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1338

“내가 뛰어 놀던 모래언덕, 아들에게도 남겨주고 싶어요” 충남 서산 한병각 회원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무슨 들을 말이 있겠어요.”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매우 수줍어했다. 인터뷰 같은 거 싫다며 극구 사양했다. 반면 난 설레고 들떴다. 어렵사리 인터뷰 수락을 받아내면서 그에게서 들은 말들이 빨리 그를 만나고 싶게 만들어서다. 지난달 인터뷰한 회원이 누구였는지 기억하고 있을 만큼 그가 잡지를 꼼꼼히 보는 열혈(?) 회원이란 걸 느낄 수 있어서였고, 그가 제안한 약속장소가 서산의 옛 성터인 해미읍성이란 점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따뜻한 오후에 만난 따뜻한 사람

5월, 해미읍성의 오후는 볕이 좋았다. 회사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나온 40대 초반의 한병각 회원은 수더분한 인상을 지닌 동네 아저씨 같았다. 따뜻한 햇빛 덕분인지, 성 한 귀퉁이에 걸터앉아 그와 나누는 이야기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변전시설을 관리하는 전기안전관리 업무를 7년 째 하고 있는 그는 현장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참여연대와의 인연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1998년 봄 오후 1시쯤이던가, 서산에서 태안으로 이동하는 중에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 참여연대 사람이 나와 하는 말을 들었어요. 당시는 15대 국회의 정쟁이 너무 심해서 반발심이 컸을 때였거든요. 국회의원과 일반 시민이 사는 방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 화가 많이 난 상태였는데, 인터뷰를 듣곤 속이 후련해졌어요. 바로 차를 세우고 라디오에서 알려주는 후원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죠. 그렇게 회원 가입을 했어요.”

단체활동이란 구성원끼리 서로 소통하고 함께 할 기회를 자주 얻지 못하면 활동을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한병각 회원은 참여연대가 있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서산에 살고 있는 지라 참여할 기회도 많지 않았지만, 지난 7년을 변함없이 참여연대를 성원해온 든든한 지지자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회비도 거르지 않았다(^^). 그 애정은 지금도 변함 없어 보인다.

“『아름다운 참여사회』가 오면 일단 목차를 죽 훑어보고 관심 있는 것부터 찾아봐요. 주로 짧은 글들을 좋아해요. 인터뷰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죠. 긴 글은 집중이 안 돼서 어떤 땐 두세 번씩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요.”

쑥스러운 듯 이야기를 이어가는 말투만으로도 그가 참여연대를 얼마나 아끼는 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물었다. “참여연대 간사들 급여는 좀 올랐어요?” 2년 전쯤인가 『아름다운 참여사회』를 통해 실상을 알게 됐다고 했다. “별반 차이 없어요.”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년엔 회비를 좀더 내야겠네.”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캠코더 하나로 뛰는 1인 운동가

한병각이란 이름은 태안군청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면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에 발견한 환경문제들을 부지런히 고발하고 건의하는 ‘환경지킴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킨 사람은 없다.

“태안군청 인터넷 게시판에 자주 글을 올리는 편인데요. 꽃지해수욕장에 방파제를 설치한 뒤부터 모래가 점점 쓸려나가는 문제나 난개발 때문에 생기는 생태계 파괴, 시민들이 아무렇게나 버리는 쓰레기 등에 대해 지적했어요. 만리포 모항항에 방파제를 만들었으면 수로를 설치해서 수질오염을 막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건의한 적도 있고요. 조회수나 답글이 꽤 달려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도 생기고 그래요.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증거니까요.”

그가 정성을 들이고 수고한 만큼 안면도는 숨쉬기가 좀 편해졌는지 궁금하다.

“제가 모래언덕(사구)에 관심이 많은데요. 1997년 해수욕장에 방파제 공사를 한 뒤부터 안면도 모래가 1/3정도 없어졌어요. 여러 번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얘기했어요. 근데 답답한 게 일반인이 제안을 하면 제대로 검토도 안 해보고 무시하는 거예요. 군청에 전화해서 시정을 요구하면 좋은 말로 대답해 놓고 일주일 이주일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래서 다시 항의 전화하죠. 그때부턴 이름도 밝히고 큰소리도 내요. 이 일 때문에 집사람과도 많이 다퉜어요. 집사람이 태안군청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에요. 집사람은 내가 공무원인데 왜 그런 식으로 전화해서 자기를 곤란하게 하냐고 그래요. 옳은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냐고요.”

그를 부부싸움까지 하게 만든 바닷가 모래언덕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구는 방파제를 건설하면 자연스럽게 쓸려나갑니다. 개발은 당장은 좋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모래가 빠져나가서 해수욕장의 기능을 헤치게 돼요. 몇 년씩 촬영하면서 관찰한 건데 자연적인 이유로 변한 사구는 하나도 없었어요. 방파제처럼 사람들이 만든 무엇인가가 모래언덕을 없애버리고 있는 거죠. 모텔이나 음식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태안의 신두리 사구는 사륜구동차들이 몰려와 성능시험을 한다고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심하게 훼손됐어요. 다행히 재작년부터 보호지역으로 지정됐지만요.”

몇 년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그는 자연과 어울려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프로를 열심히 봤고 열심히 녹화했다. 지금도 160분 짜리 녹화 테이프 16개를 보관하고 있다.

“제가 어렸을 땐 바닷가 모래언덕이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던 놀이터였어요. 10미터 20미터 짜리 큰 언덕이 많았죠. 한 30년 전 얘기예요. 제 자식에게도 그런 걸 남기고 싶었어요. 소중한 추억일 뿐 아니라, 아이들 인생 살아가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돼줄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그가 캠코더를 들고 해안가를 찍기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다.

“큰애가 올해 6살이고 둘째는 돌이 막 지났어요. 네 식구가 같이 캠코더를 들고 근처 해안가로 자주 나가는데 큰애는 바닷가에 풀어놓으면 망아지처럼 좋아라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점점 사라져 가는 모래언덕을, 해안가를 꼭 원래의 모습대로 물려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한병각 회원의 가족나들이는 이런 풍경이다. 아들에게 바닷가 모래언덕을 남겨 주려는 아버지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누릴 줄 아는 아이의 기쁨이 어우러지는 흐뭇한 풍경 말이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