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1057

탄핵무효 촛불집회 모금 이야기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시민사회단체들은 비상시국회의를 소집하여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을 조직하였다. 총선시민연대에서 일하던 나 역시 긴급하게 범국민행동에 파견되었다. 3월 13일부터 광화문에서는 매일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집회 현장에서 담당했던 역할중의 하나가 탄핵무효 모금함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모금함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꽉 찬 모금함을 비우는 일이다. 집회가 끝나면 사무실로 돌아와 성금을 정리했다. 은행에 입금하기 위해서는 권종 별로 정리해 100매씩 묶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태어나서 가장 큰 돈을 만져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탄핵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촛불시위 참여 열기를 오롯히 느낄 수 있었다.

모금함을 가득 채운 성금 속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긴 것이 많았다. 돼지 저금통을 들고 왔다는 편지가 담긴 어린이의 정성스런 성금도 있었고, 지갑에 있던 모든 돈을 넣은 듯 지폐에 낀 교보문고 영수증이 많이 나왔다. 곱게 접힌 헌혈증 세 장이 나와 돈을 세던 활동가들을 감격하게 하였으며, 문화 상품권, 주유상품권, 관광상품권, 지하철 정액권 등 각종 유가 증권이 부지기수로 나왔다. 또한 달러화, 엔화, 유로화를 비롯하여 이집트, 오스트리아, 호주, 인도 등 외국지폐들도 상당수 있었다. 촛불집회는 이미 국제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반복되는 작업에서 압권은 3월 20일의 촛불문화제였다. 20만 개의 촛불사이로 50여 개의 모금함이 분주히 움직였고 집회가 끝날 즈음엔 성금이 마대 자루 8개에 가득 찼다. 10만 원권 수표가 24장, 만원권 7000여 장, 오천원권 2000여 장, 천원권 지폐 3만 여 장, 그리고 각 종 동전만 65만9550원이 모여 1억10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성금이 모였다. 다음 날 사과박스에 권종 별로 돈을 담아 입금하러 갔을 때 황당해 하는 은행직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입금에만 무려 세 시간이 넘게 걸렸을 정도이니.

탄핵무효 촛불집회는 특정세력의 조직적인 동원이나 자금으로 이루어진 집회가 아니었다.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해 보았다면, 그리고 현장에서 모이는 성금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그 자발성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탄핵무효 촛불집회는 온전히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성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수구기득권 세력의 말대로 촛불집회를 자제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렸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수구 기득권세력은 과반수가 넘게 국회를 장악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대통령은 탄핵되고 수구 기득권 정치 세력의 정권 찬탈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 끔찍한 일이다. 이러한 가정을 그저 가정으로 남게 한 것은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모금으로 촛불집회를 지속되게 만든 시민의 힘이다.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가 사회를 바로잡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이재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간사,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 정책기획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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