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3월 2007-03-01   2091

공정무역으로 제3세계에 지속가능한 희망을

공정무역 운동은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불공정한 무역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빈곤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이미 영국의 옥스팜, 미국의 텐 사우전드 빌리지 등이 시작해 세계적으로 5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세계무역량의 1%라는 작지만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하며 진행되고 있는 실천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영국의 옥스팜은 다국적 기업이 생산과 유통, 가격까지 결정하는 왜곡된 무역구조에서 개발도상국이 얻는 이익의 비율을 단 1%만 올려도 세계 1억 2,800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는 공정무역은 세계화 시대에 날로 심화되어가는 빈곤을 감소시키고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이 공정무역 본고장으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며,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공정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은 역설적이다. 영국인들은 무한경쟁의 자유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자유무역의 부작용과 폐해를 인식한 뜻있는 사람들에게는 반성을 불러왔고 그들의 풀뿌리 사회운동으로 시작된 공정무역은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의 기차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AMT라는 커피숍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만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 최대의 소비자협동조합 코업이나 테스코, 막스 앤 스펜서와 같은 대형 슈퍼마켓은 공정무역 마크가 붙은 여러 종류의 제품을 갖춰 놓고 있어 영국인들은 어디에서나 손쉽게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공정무역 마크는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생산되며 생산자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제품임을 보증하고 있다. 공정무역 제품도 커피, 차, 초콜릿, 설탕, 바나나에서부터 유기농 의류, 향신료, 포도주에 이르기까지 2,000여 종에 이른다.

2006년에 나온 모리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 국민 50% 이상이 제3세계 불리한 생산자들에게 더 나은 거래를 보장함을 뜻하는 공정무역 마크를 이해하고 있으며, 공정무역 상품을 매달 몇 차례씩 구입하는 사람이 33%에 이른다고 한다. 민텔에 의한 최근 보고에서도 2005년 공정무역 제품의 총매출액은 약 2억 파운드로 2004년에 비해 40%의 증가를 보였다. 영국에서 공정무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5년 후에는 5억 4,700만 파운드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영국에서 공정무역이 성공하고 있는 것은 1992년 영국의 제3세계 지원 단체들인 옥스팜, 트레이드크라프트, 크리스천 에이드 등에 의해 설립된 공정무역재단의 역할이 크다. 이 재단에서는 공정무역 마크를 관리하고 공정무역을 증진시키기 위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캠페인을 벌이는데 대표적인 캠페인으로 ‘공정무역 포트나이트’와 ‘공정무역 마을’을 들 수 있다.

공정무역을 선택하자 퍼뜨리자

영국 사회에 공정무역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매년 3월 2주간 ‘페어트레이드 포트나이트’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이 기간 동안 영국 전역의 공정무역 마을, 학교, 교회, 공공기관, 슈퍼마켓 등이 참여하여 거리 행진, 패션쇼, 연주회, 축구 경기, 토론회, 생산자 초청 간담회, 공정무역 제품 시식회 등 1만 여 가지의 활동을 펼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시민들은 개발도상국의 농부와 생산자들에게 알맞은 수입을 보장해줌으로써 그들이 세 끼 식사를 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며 더 나은 삶을 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2007년 공정무역 포트나이트의 주제는 ‘공정무역 선택으로 오늘을 바꾸자’이다. ‘마시자! 입자! 퍼뜨리자! 먹자! 선택하자!’ 는 구호를 내세우며 공정무역 제품의 선택으로 개발도상국에 있는 농부들과 수백만 명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득한다. 제3세계의 지역사회를 개발하기 위한 소비자의 선택과 변화를 강조한다.

남을 배려하는 소비

영국 공정무역재단에서는 공정무역을 증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5가지 목표를 달성한 도시, 마을, 지역, 섬 등에 공정무역 마을을 지정하고 있다.

첫째, 의회에서 공정무역을 지원한다는 의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회가 솔선수범하여 커피나 차 등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해야 한다.

둘째, 식당이나 상점에서 공정 무역 제품을 구비하고 안내하고 판매해야 한다.

셋째, 지역 내에 있는 학교, 교회, 공공기관, 회사 등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해야 한다.

넷째, 공정무역에 관한 각종 행사를 알리고 그 제품 이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신문 등 매체에 전략적으로 홍보하여 주민들의 관심이 지속되게 한다.

다섯째, 의회, 학교, 교회, 기업, 캠페인 대표로 공정무역 상임위원회를 결성하여 지역 전체가 공정무역 마을의 요건을 유지하고 계속 발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영국 남동쪽, 성공회 본산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널리 알려진 캔터베리는 150번째로 공정무역 마을로 인정받은 곳이다. 2004년 캔터베리와 그 주변 지역을 공정무역 구역으로 만들기 위해 시 의원, 교수, 교사, 공무원, 일반 시민, 직능단체 대표 등이 모여 공정무역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100여 명의 자원 봉사자가 약 18개월 동안 활동적인 캠페인을 벌여 2006년 3월 공정무역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자원 봉사자들은 지역의 상점, 카페, 식당 등에 공정무역 제품을 이용하고 판매하도록 설득하고 “우리는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합니다. 공정무역 캠페인을 지지합니다.” 라고 씐 스티커를 배부하여 지역 주민들의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캔터베리에서 가장 큰 백화점 펜위크스의 카페와 음식점에서 파는 커피를 공정무역 커피로 바꾸었으며, 막스 앤 스펜서의 의류 매장에서는 공정무역 티셔츠와 청바지를, 슈퍼마켓에서는 여러 가지 공정무역 제품을, 카페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캔터베리에서는 어디를 가도 공정무역 마크가 붙은 카페와 식당 그리고 상점이 있어 시민들은 곳곳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쉽게 이용하고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캔터베리에서는 공정무역 마크를 이해하는 시민이 80%에 이르고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횟수도 영국 국민의 평균치보다 훨씬 높다. 캔터베리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작은 소비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며, 세상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공정무역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있었다.

민관이 함께 실천하는 ‘더불어 삶’

캔터베리가 공정무역 구역으로 지정받게 된 배경에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대주교가 공정무역을 홍보하기 위한 팬케익 달리기 대회에 앞장서고 성당에서는 공정무역 커피와 차, 과일 주스를 이용하였다. 그리고 성당의 직원 250명에게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정무역 증진에 열의를 보인 대주교의 역할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캔터베리 시의회의 공정무역 마을 지지 결의안 채택과 시청의 지원 정책이 뒷받침이 되어 가능했다. 지난해 10월 첫 주 주말에 캔터베리 시 중심지에서는 공정무역을 주제로 일종의 바자인 푸드프린츠 행사가 열렸다. 이 바자에서는 제3세계에서 생산된 공정무역 제품과 이 지역의 생산품이 함께 전시 판매되었다. 공정무역 제품과 현지 생산품의 공존을 모색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소중한 바자였다.

해리 크락 캔터베리 시의장은 공정무역과 지역 농민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파머스 쉐드의 상인 필립 나이드 씨는 지역 농산물과 공정무역 농산물이 마찰을 빚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피터 드루먼드 전국농민조합 캔터베리 지회장도 “영국 농민들은 세계 모든 농민들이 정당한 가격을 받는 것을 환영한다”며 “누구나 같은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도 농업이 산업의 1% 정도 밖에 안 되어 농민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 농민들이 ‘나 또는 우리’라는 보호막을 걷고 제 3세계의 농민들과 연대하고 ‘더불어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 캠페인의 확대

영국 중부지방인 랭커셔의 가스탕 지역에서 2000년 5월에 5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여 2001년 11월 세계 최초로 공정무역 마을 1호가 탄생했다. 이 캠페인은 정치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지역 사람들에게 공정무역 마크의 인식을 높여 공정무역 운동이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가스탕의 성공 사례는 영국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2005년 3월 영국 북서쪽에 위치한 맨체스터와 샐포드가 100번 째 마을로 인정받았고, 2007년 2월 현재 220여 곳이 공정무역 마을 지위를 얻었으며, 런던 시의 자치구를 비롯하여 수 백 곳에서 공정무역 마을이 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런던 시는 이미 10곳의 자치구가 공정무역 마을 지위를 얻었고 나머지 자치구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상점, 카페, 직장, 교회, 학교, 대학, 관광지 등에서 공정무역 생산품의 인식과 유용성을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캠페인에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이 앞장서고 있다. 런던시는 올해 공정무역 시의 지위를 얻어 국제적으로 공정 거래 상징 도시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며, 공정무역 운동은 또 한 차례 획기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공정무역 마을 캠페인은 영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 아일랜드, 벨기에,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캐나다 등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공정무역 마을이 세계 여러 나라에 많이 생겨 그 지역 주민들이 공정무역을 생활화한다면, 제3세계의 빈곤문제는 줄어들고 지금 보다 살기 좋은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다.

무역대국 한국의 공정무역 현주소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공정무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일부 시민단체가 공정무역 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아름다운 가게가 네팔로부터 커피원두를 들여와 ‘히말라야의 선물’이란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으며, 여성환경연대는 ‘희망무역’을 차려 네팔과 인도 등지에서 유기농 옷과 생활용품을 들여와 온라인 판매하고 있다. 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필리핀 마스코바도 설탕과 팔레스타인 올리브유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세계에서 11번째로 수출 3,000억 달러를 달성한 무역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 우리 한국인들은 자유무역의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제3세계의 빈곤문제와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공정무역이 실천할 만한 가치 있는 일임을 인식하고 있을까? 캐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한국에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무역이 후진국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촉매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선과 원조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정거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윤리적인 선택을 제공하고, 이익의 공정한 배분을 통해 빈부격차를 완화시키는 공정무역활동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지키는 일이며, 내 이웃과 후손들의 삶을 지켜내는 일이다.

박창순 울림기획 대표, 전 EBS 방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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