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04월 2008-03-17   896

칼럼_김 선생에게

 


김 선생에게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baram@pspd.org

오래도록 격조했지요. 신년부터 「참여사회」에서 권두칼럼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이냥저냥 글을 꾸준히 쓴 편인데도 막상 새 글을 쓰려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쓸까 궁리를 하다 마냥 시간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칼럼은 왠지 묵직하단 편견 때문일까요? 첫 칼럼이라 그런 걸까요? 그러다가 문득 「참여사회」 전 편집위원장이던 연세대 김호기 교수의 ‘김 선생에게’로 시작했던 공개편지 형식의 칼럼이 생각났습니다. 김 교수의 날카롭고 건조한 사회학 저작들과 달리 글이 낫낫하고 인문적 향내가 그득하여 여운이 남던 글들이었지요. 김 선생도 그 칼럼들을 읽어보고 싶거들랑 「세계화시대의 시대정신」이란 책을 한번 찾아보세요. 그리 시효를 느끼지 않을 글들이랍니다. 여하튼 그래서 저도 ‘김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평소 저의 허영을 잘 알고 있을 김 선생이니, 모자라기만 한 제가 감히 김 교수 흉내를 낸다고 해도 그리 심하게 타박하지는 않겠지요. 그리 믿고 첫 편지를 써내려가겠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도중에 사퇴한 이가 둘이나 있었지만, 후보자가 열이나 되었고, 실현되지 않았지만 막판까지 ‘연대’라는 명분으로 ‘야합’을 시도했던 세력들이 총출동했던 만큼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사람들 모두가 머릿골이 아팠지요. 김 선생이 누구를 찍었을지 짐작이 안 갑니다. 저는 애초 이번 대선에서 기권 투쟁을 하려고 작심했었습니다. 곁들여서 무효표 투쟁 전략도 짜보았지요. 투쟁이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맘에 안 드는 후보자 이름 뒤에 가위표를 하는 정도였겠지만, 그래도 이번 선거가 민의를 대변하는 축제라고 말하기에는 온통 함량미달인지라 소박하게라도 마음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불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선 당일 투표장에 가서 중선위의 투표안내방법에 따라 투표를 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저의 가정에 만연한 정치 불신 분위기를 눈치챈 아이가 선거 당일 “엄마 아빠는 선거 안 할 거지?”라고 묻는 바람에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얌전히 투표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냐며 목소리 높이던 전투성은 그만 기운이 다하고 말았지요. 

비록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이왕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면 소신대로 하리라 맘먹었지요.  물론 그 전의 투표행위가 소신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정치적 명분이나 사회적 당위 같은 것이 작용했었다면, 이번에는 아주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아이큐 430의 허경영 후보에게 표를 찍었냐고요? 칙칙한 선거판에 한줌 웃음을 준 것에는 감사하나, 그 정도 웃음을 주는 사람은 제 주변에 널렸지요. 비록 제가 지지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으나, 이명박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표가 사표로 취급되는 것엔 반대합니다. 0.1 퍼센트부터 26.1 퍼센트에 이르는 각 후보자들의 득표율은 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모든 선거가 당선자와 낙선자만 남긴 채  낙선자를 지지한 민의는 온데간데없이 실종되는 현실이 저는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왜 대통령이 되지 못했는지 되새김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유권자 절반의 유효성이 집권기간 내내 여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 선생은 이런 제 주장을 들으며 저의 대책 없는 낭만주의가 또 발동되었다고 혀를 끌끌 차겠지요. 

대선을 두고 푸념이 길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소식을 전하는 김 선생에게 실례가 되었군요. 이제 선거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뚜벅뚜벅 제 길을 가고 있는 많은 민초들 마냥 저도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좀더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겠습니다. 마침 새해도 열렸으니, 포부도 다져봐야겠지요. 「참여사회」  편집위원장으로서 제 임무를 자각하는 것도 제가 마음에 품은 다짐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오스까 노부카즈가 지은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읽고 난 후의 일입니다. 김 선생도 오스까 노부카즈를 잘 알지요? 일본의 저명한 출판사인 이와나미쇼텐에서 오랫동안 편집인의 역할을 했던 사람 말입니다. 대학 시절 이와나미문고의 번역본을 읽었던 향수에서 가볍게 집어들었던 책인데, 읽다보니 일본의 지(知)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새삼 감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한 편집인의 공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었지요. 물론 제가 아무리 허영심이 많다 한들 이와나미쇼텐에서 발간했던 잡지 「헤르메스」의 편집장을 본받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새로운 사고방법을 산출하기 위해서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것의 총체를 알아야 하는’ 편집인이 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자리를 여러 개 걸친 감투 중 하나라고 여기며 헐렁헐렁하게 일하면 안 되겠단 각성을 분명히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일의 막중함’은 알고 있어야겠단 다짐인데, 김 선생이 멀리서나마 제가 최소한도의 소명감이라도 유지하며 이 자리를 버티고 있는지 지켜봐주기 바랍니다.  

시간으로는 한 겨울에 돌입한 때인데, 아직 겨울을 실감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영하로 기온이 곤두박질치고 눈발도 내렸지만 아직 제 산책길 중의 하나인 창경궁에는 붉은 단풍잎이 화석이라도 될 양 굳은 땅에 뚝뚝 박혀 있고, 산사나무엔 아직도 꽃사과들이 붉은 빛을 과시하며 달려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습관처럼 털옷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귀갓길을 서두르겠지요. 평화롭게 지내길 바라며 처음 보내는 편지를 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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