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3월 2004-03-01   1037

[시민운동] 부안 방폐장 찬반 주민투표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실험


부안 사태의 해법으로 주민투표가 제시되고도 작년 12월말까지 구체적인 투표일정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15일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 인사들로 주민투표관리위원회(위원장 박원순 변호사)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갑작스럽게 사무처장이라는 부담스런 직책을 맡게 되었다. 사실 부안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관심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가, ‘주민투표’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사무처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돼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주민투표’에 대해 일본과 한국의 사례들을 조사해 왔지만, 그 때문에 ‘주민투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특히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주민투표를 만들어 나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투표관리위원회의 사무처장을 맡기로 한 다음날인 1월 16일 도착한 부안의 밤거리는 조용했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에 싸여 있었다. 밤늦게 들른 술집에서는 온통 주민투표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분명히 부안의 다수 주민들은 주민투표의 조속한 실시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17일 오전에 유치찬성단체를 만나 “주민투표를 거부하겠다”는 대답을 듣고는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감 없어지자 짐 싸들고 현장으로 내려가

그 이후 몇 일 동안 주민투표를 위한 실무준비를 시작하면서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과연 이 주민투표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인가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민투표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비록 소수이지만 찬성단체가 주민투표를 거부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주민투표를 어떻게 공정하게 치를 수 있을 지 등의 고민거리만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구정연휴가 끝나기 전인 1월 23일 짐을 아예 싸들고 부안으로 갔다. 머릿속에서 고민한다고 해답이 나올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안에 내려온 지 며칠만에, 주민투표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장에서 움직이는 부안 주민들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회의와 고민에 싸여 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1월 25일 사무실 개소식을 할 때까지, 읍.면별로 주민투표관리를 맡을 주민투표관리위원회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시민사회단체가 활동가들을 속속 파견하기 시작했고, 부안 현지에서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사무실로 몰려들었다. 투표전날에는 무려 40명의 변호사들이 투표소 관리위원장을 맡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고, 전국에서 6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주민투표는 치러질 수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600명의 자원봉사자

특히 많은 부안 사람들은 주민투표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개인택시운전자들은 투표 당일 무료로 사람들을 태워주겠다고 했다. 많은 학교의 교장선생님들은 본인도 부안사람이라면서, 학교를 투.개표공간으로 제공하는 데에 선뜻 응해주셨다. 그리고 주부들은 가가호호 방문하거나 전화홍보작업을 해 주셨다. 학교 선생님들은 개표관리업무를 맡겠다고 나서 주셨다. 자율방범대원들은 투표소 경비를 맡아 주셨고, 해병전우회에서는 개표소 부근의 교통정리를 맡아주셨다. 그 이외에도 사무실 앞에 쌓인 눈을 치워주려는 분들, 간식거리를 사 오시고, 여러 의견을 제공하려는 분들로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사무실은 항상 북적였다. 또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면서 후원금을 전달하고 돌아서는 여러 주민들, 서울에서 열린 시민사회의 모금행사 덕분에 5천만 원에 달하는 투표비용도 모을 수 있었다.

“부안을 보며 사회에 눈을 떴다”

이처럼 뜨거운 참여열기를 보면서,‘무엇이 부안 주민들을 이렇게 변하게 했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중에 부안에서 핵폐기장 문제가 발생하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자원봉사를 하러 온 대학원생은 “작년 7월 이후 부안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사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하면서 매일 사무실에 나와서 밤늦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주부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평범하게 살려고 했는데, 핵폐기장 문제가 터지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나도 나서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무료로 택시를 태워주신 기사님은 “이번에 외부에서 도와주셔서 너무 고맙다. 나도 다른 지역에 이런 일이 있으면 도우러 가겠다. 시민단체 회원가입도 해야 되겠다.”고 말한다.

부안 방사성 폐기장 문제는 분명히 부안 주민들에게 시련이었다. 그렇지만, 시련 속에서 부안 주민들은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주민들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듯했다.

이런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을 동원한 투표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역언론들의 왜곡보도 속에서도 2월 14일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72.04%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91.83%의 반대표가 나옴으로써 다수의 부안주민들은 방사성폐기장이 부안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참여민주주의 직접 체험의 장, 부안 그리고 ‘주민투표’

혹자는 국책사업인데, 지역주민들의 투표로 결정하면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국가가 하는 것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밟고 서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지역이 지역을 밟고 일어서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수도권과 대도시를 위해 농촌지역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들 그리고 모든 지역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읍.면별로 12차례나 열린 토론회에서 많은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가 TV토론에 나와서, 부안주민들이 핵에 대해 뭘 알겠느냐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행정부지사는 핵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우리는 그래도 몇 달 동안 공부했다”라고. 결국 부안주민들은 핵 자체보다는, 관료들이 정책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구조에 대해 분노하고 문제제기 한 것이다. 그리고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군수에 대해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의견, 주민의 의견이 존중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결정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을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이번 부안의 주민투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관객민주주의(국민이 정책결정의 관객으로 전락해 있는 민주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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