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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11월
  • 200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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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통념, 혼란스러운 어휘


래 교육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개념들

이 범 교육평론가, 곰TV 강사 yibohm@hanmail.net

대한민국에서 교육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지켜볼 때마다 가장 기초적인 용어의 사용부터 서로 일치하지 않고, 심지어는 완전히 그릇된 개념 위에 자기 주장을 얹어놓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특히 ‘평준화’라든가 ‘수월성’, ‘자율화’ 등 가장 기초적인 용어조차 그 의미가 통일되지 않고 제각기 사용됨으로 인해 교육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진일보시키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은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장 문제되는 그릇된 통념과 어휘 사용에 관해 정리해보기 위한 시론이다.

수월성 -선발 경쟁 없이 이루어져야

수월성(excellence)이란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끌어올리는 것, 또는 그 결과로써 성취된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수월성 교육을 위해서는 다양한 과목과 프로그램이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흔히 국영수 중심의 학력 위주 교육이 수월성 교육과 동의어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 어느 교육학 문헌을 보아도 수월성 개념이 이렇게 정의되고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수월성 교육을 국영수를 골고루 잘하는 학생을 가려내는(또는 육성하는) 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은 심각한 개념의 왜곡이며, 이러한 왜곡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진보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어 상당한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실제로 선진 각국에서는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수월성 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다. 즉 학생들이 가진 저마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영재교육’의 의미도 상당히 달라져서, 예전처럼 수학, 과학 중심의 영재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영역에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우리나라처럼 별도의 학교를 만들고 그 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을 선발 경쟁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보통 학교에서 제공되는 특별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특목고 및 영재 교육원 중심의 영재 교육과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수월성 교육을 위해 학생 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교육 선진국들의 전문가들에게 들려준다면 너무나 낯설고 괴상한 것으로 치부될 것이다. 많은 선진국에서 (A, B, C 같은) 평점은 매기지만 석차(등수)는 매기지 않는데, 이것은 교사와의 적극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서 학생 각자의 재능과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굳이 남들과 비교하여 등수를 매기고 경쟁심을 촉발하는 것이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 그 학생의 수월성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석차도, 일제고사도 전혀 없는 핀란드가 국제학력 비교평가에서 늘 1등을 차지하고 수월성 교육의 뛰어난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올바른 수월성 개념이든 그릇된 수월성 개념(‘학력’과 등치되는)이든 간에 이를 위해서 경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교육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수월성’ 개념은 우리가 경원시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며, 일반 학교의 선발 경쟁 없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진다는 전제만 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우리의 여건에 맞도록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여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이전처럼 국영수 중심의 주요 과목들에서 모두 높은 성적을 받을 것을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평준화 -무시험 배정 유지, 교육과정 획일화 개혁

평준화란 여러 가지 이질적 의미들이 혼합되어 구성된 개념으로서 대략 다음의 네 가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1)무시험 학교 배정: 박정희 정권 시절 중학교 입시와 고등학교 입시를 연달아 폐지하였다. 처음에는 연합고사 또는 내신 성적에서 일정 기준을 통과한 학생들을 인문계 고등학교에 무작위 배정하였으나, 최근에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사실상 거의 다 성적에 상관없이 배정받을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무시험 학교 배정’이라는 평준화 정책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20%가 넘는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에 살고 있어 연합고사 또는 내신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2)교육 재정 균등 지원: 고등학교까지 학교 또는 학생에 따른 재정 지원에 차별을 두지 않는 정책으로서, 역시 박정희 정권 시절에 도입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립학교가 많은 여건을 고려하여 사립학교까지 공립학교와 동등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어, 적어도 재정적인 면에서는 사립학교가 ‘무늬만 사립’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실제로 사학 재단에서 전입금을 1년에 10만 원도 내놓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3)획일적 교육 과정: 흔히 ‘붕어빵 교육’이라는 표현으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국 교육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과목별로 기득권 집단화된 일부 교육 관료 및 사범대 교수들 그리고 교사들의 힘겨루기의산물로 구성된 것으로서, 지나치게 과목수가 많고 학생들에게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4)학력 수준의 균질화: 흔히 ‘하향평준화’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대개 (1)의 정책에 의해 학력 수준이 하향 균질화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향평준화란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전국에서 수학 및 과학 성적이 가장 높은 학생들이 명문대 이공계열 대신 의약계열로 대거 진학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을 대학 교수들이 잘못 해석하면서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수능에서 문과용 수학을 치르고 이공계열로 진학하는 것이 허용된 것, 문과용 수학에서 미적분이 빠진 것, 그리고 이과용 과학 필수 과정이 축소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러한 오해를 더욱 심화시켰다. 그러나 대도시 지역을 기준으로 볼 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단행된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30년이 지난 지금 학력이 하향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고, 지난 2000년 전후 비평준화 지역에서 평준화 지역으로 바뀐 분당 및 일산 등지의 명문대 진학 실적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하향 평준화론은 실증적 근거를 결여한 흑색선전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한쪽에서는 평준화 폐지 또는 보완을 요구하는 데 반하여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 진영은 ‘평준화 완성’을 요구한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평준화 개념은 누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거칠게 보면 우리는 (1)무시험 학교 배정 원칙을 지키면서 (3)교육과정의 획일화는 시급히 개혁하여야 한다. 일단 고등학교 이전 단계에서 선발 경쟁이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사실상 일본밖에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의 의미에서 평준화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유럽 대륙의 경우 사실상 모든 학교가 공립학교로서 고등학교까지 선발 경쟁을 배제하는 평준화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약 1.5%의 학생이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높은 학비와 통학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이런 학교에 들어가려는 경쟁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 국한되어 있으며 중산층까지 특목고 입학 경쟁에 목매다는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아울러 선진국들은 대부분 교육과정의 유연화에 힘쓰고 있는데, 교육 경쟁력 1위인 핀란드 경우를 보면 중학 과정의 20%가 선택과목에 할애되며, 고등학교는 아예 무학년제로 운영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보통 고등학교에서 과목별 심화반이나 대학 과정 선이수(AP)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능(SAT)에서도 필수과목의 분량은 최소화시켜 수학은 우리나라 중학교 과정에 가까울 정도이고 그 대신 다양한 선택과목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자율화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 키우는 방향으로

지난 4월 15일 정부는 0교시, 우열반 등의 도입 여부를 교육감 또는 교장 자율에 맡기는 이른바 ‘학교자율화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미 영어몰입교육 파동 등으로 민감해진 학생들 사이에서 ‘미친 교육’이라는 슬로건이 터져나오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런데 이 조치는 교육 관료(교육감, 교장)의 자율권을 확장시키면서 정작 교육 현장에서 대면하는 일반 학생과 교사들의 입장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교육 관료들의 뜻에 의해 0교시나 우열반을 도입하는 것이, 선택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과 교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율권을 억압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원천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등에 있어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다만 누구에게 부여되는 자율성인지를 주의깊게 살펴야 하는데, 학생이나 교사가 아닌 교육 관료에게 자율성을 부여한 조치를 ‘학교자율화조치’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교육의 후진적인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얼마만큼의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가? 기본적 신체에 대한 권리인 두발 문제부터 시작하여 ‘야간 타율학습’이라는 자조적 명칭으로 불리는 야간 자율학습, 고등학교 2학년에 진입하면서 문과, 이과를 나누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교육과정, 학생회나 동아리와 같은 기본적인 자치활동의 권리마저 간섭받고 억압되는 현실을 고려해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육’이 아닌 ‘사육’의 대상이라는 표현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상황이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어느 단원을 어느 수준으로 가르칠지 등을 전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돌보기보다는 관료적인 요구에 짜 맞추어진 행정 문서 처리 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교육 관료들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 교사의 자율성과 학생의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학교 민주화 프로그램의 도입과 함께 교사 승진제도 및 교장 임용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며, 학생들의 선택과 자율을 존중하는 교육과정 및 자치활동을 위한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가운데 지나치게 교육 관료의 자율성을 확장하는 것은 학생과 교사의 자율성을 오히려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다양화 -국영수 중심의 교과 과정에서 벗어나야

다양화란 ‘학교 내’ 다양화와 ‘학교 간’ 다양화로 구분해볼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신장되면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 학교 내 교육과정과 특별활동, 학생 자치 활동 등의 다양화가 진전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의 진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학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학교 간’ 다양화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학교 내’ 다양화는 도외시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일반 공립학교의 자율성을 넓히기 위한 조치는 부족한 가운데 일부 사립학교(자율형 사립고)에만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부여하려는 것은 매우 기형적인 발상이라 할 것이다.

최근에 서울시에 도입 예정인 고등학교의 ‘학교 선택제’는 이러한 차원에서 면밀히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단위학교가 가진 자율성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학교 선택제가 소기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인기 학교가 되기 위한 학교 환경개선 등 긍정적인 변화가 엿보이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명문대 입학 실적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다양화’라는 지표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부정적 변화 또한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앞으로 ‘학교 정보 공시제’에 의거하여 학교별 일제고사 성적 등이 공개되면, 대입 실적 및 일제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학교 서열이 뚜렷하게 매겨지고 이에 의해 인기 학교와 비인기 학교가 구분되는 현상이 예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학교 간’ 다양화와 학교 선택제를 전면 부정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일단 우리나라의 고등학교는 진작부터 인문계와 실업계(전문계)로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일차적인 학교 간 다양화는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추가의 학교 간 다양화를 추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적이지 못하다. 특히 앞으로 대학의 학생 선발기준이 다양화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면 그에 상응하여 고등학교도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교적 획일적인 현재의 대학 학생 선발기준에 비추어 보아도 이미 고등학교의 학교 간 다양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학생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학 정원 기준 예체능계의 비율이 15%가 넘는데, 예체능계열 고등학교의 정원은 1.5%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예체능계열 지망자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별도로 심야까지 미술학원 등을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들에서 일례로 일부 학급을 ‘디자인 전공 특별반’으로 운영하고, 이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학교 선택제에 따라 1, 2, 3지망으로 모두 디자인 전공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교를 지원하게 된다면, 불필요한 사교육 수요를 상당 부분 학교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체능계 수요를 일반 학교에서 흡수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NGO 활동 특별반’이나 ‘문학 문필 특별반’ 등 특색 있는 교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교육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국영수 중심의 획일적인 교과 운영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 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계획과 같이 성적순 선발을 배제하고 선지원 추첨 배정을 안정적으로 지속한다는 전제 하에, 일제고사 성적 대신 학생들의 포괄적인 학교생활 만족도 조사결과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학교별로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나선다면, 학교 선택제 및 이의 귀결로서 나타나는 학교 간 다양화가 그 긍정적인 잠재력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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