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3월 2004-03-01   1083

[특집]2004년 국회의원 후보자들 소명자료 천태만상

변명많고 솔직한 자기반성 드물어

총선시민연대는 지난 5일과 10일 2회에 걸쳐 109명의 낙천명단(1차:현역의원 66명, 2차:원외인사 41명, 현역2명)을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총선시민연대는 현역의원과 각 당 공천 신청자를 상대로 소명자료를 요구, 총 98건의 소명자료를 받았다. 다선(多選)의 중진부터 정치 새내기까지, 이들이 보내온 사연은 다양했다. 각양각색의 소명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최한수 2004총선시민연대 기획팀 간사 freehead@pspd.org

1. 자화자찬(自畵自讚)형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명 유형이다. 5.6공 인사인 김용갑 의원(한나라당)은 자신을 “안기부를 양지로 이끌어낸 개혁주의자이며 5공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할 당시 ‘땡전 뉴스’를 없앴으며 6.29 선언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가 “양지로 이끌어냈다”던 안기부는 그 후에도 수지 김 사건과 같은 추악한 국가범죄를 저질렀다. 또한 땡전뉴스 폐지나 6.29선언도 한 개인이 아닌 민주화의 산물이라는 것도 밝혀둔다. 견강부회(牽强附會)란 말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의 허물을 숨기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형도 있다. 의정활동 불성실을 이유로 2000년 낙천 리스트에도 선정된 정몽준 의원(국민통합 21)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는 의정활동이 부실했다는 비난을 의식했는지 자신의 저서와 의정활동을 보도한 신문자료를 한 뭉치 보내왔다. 참고로 정몽준 의원의 16대 본회의 출석률은 45.1%로 하위 두 번째다.

2. 나만 당해 억울하다 – 표적사정형

뇌물이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의원들은 그것이 ‘표적사정’이었음을 강조한다. 8억7천만 원을 횡령한 전과가 있는 김기영 전 서울시의원(민주당 공천신청)은 자신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점을 자백하라는 짜맞추기 수사였다고 주장했다. 포철 회장 당시 4억2천만 원을 횡령한 전과가 있는 김만제 의원(한나라당)도 당시 수사는 표적사정이었다고 항변했다. 이런 주장은 일반인뿐 아니라 검찰출신 인사에게서도 나왔다. 제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부도어음 매각과 관련된 법률사건을 알선 청탁하여 변호사법을 위반(벌금 700만 원)한 김진관 변호사(민주당 공천신청)는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 조직이 언론을 의식한 나머지 법률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극히 사소한 부분을 문제 삼아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전직 고위간부로서 한 발언으로는 다소 어의가 없는 해명이다.

‘표적사정형’이나 ‘음모론’을 주장하는 후보들은 총선을 자신의 한풀이 장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경기도지사 시절 1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전과가 있는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민주당 공천신청)는 재판이 장기화되면 17대 총선에 출마할 수 없을까봐 상고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들은 선거에서 유권자들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개인적으로 억울함을 풀려면 국회가 아니라 법원으로 가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이들은 만약 자신이 무죄를 다투느라 정치권을 비우면 나라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하는데, 대다수 국민은 이들이 금배지를 달기 위해 선거에 나가는 것이 더 큰 국가적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국민과 의원들의 생각의 차이다.

3. 나는 다르다형

일반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행동을 한 의원들은 문제인데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철새’나 경선 불복으로 낙천 리스트에 올라간 의원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이용삼 의원(민주당)은 97년 11월 한나라당 탈당으로 경선 불복을 행사한 이 의원은 “철새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펼치고자 과반수가 넘는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소수 야당을 창당한 가시밭길을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함석재 의원(한나라당)은 자신의 당적 변경이 대세 영합이거나 혹은 공천에 탈락한 후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민련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선 불복(3회)과 잦은 당적 변경을 이유로 낙천 리스트에 뽑힌 주승용 전 여수시장(열린우리당 공천신청)은 자신의 행동은 “그 자체가 게임의 룰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소명을 듣고 있으면서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내가 하면 결단이요 남이 하면 철새다.’

4. 식상한 음모론·사실왜곡·황당형

박상천 의원(민주당 전남 고흥)은 총선연대가 자신을 낙천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해산 못하도록 당을 지킨 데 대한 보복으로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과 총선연대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총선연대가 낙천 사유로 꼽은 ‘특검반대’나 ‘직위이용 월권행위’가 민주당을 지킨 것에 대한 보복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국민이 모르는 음모론을 박 의원만이 알고 있는 듯하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후보도 있다. 정두언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한나라당 공천 신청)은 회식자리에서 여성 기자를 뒤에서 껴안은 성희롱이 낙천대상 이유로 들어있었다. 이에 대해 정 부시장 측은 어깨동무를 한 것이 성희롱으로 와전되었다고 해명했고 피해자 측이 이는 거짓말이라며 고소하겠다고 하자 그때서야 ‘만취한 상태에서 여기자의 어깨를 안았다’고 시인했다. 이러한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한 언론노조는 그의 사죄와 정계 퇴출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해당신문사는 기자 칼럼까지 실었다. 아마도 정두언 부시장 낙천 사유에는 성희롱 외에 거짓해명이라는 사유가 추가될 것 같다.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민주당 공천 신청)은 조폐창 파업유도사건에서 ‘제3자 개입금지조항’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진 전부장의 해명은 ‘제3자 개입금지조항’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대검 공안부 검사 출신으로 많은 노조활동가를 제3자 개입금지조항위반으로 기소하였을 그가 이 조항에 대한 위헌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며, 선거가 이렇게도 사람을 바꾸나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유권자도 절반의 책임있어

한 달에 걸쳐 소명들을 받으면서 느낀 점은 ‘변명은 많아도 진실한 자기반성은 드물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공정성에 대한 고민과 부담이 적지 않았고, 리스트에 올라간 정치인들에게 대한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소명을 접하고 정치인들을 실제 만나면서 미안한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히려 ‘퇴출 리스트’를 제시하고자 했던 당초 총선연대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재확인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제가 있는 정치인들이 이미 유권자에게 검증 받았다며 큰 소리 치는데 할 말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들의 후안무치에 대해서는 사실 유권자에게 절반의 책임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낙천낙선리스트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유권자의 무서움과 힘을 보여주는 것이 그 책임을 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최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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