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2098

1918년 돌림고뿔(인플루엔자), 식민지 조선에 상륙하다(1)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고뿔은 코에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감기, 상한(傷寒), 감수(感 )와 비슷한 뜻이다. 상한(傷寒)은 겨울의, 한풍(寒風)이나 봄의 냉기(冷氣)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하니, ‘추위의 영향이라는 뜻에서 쓰이기 시작했다는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어원인 것 같다. 사람은 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이 아무리 몹쓸 놈의 죽을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면 관심이 떨어진다. 하물며 90년 전의 옛날 전염병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최근 조류독감과 사스의 유행으로 돌림고뿔이 염병으로 바뀔 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있으니,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나타난 1918년 식민지 조선의 독감 얘기를 수면제 대용으로 들어주었으면 한다.

1918년, 살인 독감 발병 보도

1918년 11월 2일자 〈매일신보〉는 ‘조선 토지조사 종료 기념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날 신문에서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총무과장 화전일랑(和田一郞)은 “토지조사 완성의 위대한 효과는 통치의 기초사업”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식민지 지배를 위한 조선총독부의 기초사업이 끝난 바로 다음날 발행된 〈매일신보〉에는 “돌림감기는 세계 각지에 퍼져 천하의 대동지환(大同之患)인데 그중에 가장 지독하게 퍼진 곳은 서전(瑞典, 스페인), 화란(和蘭, 네덜란드), 남아프리카(南亞弗利加)와 가나타(加奈陀, 캐나다)인데 도처 병원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고 사무의 방해가 무쌍하며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는 그 병으로 죽은 사람이 매일 오백 명이 넘으며 그 중의 오분의 일이 구라파 사람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아울러 “유행감기로 인하야 창궐 되는 악성감기는 아직도 감퇴 되는 모양이 없어서 인천 같은 데는 요사이 날마다 20명의 사망자가 생기여 날마다 발인 없는 날이 없고 각 절에는 불시에 대번망(大繁忙)을 이루는데 이 감기에 대한 예방칙(豫防則)은 전혀 없고 다만 감기에 걸리지 않기만 바라는바”라는 소식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도 인플루엔자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인 독감은 인천뿐만 아니라 사리원, 곡산, 장연, 공주, 보령 등 곳곳에서 유행하고 있으며, “감기 까닭으로 사람이 태부족”하여 도쿄, 오사카, 시모노세키, 나가사키 등으로 번져 “(일본) 전국 전신계의 대공황”까지 발생하게 만들었다.

사람 동물 가리지 않는 악성감기

11월 7일이 되자 악성감기는 더욱 창궐하여 수원, 개성, 진남포, 논산에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한 “축견에도 유행감기”가 돌고 있다는 소식도 있어, “요사이 경성의 돌림감기는 각 집에 있는 개까지 전염되어, 병에 걸려 앓는 개가 자못 많은바 작금은 죽는 개도 많은 즉 개를 둔 사람의 집에서 극히 주의하여야 될 일이라더라”고 촉구하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인간뿐만 아니라 돼지, 오리 등의 동물에게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닭뿐만 아니라 개, 돼지, 오리. 메추리도 ‘살처분’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떼죽음을 당한다. 돼지 유행병과 인간 독감이 동일한 질병이며 인간이 돼지에게 병을 옮겼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오리농법이 발달한 중국 강남지방에서 독감 균주들이 오리에서 돼지로, 그리고 사람에게 이동하여 병을 옮기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편 미국의 축산업계는 돼지독감이라는 말은 쓰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돼지에 사람이 옮을 수 있는 독감 병원균이 있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까봐 그랬던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양계업자들의 이러한 요구를 대변하여 정부, 언론, 관변학자들은 조류독감을 조류인플루엔자로 바꾸어 부르며 마치 이것이 과학적인 언어 사용법인 양 호도하고 있다.

1933년에야 발견한 독감 바이러스

11월 8일에는 “종로 경찰서에서 조사한 10월 30일부터 본월(11월) 5일 3시 반까지 이레 동안 감기로 죽은 자가 한 살부터 20세까지가 52인이요, 21세부터 40세까지가 30인이요, 40세 이상이 41인 합계 127인”이라며, “작년(1917) 10월에는 (사망자가) 279명이었는데 본년 10월에는 532명에 미쳤슨즉 10월에 와서 현저한 증가요, 감기로 많이 죽은 것을 알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같은 날, 제국대학 위생과의 석원(石源) 교수는 “이 병은 금년 늦은 봄부터 서반아에서 일어나서 그 나라를 휩쓸고 불란서 영국 이태리에 돌아다녔음으로 항용 서반아 감기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는데, (…) 이 병의 근본은 이태리에서 파아벨 감기균이라고 증명하였으나 불란서와 영국에서는 아직 알아내지 못하고 폐렴균(폐경상한의 병균)만 발견되었다 하며 일본에서는 폐렴균과 근사한 쌍구균을 알아내었다.”며, “현미경으로 그 균을 천 배나 크게 늘여보면 들깨보다 조금 적으며 이 균은 보통 목구멍에 붙어 있다가 폐에 들어가면 폐렴이 일어나 죽는 고로 이것을 예방함에는 염박이나 과산화수소수로 늘 양치를 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당시의 과학 수준으로는 아직 독감의 원인을 바이러스라고 밝히지 못했던 시절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1933년 윌슨 스미스 교수 등 세 명이 인간 독감을 흰족제비에 전염시키면서 발견했으며,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1968년에야 밝혀졌다.

※이 글은 총 2회로 나뉘어 3월호에 ‘1918년 돌림고뿔(인플루엔자), 식민지 조선에 상륙하다’ 2편이 연재됩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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