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2월 2008-02-05   1459

[기획] 시민단체의 권력화 논란

[기획] 


시민단체의 권력화 논란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kyshin@cau.ac.kr


최근 보수세력의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진보진영에 대한 비방과 왜곡이 계속되고 있다. 「참여사회」는 이런 현상의 흐름을 짚어보고 몇 가지 쟁점 중 보수세력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시민운동의 권력화’와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신광영 교수(중앙대 사회학)에게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한국의 시민운동은 1987년 민주화 투쟁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87년 전두환 정권의 6·29 선언이 있기까지, 오랫동안 전개된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은 무수한 희생을 동반했다. 폭압적 탄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었고 심지어 살해도 되었다. 제3세계 군사정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무자비한 탄압은 87년 6·10 민주화항쟁이 성공하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민주화 이행이 시작되면서 두 가지 사회운동이 등장했다. 하나는 노동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민운동이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이루어진 노동탄압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저항이 87년 여름 전국적 파업으로 나타났다.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이 약화되면서,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파업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가 시민운동이었다. 시민운동은 노동운동과 달리 더 많은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와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 및 저항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정치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환경파괴적인 산업화에 대한 비판, 개인의 인권, 여성의 권리와 소비자 권리 등 다양한 요구와 활동을 통하여 시민의 권리를 확대시키고자 했다. 투표권 이외의 다차원의 시민권 확보를 통하여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시민운동세력의 정치 진출과 권력화


1990년대는 시민운동의 시대였다. 시민운동은 전통적인 민주화 투쟁도, 노동운동도 이루지 못했던 시민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시민운동의 특징은 규제나 구속이 없이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시민운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혜택은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1997년 2002년 두 차례 야당의 집권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987년 이후에도 두 차례 선거를 통해서 집권에 성공했던 권위주의 정치세력이 권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정치세력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시민운동의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시민운동의 요구가 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보다 참여정부 초기 이러한 분위기가 더 강했다. 더 나아가 시민운동 인사들이 참여정부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민주세력의 집권은 시민운동 단체들에게는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첫째로 시민단체 활동가들 일부가 정치권으로 진출하면서, 시민운동이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 활동처럼 일반 시민들에게 비쳤다. 모두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말하지만, 시민단체 활동가가 특정 정당의 정치인이 되는 것은 시민운동의 진정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낳았다. 정치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현실에서 정치권을 비판해왔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스스로 정치에 몸을 담게 되면서 생긴 역설이었다.  


둘째로 시민운동의 독립성이 훼손되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시민단체가 참여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의 긴장관계가 약화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 시대 관변단체 재정 지원 방식을 바꿔 모든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경쟁을 통해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관변단체들이야 애초부터 독립성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도 문제가 될 여지도 없었지만, 정부 정책을 비판해온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였다. 이러한 정책에 재정이 취약한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였고, 결과적으로 정부와 시민단체의 관계가 모호하게 되었다. 참여연대와 같이 애초부터 정부의 재정 지원을 거부한 단체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단체들이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였다. 국민의 세금을 관변단체가 독점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타당한 논리였지만, 시민단체의 독립성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로 여러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낙천낙선 운동과 같은 정치개혁운동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운동으로 시민단체의 권력화 문제가 제기되었다.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운동과 탄핵반대 운동은 보수정당으로 하여금 시민단체들과 집권 여당이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지역주의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해온 부패 정치인과 무능 정치인 퇴출 운동이 한나라당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시민단체들과 집권 여당의 관계를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시민단체의 권력화 의혹은 시민단체들이 탄핵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형성된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 되었다. 


대선 이후 가시화되는 보수 단체의 권력화


2002년 선거와 2004년 대통령 탄핵에 실패한 보수세력은 과거의 관변단체들과 보수적인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보수 시민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만들어진 이들 단체들을 보수 언론이 대대적으로 홍보해주면서 보수 시민단체들이 언론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수 시민단체 조직운동은 탄핵 실패 이후 활성화되었다. 2005년 11월에는 참여정부를 좌파 정부, 시민단체들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보수를 내세우며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보수적 시민단체의 등장으로 시민사회가 이념적으로 양분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면서 보수 시민단체의 권력화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많은 보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08년 총선에 출마하려 한다는 기사들은 보수 시민단체들의 권력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보수 시민단체들의 일부 대표들이 한나라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활동가들이 총선에 많이 출마하여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이전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여당에 입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의 권력화 의혹을 낳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이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과정이 되면서 모든 활동은 정치적으로 ‘출세’하기 위한 활동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경력을 이용하여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활동가는 시민단체의 존재위기를 야기하게 된다.  


돈과 권력 아니라 공익 추구해야 시민단체


여기에서 시민단체 혹은 NGO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는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도,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당도 아니다. 시민단체의 존재 이유는 바로 시장과 국가에 의해 보장되지 못하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다.


시장에서의 사익 추구는 기업조직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기업은 매년 결산을 통해서 경영실적을 평가받고,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최고경영자들은 1년을 단위로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정당은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조직이다. 3~5년 주기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정당의 주된 활동목표이다. 특히 서구 정당들의 그림자 내각처럼 준비된 정책이 없는 한국의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최우선적인 목표가 된다. 더욱이 일반 국민들의 정당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에 정당 운영에서 일반 당원의 당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낮다. 그리하여 정당들은 기업의 정치후원금에 의존하게 된다. 한국에서 정치조직이 국민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더 앞세우게 되는 구조적인 요인이 여기에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윤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시민적 권리의 확대와 공공성 확보이다. 시민단체들은 시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었을 때만,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시민단체가 이익이나 권력을 추구한다면 더 이상 시민단체가 아니다. 단지 시민단체의 외피를 쓴 기업이거나 정치조직이다. 시민단체 활동의 핵심은 공익의 추구이기 때문에, 기업의 무제한적인 이익 추구로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거나 정부가 기업의 이익만을 앞세울 때 충돌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시민단체 활동은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에 기여한다.


정치 바람에 흔들리는 시민단체의 독립성과 자율성


세계적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다양하고 자발적인 시민단체들이 등장했다. 환경, 인권, 여성, 장애인, 소비자 등 각 분야의 단체들이 국내에서도 활동하고 있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활동하는 국제 NGO(INGO)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세계화가 낳고 있는 사회적 배제와 빈곤에 대처하는 반세계화 운동도 이러한 국제적인 NGO 활동의 하나이다. 이러한 운동은 세계화가 선진국의 초국적 기업의 이익만을 앞세우며 다수의 세계인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세계화가 공공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공공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이래 한국의 정치와 사회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의 성장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른바 주권자인 시민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권위주의 정치 유산을 청산하는 데 많이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은 기업과 정당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힘든 경제적 정치적 상황도 경험했다. 특히 시민사회의 정치화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시민사회가 정치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시민단체들의 독립성과 자율성 논란이 등장했던 것이다.


시민단체의 권력화는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익성을 추구하는 자발적 시민운동의 근본적인 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하나의 정치권력으로 둔갑하는 순간 시민단체는 정당의 외곽조직이나 연계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은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보수적인 시민단체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리하여 인적 차원이나 조직적 차원에서 시민단체와 정당간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과 같이 각종 연줄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중요하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


개방적 민주사회로의 이행은 누구도 막을 수 없어


지난 20년간의 역사적 경험이 주는 교훈은 자발적 시민참여에 기초한 시민단체가 시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유지할 때만, 시민운동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시민운동을 통한 사회발전이 기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돈과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이것이 진정한 시민단체 활동의 시작이자 끝이다. 시민단체가 돈과 권력이 아닌 제3의 가치인 공공성을 추구하지 않을 때, 시민단체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다. 이러한 점은 진보 시민단체이건 보수 시민단체이건 모두에게 적용된다.  


최근 보수 세력의 시민단체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아직도 민주화 수준이 낮은 한국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정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시민단체들은 재계, 언론계, 정계, 종교계, 관계의 문제들을 비판해왔고, 이에 대한 보수 집단의 반발이 시민단체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의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부정과 파행을 계속하려는 보수 집단과 이를 바꾸기 위해 비판하는 집단 간의 힘겨루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누가 한국사회를 시민 모두가 높은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선진사회로 바꿀 수 있는가? 세계화, 사회양극화, 고령화, 저출산, 다인종 다문화화 등 새로운 변화 속에서 미래의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인가? 그것을 위해 현재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과거 지향적인 정치적 이념의 과잉 속에 가려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집단만이 미래의 한국을 책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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