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7월 2006-07-01   3813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여가

여가는 필요성이나 의무가 아닌 스스로 만족을 위한 자유로운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과 생리적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여가인 셈이다. 여가 생활을 통해 우리 자신이 자유를 느끼면 될 터인데 요새는 여가를 즐기는데도 힘이 든다. 진정한 쉼의 의미는 사라져 버렸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이 되어 자유를 누리는 여가는 모두 먹어치워 버리고 ‘여가산업’으로만 남아버린 것 같다. 모두 산과 바다 해외로 떠나는 요즈음 진정한 쉼과 여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 볼 노릇이다.<편집자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무엇을 하고 놀까도 고민한다. 논다는 것은 때로 유치한 일, 어린 아이들의 일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호이징가라는 학자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로 인간을 정의했다. 인간은 노는 존재인 것이다. 일의 반대편에 논다는 것이 존재한다.

여가는 사전적으로는 흔히 가사노동, 아기 돌보기, 부모님과 함께 하기 등의 사회적 의무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으로 정의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음날 일을 하기 위한 수면과 휴식이 포함되어 있다. 여가와 비슷한 말로 놀이, 레크리에이션이 있다. 이 개념들은 여가와 중첩되기도 하고 같이 쓰이기도 한다. 사실 놀이와 레크리에이션은 여가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차이점을 가지기도 한다.

호이징가에 따르면 놀이는 자발적 행동, 일상생활 벗어나기, 시간과 공간의 격리, 제한, 심각하지 않은 몰입, 규칙의 지배, 그들만의 집단 형성 등의 특징을 갖는다. 레크리에이션은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활동으로 규정될 수 있다. 여가와 유사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여가에 포함되는 활동들이다.

현대사회의 여가

로제크(C. Rojek)는 현대사회에서 여가의 특징을 사사화(privatization), 개별화, 상업화, 감정통제로 설명하고 있다. 대중매체가 소형화됨으로 인해 개인의 소유가 가능하게 되고 여가활동의 주된 수단이 된다. TV 시청은 여가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DMB를 포함한 소형화된 미디어들이 개인의 여가활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두 번째로 개별화는 여가의 형태가 타인과 구별된 차별화와 특수화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여가를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애완동물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곤충과 파충류를 기르기도 한다. 또한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통해 개성을 드러낸다.

세 번째로 상업화이다. 과연 돈 없이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면 그 의미는 분명해진다. 거대한 테마파크에서 초등학생의 놀이에 이르기까지 노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들게 된다. 놀이동산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우리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예전에 아버지나 형이 만들어 주던 딱지는 문방구에서 판매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통제라는 특징을 가진다. 감정이 세련 온순화되는 경향을 지닌다. 여가의 내용이 덜 폭력적이고 순화된다는 의미이다. 최초의 축구는 경기장이 동네 전체였고 규칙도 거의 없어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위험한 경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을끼리 투석전을 벌이기도 하다 너무 위험해서 금지되었다.

경제상황에 종속되는 여가

여가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문화, 사회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각자의 경제 조건은 여가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여가는 수입이나 노동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여가의 상업화에 따라 자유시간의 활용은 상당부분 돈에 달려 있다. IMF 이후 경제 상황의 악화로 국민들의 수입은 줄어들게 되었다. 실업자의 증대, 특히 청년 실업의 증가는 노동과 자유시간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렸다. 비정규직이 늘어남에 따라 안정된 노동시간과 고용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조사에 따르면 여가를 즐기고 싶어도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5일 근무제는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낳게 된다. 이와 함께 소위 ‘놀토(학교의 토요일 휴업)’ 현상으로 가족 중심의 여가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 여가에 소외되었던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은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이 8시간 16분인데 비해 여가활동 시간은 3시간 23분에 불과하다. 청소년들에 대한 여가생활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건강한 여가 사회봉사

이러한 사회 상황은 여가에 대한 새로운 추구를 낳는다. 여가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 여유, 감정적 몰입이란 정서적 측면, 자유로운 활동의 측면을 갖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 역시 여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여가를 삶의 가치와 관련된 것으로 추구하는 모습들이다. 물질 조건, 사회 구조에 의한 개인의 사회적 억압은 새로운 가치를 찾게 하는 모순적 상황을 만든다.

프랑스의 여가학자인 뒤마제디에(Dumazedier)는 여가를 활동의 성격에 따라서 나눈다. 자유의지에 의한 일들 즉 휴식을 즐기는 것, 즐기기 위한 것, 지식을 쌓거나 취미로 기능을 연마하는 것, 공동체에 대한 자원봉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림으로써 즐거움을 얻는다. 같이 함으로써 소외감과 고독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봉사는 단순한 사회복지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가장 건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살핌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사회이다. 사회봉사는 자신의 자유로운 시간을 써서 봉사의 즐거움을 얻는 자발적인 활동으로서 의미가 있다.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어울리는 행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장애우들은 사실상 여가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장기자랑, 오감활동퀴즈, 공연 등을 통해 비장애우들은 소외되었던 장애우들의 여가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이는 장애우의 재활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혼자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생활보호대상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여가의 또 다른 가치 있는 부분이 된다.

한편 웰빙이 일상생활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되었다. 웰빙은 말 그대로 잘 사는 것이다. 물질적 조건만이 잘 사는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반드시 헬스클럽, 요가, 유기농 먹거리가 웰빙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인들과 함께 하는 생활체육 주말 산행, 가족과의 즐거운 식사와 산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웰빙인 것이다. 자유로운 시간에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위해 하는 운동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즐거운 만남이 곧 여가인 것이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치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 종교 단체에서는 심신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있다. 자유시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자기발전을 위한 여가활동도 증가하고 있다.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본다든지, 학원에서 어학을 공부하다든지, 각종 동호회 활동을 통해 취미를 넘어서는 전문적인 자기계발활동 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상 생활의 탈출

조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여가활동으로 여행과 레포츠 활동을 들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생계를 위한 활동, 의무적 만남, 쳇바퀴 도는 시간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곤 한다. 여행은 이러한 일상생활로부터 탈출하여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적극적인 여가활동이다. 그러나 조사를 보면 실제 여가활동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TV 시청이다. 사실 TV 시청은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이다. 동시에 가장 수동적이고 비활동적인 여가임에 틀림없다.

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에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이다. 여가의 활용은 일과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 놀이가 유치하지만 우리는 놀이를 통해서 즐거움과 몰입을 느끼게 된다.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함께 함을 느끼곤 한다. 예술적 여가활동은 사람들의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자신을 즐기고 자유롭기를 원한다. 완전한 자유라는 것은 불가능할지는 모른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일과 여가가 함께 하는 삶이 인간 본래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여가는 삶의 당당한 한 부분이며 그로 인해 삶은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동일 부산대학교 사회조사연구소 연구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