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5월 2007-05-01   2115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을 말한다

‘남녀’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합

네덜란드와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가 공화국.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들이다.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는 2008년 주민투표까지 가야 하는 과정이 아직 남아있다. 이 국가들은 혼인 규정을 ‘남녀’의 결합이 아닌 ‘두 사람’의 결합으로 수정하였다.

물론 이 나라들이 단숨에 동성 결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개별적으로 배우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가정적 동반자 관계’, 동성 간에만 혼인과 유사한 권리를 주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민간결합법’,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사실혼 관계에 있는 모든 커플에게 적용되는 프랑스의 ‘민간결합계약’ 등 여러 형태에서 점점 진화하여 결국에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있었다.

동성 간의 결혼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동성애자들 스스로의 인권운동도 있지만 결혼제도에 대한 불만과 함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해달라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들의 소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이후 프랑스를 포함한 서부 유럽사회에서 동거 커플이 크게 늘어나면서 점차 사실혼 관계에 대한 입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1) 동성결혼을 인정한 서부 유럽국가가 ‘가정적 동반자관계’에서 ‘동성결혼’이라는 절차를 밟아왔다면 프랑스는 ‘민간결합계약’이라는 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라는 국가의 특유한 상황적 요인이 크다. ‘가정적 동반자관계’는 이성애자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제도이지만 취지나 목적은 동성애자 커플들의 법적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반면에 ‘민간결합계약’은 1999년 제정 당시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동성애자 인권운동 측의 주장과 반대파 주장간의 갈등을 무마하는 선에서 성이나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든 성인 동거 커플에게 기혼자와 동등한 재정· 사회적 권리를 주는 것으로 고안되었다. 이는 기혼 이성 중심의 가족제도에 대한 견고한 틀을 깨는 제도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04년 6월, 프랑스의 전 녹색당 당수 후보였던 보르도 시장 노엘 마메르가 프랑스 법상 동성 간의 혼인을 금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동성혼인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만약 인정하지 않을 경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2) 이는 파트너십 제도가 갖는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성애자들은 결혼제도와 파트너십제도를 선택할 수 있지만 동성애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이성혼에 비해서 열악한 법적 지위를 보장할 뿐인 차별적 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강력한‘정상가족’에 숨죽이고 있는 새로운 가족

한국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정작 이를 위한 담론이 논쟁적이지 못한 이유는 한국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닌 견고함 때문이다. 혼인, 혈연, 입양 관계로서만 가족을 인정하려는 현 상황에서 이성 간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것조차도 힘든 판국에 동성 관계까지 생각하기가 힘든 상황인 것이다. 2006년 5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주최한 <동성애자 가족구성 발표대회 “스피크아웃!”>에서 발표자들은 각각의 파트너 또는 동성애자 친구들과 동거하면서 이성애자 못지않은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관계 해소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재산 문제, 외국인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자 문제, 입원 시 의료 행위 문제, 납세 및 보험 문제 등 이성애 기혼자라면 겪지 않을 다양한 차별 사례를 이야기하며 하루 빨리 관계가 인정되고 제도화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하에서 동성애자에게 가족이 가지는 권리,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동성애를 배제하는 가족이데올로기 안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자 가족구성권 운동은 제기되었다.

다양성 인정할 때 가족제도 진화

동성애자 가족구성권 운동은 현재의 가족 제도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로 강력하게 구성되어 있고, 운동 대상이 가족 제도라는 점에서 자칫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제도에 편입해 들어가려는 시도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동성 파트너십 및 결혼 제도를 인정한 나라를 본다면 이 운동은 가족 이데올로기의 외연을 확장하면서 가족 제도 자체를 공고화할 수도 있다. 프랑스의 ‘민간결합계약’에 대한 2004년 인구 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이 계약에 등록한 파트너십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과 2002년 사이 29% 증가했고, 2002년 2003년 사이에는 25% 증가했다. 하지만 출산율이나 인구증가율에서 이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고 있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가족을 위한 운동의 움직임은 더디다. 여성주의자, 정당의 정책연구원, 동성애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이라는 모임도 한국 가족의 현실과 그에 따른 변화가 더디다는 점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고, 가족의 해체 등 위기론을 제시하는 현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현재 운동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한 상태이나 다양한 가족의 차별 실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사회제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별하여 드러내는 연구가 부족한 상태이다. 가족을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단지 전통 문화로서만 생각하여 진화 없이 유지해야하는 관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가족은 없다’가 아니라 ‘가족을 재구성’하는 관점에서 ‘동성애자 가족구성권 운동’은 시작하고, 다양한 가족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종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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