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3월 2007-03-01   5149

한국의 대통령제 바로 알기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존재하는 나라는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대통령제라고 할 수는 없다. 예컨대 독일에도 대통령이 있지만 독일은 대표적인 내각제 국가이다. 대통령제 국가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의 권한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모두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국가 원수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의 권위를 의미하며, 행정부 수반은 내각을 이끌며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최고 책임자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제 모두 이 두 가지 권위를 한 사람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같은 대통령제라고 해도 실제 운영과 작동원리는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삼권분립을 토대로 대통령제 가꿔온 미국

미국은 대통령제의 대표적인 국가이며 말 그대로 대통령제의 ‘원조’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통령제라는 통치형태를 고안한 이들이 바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이들의 관심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권력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권력 집중으로 인해 독재로 변질될 가능성을 피할 수 있는 정부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권력을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권분립의 원칙’은 바로 이러한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회를 상원과 하원으로 양분하고 두 원이 동일한 권한을 갖도록 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발로이다. 대통령과 사법부가 거부권이나 위헌 심사권을 통해 입법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대중적인 요구에 취약한 입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제=강한 정부’로 간주해 온 우리의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제는 철저하게 권력을 분산시킴으로써,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출현을 미연에 막으려고 한 것이다. 즉 미국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 하에 일사분란하게 이끌고 가려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와 권한을 공유하면서 상호 견제를 통한 힘의 제도적 균형을 이루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3권 분립으로 제도화되었고, 지난 200여 년 동안 성공적으로 미국 대통령제가 운영되도록 한 근본 원리로 기능해 왔다.

권력 집중된 프랑스의 초대통령제

프랑스 대통령제는 미국과는 상이한 환경에서 출발했다. 현행 프랑스 대통령제는 그 이전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이 두어졌다. 과거 제3, 4공화국은 내각제였는데 정당체계의 분열로 인해 정국이 불안정했고 내각의 수명이 매우 짧아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 5공화국 헌법의 의도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대통령제는 종종 이원정부제라고 불린다. 그 까닭은 헌법에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구분해 놓았기 때문이다. 외교, 안보 등 대외 관련 정책은 대통령이 이끌고, 국내 관련 사안은 총리가 이끌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처럼 분권적이 아니라 대통령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예컨대, 내각 각료의 임면, 의회의 해산 등은 총리의 제안이나 협의를 거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프랑스 대통령제는 ‘분권화된’ 이원정부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초(超)대통령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막강하고 우월적인 지위가 가능한 것은 여대야소의 경우에 한한다.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여소야대가 생겨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야당이 의회 내 다수를 점하게 되면 야당이 총리와 내각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동거정부’라고 하는데 동거정부가 되면 대통령의 위상은 크게 약화되며 사실상 내각제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즉 프랑스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를 같은 정파가 장악하게 되면 매우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가 되고 반대로 동거정부가 되면 대통령은 실질적인 통치 권한을 야당 소속 총리에게 넘기게 되어 사실상 내각제적인 형태로 운영된다.

미국 대통령제에 내각제 가미한 한국형 대통령제

우리 대통령제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대통령제와 비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모델로 삼았고 형태적으로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제는 외형상 미국 대통령제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내각제적인 특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우선 꼽을 수 있는 내각제적인 요소는 총리의 존재이다. 미국 대통령제에서라면 대통령이 직접 내각을 관장하므로 총리는 불필요하다. 또한 미국 대통령제에서는 3부(府)의 역할을 엄격하게 분리해 놓았기 때문에 입법부 의원들만이 법안 제출의 권한을 갖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원뿐만 아니라 행정부도 법안을 제출할 수 있다.

보다 흥미로운 점은 ‘정당 정부’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제는 정당이 집단적으로 집권한다고 하기보다는 대통령이라는 정치지도자 개인의 집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정당의 ‘실질적 지도자’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당 조직이 집단적으로 권력을 장악한다는 점에서 내각제의 정당 정부와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정당 정부적인 특성은 국회의원의 장관 겸임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 대통령제에서 의원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행정부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또 다른 정당 정부적 특성은 당정 회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정 회의는 집권당과 행정부가 특정 정책에 대한 상호간의 입장을 조율하고 법안 처리를 협의하는 모임이다. 당정 협의는 행정부와 의회(여당)간의 사실상 제도화된 상호 협의 기구라는 점에서 권력 분립보다는 융합의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도상으로 미국 대통령제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미국과 달리 내각제적인 요소를 매우 많이 포함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통치 형태의 개정에 대한 논의 역시 외국 사례에 대한 일방적인 답습보다 우리가 겪어온 경험과 관행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의 기반 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강원택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장, 숭실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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