에 나가보는 게 좋겠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보며,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뭘 주장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지 직접 보고 느끼는 게 좋겠다'고.

나서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에 나선 딸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사진과 함께 이렇게 소감문을 적어 놨다. “촛불시위 하고 집에 돌아와서…피곤해서 눈도 풀리고 다리도 아팠지만…뭐랄까…대한민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았다. 촛불시위 가서 느낀 게 하나 있다면…참 우리나라 대단하구나. 시민들 진짜 멋쟁이~~~!!! 이런 거 정도? 개량한복 입은 할머니, 넥타이부대, 교복 입은 학생들, 중절모 쓴 할아버지, 귀 뚫은 남학생들, 번개머리 염색한 젊은 오빠들…진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한마음이 되는데…증말루~~ 멋졌다!”

딸이 그날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리라 믿는다. 딸이 그날의 기억을 자양분 삼아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촛불행진을 발견한 그날부터, 청계광장과 서울시청 앞 광장, 태평로, 세종로를 누비고 다니는 10대 젊은 벗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 젊은 벗들의 생각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멋쟁이 시민들, 우리나라 참 대단하구나

기회가 왔다. 2008년 6월2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추가협상을 벌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청와대 발 분위기 띄우기용 소식이 귀를 간질이던 오후였다. 약속시각이 지났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길어져서 늦어지는 것일까….’ 아니었다. 젊은 벗들은 이미 시청광장에 도착해 트럭을 옆으로 세워 마련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빠라빠라 춤’이라고 하던가.

시청광장이 ‘48시간 비상행동’으로 시민들도 많고, 인터뷰를 하기엔 소음이 심해 장소를 근처 음식점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젊은 벗들의 낯빛이 별로 밝지 않다. 이유인즉, ‘어렵사리 시간 쪼개서 집회에 참석하러 왔는데, 인터뷰로 시간 뺏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안했다. 공부하랴, 선생, 부모 눈치 보며 집회 참석하랴, 얼마나 바쁘고 힘겹겠는가. 그래서 ‘아부’했다.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니, 밥 먹으며 잠깐 얘기하자고. 나머지는 이메일로 물어보겠다고.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고, 21~23일에 걸쳐 이메일 답변을 받았다.

『참여사회』 독자들을 위해, 학교 선생님들의 예상되는 ‘탄압’(그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아멘!!!)을 무릅쓰고 인터뷰에 응한 젊은 벗들은 세 명이다. 서울 ㅅ여고 3학년 신정아, 안양 ㅅ고 3학년 권세중, 서울 ㄱ중 3학년 오나경.  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참여사회』 7월호를 보시더라도 못 본 척 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린다.(젊은 벗들은 학교 이름을 정확하게 밝혔지만, 혹시나 해서 기호로만 표기한다)

산책하러, 제 발로, 언니 따라 광장에 나와 역사를 만나다

이 셋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사연은 서로 다르다.
먼저 신정아 씨(20살 이하를 양 또는 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선 성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씨로 호칭을 통일한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5월 초 어느 주말, 공부하다 마음이 너무 답답해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청계광장에 산책하러 나왔다. 그날 ‘역사’를 만났다. 그는 고3답게(!?) 텔레비전도 거의 보지 않고, 인터넷 접속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어린 동생이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는 어떤 이의 말이 마음을 흔들었어요. 저도 다섯 살 어린 동생이 있거든요.”

권세중 씨. 우연은 없었다. 평소 시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촛불집회 참여하려고 제 발로 나섰고, 지금도 주말에는 필참, 주중엔 가능하면 참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죽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의보 민영화, 교육 정책 등 문제가 많지만, 국민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오나경 씨. 6월10일 촛불집회에 처음 참석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언니가 함께 가보자고 해서 따라 왔다. 그 뒤론 혼자서라도 주말엔 필참, 주중엔 가능하면 참석하고 있다.

젊은 벗들은 여느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정아 씨, 과외도 하고 학원도 다닌다. 디지털 미디어학과에서 공부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권세중 씨는 “학벌과 입시만 중시하는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과외나 학원에 관심 없고, 혼자 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는 군인이 되거나 사회에 참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나경 씨는 직장인, 특히 은행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의 힘 보여주고 싶어요

공부 시간을 축내면서까지 촛불집회에 여러 차례 나오는 이유는?

신정아(이하 신) “(광우병 쇠고기 먹고)일찍 죽고 싶지 않아서요. 살고 싶어요. (이명박 대통령의)교육정책에도 반대고요.”

권세중(이하 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독단적 정책이라고 판단돼,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도 사회 정치적 일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오나경(이하 오) “청소년들의 힘도 크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셋이 공통적으로 밝힌 게 있다. “양심에 찔려서, 안 나오면 미안해서” 촛불집회에 계속 나온다고. 대한민국 청소년이 자랑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젊은 벗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대략 난감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기억은?

“국민들이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을 때.”
“어른들이 경찰들을 막아 우리를 보호해줬을 때, 어른들이 우리를 보고 자랑스럽다고 하셨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동안 가장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나 기분 나빴던 장면은?

“폭력경찰! 경찰들이 물대포 쏘고 시민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던 일이요.”

“경찰들이 물대포 쏘고 특공대까지 투입해 시민을 연행하고 강제 진압한 일이요.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 아니라 권력 앞에 굴복하는 추한 경찰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전경들이 방패로 찍어낼 때 정말 야속하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이른바 어른들이 다시 생각해볼 일이 있다. 1970~80년대 이른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해본 이들에게 대한민국 경찰이란 ‘짭새’라는 말로 불리는 공포와 비하의 대상이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관념은 없다. 그리하여 경찰의 폭력행사에 대해서도 둔감한 경향이 있다. 전에는 더했다는 생각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벗들에게 경찰의 폭력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경찰의 임무는 시민을 지키는 일이지, 물대포를 쏘거나 때리는 일이 아니다. 딸의 친구가 했다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대통령은 국민 의견 무시하고, 경찰은 물대포 쏘고….교과서에서 배운 민주화운동의 결과가 이런 거예요? 국민주권시대에 이래도 되나요?”)

정부는 국민 설득 말고, 국민 원하는 대로 따라야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전과 지금, 자신의 뭐가 가장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어떤 문제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고, 제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촛불집회에 나온 뒤론 전엔 별로 관심 없던 역사책도 보게 되고, 특히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평소에도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지만,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이해심이 더 많아진 거 같고,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였으면 좋겠나?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정책을 시행할 때 국민을 설득하려고만 들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대로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정부가 국민 말을 잘 듣는 사회?”

이명박 대통령한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제발 국민들한테 거짓말하지 말아주세요.”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은 하지 말아야 해요.”
“만약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면, ‘너나 드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젊은 벗들의 부모님들은 이들의 촛불집회 참여에 반대다. 고3이니 공부에 전념하라거나,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릴까봐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젊은 벗들은 “니가 나간다고 뭐가 달라지니?”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정말 제일 상처예요”라고 말했다.

젊은 벗들에게 부모님이나 어른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선거 참여율이 높아졌으면 좋겠어요.”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는 시민이 되었으면 합니다.”

“10대들이 촛불집회에 놀러 나온 게 아니에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위에 동참할 겁니다.”

“어떤 문제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고, 제 의견을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촛불집회에 나온 뒤론 전엔 별로 관심 없던 역사책도 보게 되고, 특히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신 정 아 (서울 ㅅ여고 3년)

“평소에도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지만,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해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권 세 중 (안양 ㅅ고 3년)

“어른들이 경찰들을 막아 우리를 보호해줬을 때, 어른들이 우리를 보고 자랑스럽다고 하셨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오 나 경 (서울 ㄱ중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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