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2월 2004-02-01   1080

[인터뷰]박영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 | 이주노동자 밴드 Stop Crack Down

보이지 않는 손들의 절규, “Stop crack down”


“Stop crack down!(강제추방 반대!)”

이젠 한국에서도 이런 말이 전혀 귀에 설지 않다.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 때문이다. 작년 8월 고용허가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률이 공포되면서, 정부는 11월 17일부터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강행했다. 순식간이었다. 법이 공포됨과 동시에, 1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이라는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절벽에 발을 딛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책의 부당함에 맞서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캠프가 설치됐다. 그리고 그 농성장 한가운데 외마디 절규가 있었다. “Stop crack down”이라 외치는,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 크랙 다운(Stop Crack Down)이, 부르짖음이, 물러설 수 없는 저항이….

절규는 곧 노래다. 강제추방 반대 구호를 팀이름으로 정할 만큼, 그들은 절박했다. 그 절박함을 목구멍을 토해내면 다 노래가 됐다. 인간의 절실한 바람만큼 애끓는 노래가 없다면, 그들의 절규만큼 노래다운 것도 없었다.

1월 7일 성공회성당 농성장을 찾았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옷들, 바닥 한 쪽 구석에 대충 치워 놓은 여러 채의 이불, 질서 없이 쌓여 있는 책,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 얘기 나누고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한 쪽에 덩그마니 놓여 있는 드럼. 이곳이 Stop Crack Down의 작업실이다. 번듯한 작업실 하나 없이 연습하면서도 이들은 얼마 전 첫 앨범을 발표했다. 작년 참여연대 송년회 자리에서 초청공연을 가졌던 터라 이미 어느 정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엔 민우(네팔, 보컬), 소띠하(미얀마, 베이스기타), 강라이(네팔, 리드기타), 소모두(미얀마, 드럼)가 함께 했다. 그들의 한국말은 유창했다. 그들은 이미 한국인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들의 절규를 들었다.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Stop Crack Down은 언제, 어떻게 결성됐나요?

강라이 소띠하를 빼놓고는 모두 다른 이주노동자 밴드에서 각자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정부의 강제추방 정책의 부당함을 가장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이주노동자들 중에서 그나마 알려진 우리들이 모여 노래로 외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밴드를 결성하게 됐죠.

소모두 뮤지션으로 인정받으려 했던 건 아니에요. 우리 자신이 한국 땅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동료 노동자들의 어려움도 함께 하고 싶었고요. 그것만 제대로 해도 목적 달성은 충분히 한 거예요. 농성장 안에서 연습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너무 짧은 시간에 만든 앨범이라, 사실 그렇게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지만요.

– 여러분의 음악이 농성장에서 함께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큰 힘이 될 거 같은데요. 지난 번 참여연대 송년회 때 들었을 때도 정서적으로 꽤 호소력이 있다고 느꼈어요.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아니어도,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서적 동질성이 있어서 그런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앨범에는 어떤 노래가 담겨 있나요?

민우 타이틀곡이 ‘친구여 잘 가시오’ 입니다. 저희들이 친구들을 위해 만든 노래예요. 그 노래를 포함해서 총 9곡이 수록돼 있어요. 춤추면서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네팔 노래, 미얀마에서 온 친구들을 위해 미얀마어로 부른 ‘그리워하는 엄마의 집’이라는 노래도 있고요. 물론 농성장 분위기를 담은 노래도 있어요.

– 힘들게 만든 음반이지만, 우리나 동료 이주노동자들에겐 큰 선물이 된 거 같아요. 이 음반 덕택에 이주노동자문제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소띠하 맞아요. 더 좋게 말하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죠. 하하하.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나라, 한국

– 1000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두 달 넘게 농성하고 있는 이유도, 여러분이 노래하고 있는 것도 한국정부의 강제추방 정책 때문인데요. “한국정부는 함께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정부, 인간답지 않은 정부”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한국에 오랜 기간 머무르면서 한국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요?

민우 그 동안은 한국에서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쫓아내지 않다가, 지금은 필요 없으니까 쫓아낸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우리도 한국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쫓겨나게 되니까 왕따 당하는 기분이에요. 아세요? 한국이란 나라를 싫어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을요.

강라이 한 마디로 서운하죠. 사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기에 우리는 한국을 또 다른 내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않아요. 가끔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들이 대뜸 “돈 많이 벌었나?”하고 물어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돈벌러 오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요. 지난 월드컵 때 붉은악마 빨간 티셔츠 입고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한국팀을 응원했었던 우리들인데 말이죠.

– 요즘 TV 한 프로그램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소모두 이주노동자 문제를 이슈화 해준 건 고맙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어요. 원래 취지대로 가족을 만나게 해 주는 것에서 그쳤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 그 프로그램은 우리에 대한 동정심을 부추겨요. 저희를 너무 억지로 불쌍하게 보이게 하는 점은 정말 싫습니다.

강라이 작년 여름에 유네스코가 주최했던 행사가 있었는데, 그 일정 중에 한국 중학생들하고 자리를 같이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국 학생들은 우리가 너무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하더군요. TV에서 본 그대로이지요. 다행히 같이 지내면서 학생들 생각이 변했지요. 나중에는 단순히 보고들은 대로 판단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우린 가난합니다. 그러나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그런 것으로 행복지수를 따지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돈이 없어도 행복해요. 물론 어려워서 가족과 떨어져 이렇게 고생하는 건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우린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요.

“우린 한국굴뚝의 보이지 않는 손”

– 고용허가제가 실시돼도 근본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또 정부의 입장이 쉽게 변할 것 같지도 않고. 농성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소모두 고용허가제가 우리한테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국정부는 어떻게 우리를 괴롭힐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계속 싸울 겁니다. 한국정부가 우리들을 인간답게 생각할 때까지 투쟁할 거예요.

민우 강제추방이라는 말이 언론에서 많이 나오다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들도 우리를 보면 “쟤네들 집에 안 가나?” 하세요. 강제추방만이 최선일까요?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정말 물어보고 싶어요.

소띠하 한국인 노동자는 보이는 손, 우리는 안 보이는 손이죠. 우리는 한국에서 안 보이는 손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한국인들보다 더 열심히요. 그런데 어떤가요? 같은 노동자 취급 해 주나요? 회사에선 설날, 추석 같은 명절이나 휴일은 한국인들을 위한 거니까, 우리 보고는 쉬지 말랍니다. 황당하지 않습니까? 부당하다고 항의했죠. 그랬더니 사장이 하고 싶은대로 하래요. 그래서 휴일에 쉬었더니 휴일의 일당을 월급에서 제했다고 하더군요. 한 회사에서 8년 넘게 일하면 뭐합니까? 퇴직금 달라는 소리는 고사하고, 밀린 급여도 못 받는데요. 회사가 어렵다는 사장 말 한 마디면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하고 나와야 합니다. 늘 이런 식이에요.

강라이 가라고 하면 갈 수는 있어요. 하지만 여태껏 내 나라처럼 생각하고 일했는데, 이런 식으로 추방하듯이 나가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설령 우리 농성이 아무런 효과 없이 끝난다고 해도, 이렇게 해서라도 그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 마음 아플 때가 많을 거 같아요. 외로울 때도 많고요.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시나요?

소띠하 같은 나라 공동체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전화 꺼놓고 가만히 혼자 있기도 해요. 그리고 웬만하면 기분이 가라앉지 않게 노력하죠. 악기를 연주하면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보니까 친구들도 많이 생겨서 서로 의지하면서 생활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절 걱정해 주는 가족들의 격려에 힘이 납니다.

민우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면 훨씬 힘이 되겠죠. 국제화란 거센 흐름 속에 있는 한국은 다문화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이주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가 그만큼 한국에게도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에요.

– 동의합니다. 이주노동자들과 어떠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느냐가 세계화를 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앞으로 여러분들의 노래가 국적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면 합니다.

소모두 우리를 통해서 이주노동자 문제가 제대로 알려지고, 그래서 가장 최선의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생각들 많이 하시죠? 도대체 그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이 왜 한국으로 오는 걸까, 하고요. 특별한 이유 없습니다. 같이 살자고 오는 것이죠. 하하.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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