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1월 2008-11-11   974

참여마당_10월 회원한마당: 살아 숨쉬는 역사의 한 길에 내가 서 있다






살아 숨쉬는

역사의 한 길에 내가 서 있다


김혜정 참여연대 회원 hyei999@hanmail.net



정선, 아우라지, 월정사…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아 마음으로만 그렸던 곳.

출발하면서 담요를 나눠주고, 안전벨트도 매라고 안내하자 어떤 분이 “비행기 기내야?” 라고 말씀하셔서 모두들 웃음보가 터졌다. 덕분에 서먹함이 덜해졌다. 새벽에 도착한 절집에서 오랜만에 학창시절 MT 기분을 만끽하며, 일행 모두가 한방에서 휴식을 취했던 기억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아침식사는 월정사에서 했는데,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러 온 듯한 외국인이 꽤 많았다. 우리나라의 단기출가가 외국인들에게 인기라더니 다들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상원사에 올라가며 이른 아침 산의 풍경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상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절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지금의 기술로도 그 옛날 종들을 만들 수 없다고 하니, 인류역사상 가장 과학과 기술의 정점에 있던 시대가 청동을 다루던 시대였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상원사는 또한 세조가 직접 보았다고 하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문수동자상이 있고, 세조와 얽힌 오대산의 전설이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조에게 위험을 미리 알려준 고양이를 기리려고 만든 고양이 석상은 이제 사람들이 만지며 기원을 하는 곳이 되었다. 상원사 법당을 배경으로 일행 모두 단체 사진을 찍고 월정사로 다시 내려왔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바라보며 탑의 예술성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불국사의 한 스님께서 석가탑이나 다보탑을 보면, 그 옛날 탑돌이를 하며 탑에 스쳐졌을 신라여인의 치맛자락이 느껴져 마음이 설렌다던 말씀이 생각나 나 역시 고려 여인들의 염원과 숨결을 느껴보려 애썼다. 천 년 전에도 누군가 여기 서 있었고 지금은 우리가 여기 서 있다. 역사는 살아서 계속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월정사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전나무길로 들어섰다. 몇백 년 아니 천 년은 되었음직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은 경이로웠다. 그 숲길을 걷는데 꼭 타임머신을 타고 천 년 전으로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코를 찌르는 숲향기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림 같은 그 길을 빠져나와 아우라지로 향했다. 아우라지는 골지천과 송천이 합쳐져 한강의 본류를 이루는 곳이다. 아우라지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써, 두 물줄기가 어우러져 한강을 이루는 데에서 유래했다.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으로도 유명한데,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을 나누던 처녀 총각이 갑자기 불어난 물줄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데에서 가사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우라지에 도착하여 일행 중 한 분이 낭독하셨던 시의 구절 중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지만 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어리로 뭉치지요’라는 구절을 들으니 콧날이 시큰했다. 대체 언제가 되어야 우리는 한 덩어리로 뭉쳐질까?

옥산장에서 맛있는 점심과 할머님의 구수한 정선아리랑 가락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단풍놀이(?)에 나섰다. 단풍은 오대산이라더니 나의 눈은 하루 종일 호사를 누렸다.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자연 앞에 우리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인지……. 한 굽이 한 굽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몰운대에서 바라본 우리의 하늘과 땅 풍경들은 숨이 멎게 아름다웠다. 몰운대는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어천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바위산이라기엔 규모가 좀 작지만 강변에 솟아 있는 모습이 사뭇 당당하다. 몰운대 정상에는 벼락 맞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탁 트인 정경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슬픈 감정을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몰운대를 노래한 시인이 꽤 많은 것 같다.

몰운대를 내려와 정암사로 길을 잡았다. 역사 깊은 정암사 수마노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고 지장율사의 지팡이가 나무로 자란다는 무성한 주목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이라 법당에는 불상이 없이 빈 벽인 것이 특이했다. 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으로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었다. 특히 젊은 승려들이 땀을 흘리며 절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경건하던지 곧 깨달음 얻어 성불할 것만 같았다. 오후의 산내음을 느끼며 내려오던 중 절 입구에서 엄마에게 야단맞는 어린아이를 보게 되었는데,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부처님 앞에서 엄마말 잘 듣겠다고 맹세한 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또 말을 안 듣냐며 아이를 다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답사의 마지막 여정인 만항재에 올랐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로, 차로 올라올 수 있는 도로 중 가장 높은 도로라 한다. 높이가 1,300미터를 넘는다고는 하지만, 사북과 고한땅의 평균고도가 원체 높은 탓에 정암사를 거쳐 오르는 길의 경사도가 그리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암사 입구를 지나 고개에 오르는 동안 만나게 되는 마을은 본래 주변 탄광의 노동자들이 살던 마을이다. 그러나 인근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주민들이 밭농사를 지으며 삶을 이어간다고 했다. 만항재 정상에는 가게가 있는데, 식당 건물과 화장실 건물 두 채로 나눠져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소가 식당은 정선 고한이고, 화장실은 영월 상동이라 해서 그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에 넋이 빠진 하루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 위로 조심스레 돌 하나 얹어놓고 소원도 빌어보았다. 열심히 따라다니긴 했으나, 나의 약한 체력과 사진기 안에 많은 모습을 담고 싶은 욕심에, 박상표 선생님께서 성심성의껏 해주시던 설명을 제대로 다 듣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나는 길에 들르지 못했던 수많은 명소들, 가능하면 나중에라도 다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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