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8월 2004-07-05   1063

[인터뷰] 파병반대 선언한 영화배우 최민식 씨

“지금 국민들은 정신적 공황상태, 국민사기보다 중요한 국익이 있습니까”

[##_1R|702_2.jpg|width=”200″ height=”41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당연히 원점으로 돌려야죠. 가면 안됩니다. 가면 죽어요.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요. 이라크 저항세력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3천 명이나 되는 부대가 가서 미군통제 하에 치안을 한다고 검문검색하고 테러리스트 색출하고, 그렇게 하면 그네들에게는 당연히 적이 되는 거죠. 당연히 공격을 받게 될테고. 그 3천명이 어떤 사람들인가요. 모두 국민들의 금쪽같은 자식들 아닌가요.”

영화배우 최민식 씨도 ‘파병반대’를 선언했다.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 이후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종교계, 학계에 이어 사회참여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던 문화예술계도 파병반대를 외치고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2일에는 605명의 영화인이 고 김선일 씨를 추모하며 파병반대를 선언했고 신성우, 권해효 씨 등은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민식 씨는 지난 3월 초부터 영화 촬영으로 강원도 태백에 머물고 있다. 현재 촬영 중인 영화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휴먼스토리라고 한다. 여기에서 음악교사를 연기하고 있어서일까. 그는 편안하고 밝아 보였다. 그러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에 대한 소감으로부터 묻자 그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 졌다. 인터뷰는 큰 한숨으로부터 시작됐다.

“(한숨) 안됐죠. 아니 안된 정도가 아니라 그건 일어나지 않았어야 될 일이었죠.”

고 김선일 씨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곧바로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무능하고 무성의한 대처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정말 한편으로는 온갖 정보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해 물밑작업을 하면서 고 김선일 씨를 살리기 위해 모든 협상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는 원칙대로 파병하겠다라고 발표한게 아니잖아요. 그냥 <알자지라>방송을 통해 피랍사실을 듣고 NSC를 소집하고 파병원칙은 철회할 수 없다하고는 바로 발표한 것인데. 한마디로 국민 한 사람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이 그 국민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죠. 대의적으로 아주 큰 일, 그러니까 국가와 민족이 존폐 또는 소멸될 위기에서 부득이하게 감내해야할 소수의 희생, 이런 게 아니거든요. 이 전쟁은 전 세계가 지탄을 하는 명분없는 침략이잖아요.”

최민식 씨는 이라크에 파병하겠다는 방침은 잘못된 판단이며 이러한 오판에 의해 국가의 중대사가 결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판단근거와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공개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국회에 나와서는 비굴한 모습으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 이랬는데, 사실 뭐가 고뇌였는지 밝히지도 않았잖아요. 이러이러한 상황이고 우리가 파병을 안하면 미국이 어떻게 타격을 가하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상황이 도래하는지, 이런 구체적인 뭐를 내놓고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고 말해야지. 그런 설명이라도 있으면, ‘어? 그래?’ 하면서 이야기라도 해볼텐데, 그런 것도 없잖아요. 파병반대운동하면 ‘너희는 아직 세상을 몰라.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에 대해 니들이 뭘 알겠어. 그냥 정부가 하는대로 따라와’ 이런 식인데. 국민들을 상대로 이런 시건방진 처사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죠.

그뿐이 아니죠. 정부는 파병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거짓말들을 하잖아요. 이라크인들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 그들이 자유와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 저는 그런 거짓말부터 짜증이 납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잖아요.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고. 솔직히 우리가 미국이 이라크 침략하는 거 도우면 뭔가 콩고물이 떨아진다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길 하던지. 너무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거짓말들을 하고 있잖아요.”

최민식 씨는 스스럼없이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찍은 사람인데, 대단히 실망했다”고 말한다. 실망의 결정적 계기는 파병강행과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

“개혁이란게 뭡니까. 옳은 것을 지향하는 것이잖아요. 과감히 구습을 타파하고 구태의연한 관습을 뛰어 넘으려면 옳은 것에 대한 추진력이 있어야지요. 그런 리더쉽이 그립습니다. 정신적으로 올곧고 올바른 판단을 할 그런 리더쉽이 아쉬워요.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개혁을 주장하지만, 이번 파병결정과 진행을 보면서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는 잘못된 일이라는 것에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면서도 국익이라는 추상적인 이유로 파병을 강행하려는 상황을 한 가정의 예로 비유했다.

“비유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정이 있고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해봐요. 떵떵거리고 잘 사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먹고 살기 불편함이 없는 정도로 사는 가족이요. 그런데 가장이 옳지 못한 일에 손을 대서 엄청난 콩고물을 얻어서 100평 200평짜리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쳐요. 그 자식들이 컸을 때,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누렸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없다구요.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나 존경심도 없어지고, 결국에는 그 가정이 황폐해지잖아요. 특히 정신적인 면이 그렇겠죠.

그런데 아버지가 이건 옳지 못한 일이라고 저항하다 많은 불이익을 당해 45평에서 단칸 셋방으로 이사를 갔다고 칩시다. 그럼 당장은 불편하겠지요. 그 아들딸들도 칭얼대겠죠.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버지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다 이럴 거라고 봐요. 그래서 다시 잘 살기 위해 다시 단결하고 결속하고 이럴 것 같아요.”

이어 파병이 가져온다는 애매한 국익을 논하기에 앞서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을 통해 국민 모두가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는 등 이미 드러난 심각한 피해를 먼저 보라고 충고한다.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경제적 이익보다 지금 국민들이 정신적 공황에 빠진 것 같습니다. 우선 저부터가 말이죠. 도대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못 느끼겠습니다. 국민들의 정서와 사기만큼 중요한 국익이 어딨습니까.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 자기의 지도자에 대한 자부심,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다. 우리나라는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다 이런 자부심을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 나이 마흔셋인데, 제가 땅에 발을 딛고 숨 쉬고 있는 이 나라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좌절됐어요.”

또한 고 김선일 씨 피살사건을 놓고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로 전투부대를 포함한 파병강행을 촉구하는 일부 여론에 대해 방향이 틀렸다라고 반박한다.

“우리가 심정적으로 분노를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응징이라니, 방향이 잘못되었어요.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사건의 본질을 봐야할 것 같아요. 어디를 가서 누구를 쓸어버리겠다는 말인가요. 김선일 씨를 죽인 이들이 용병이든 이슬람 토착 저항세력이든 간에 문제의 본질, 그러니까 우리가 왜 이라크에 가는지, 이 전쟁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이라크와 미국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등등의 이면을 봐야겠지요. 너무 흥분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명분없고 추악한 전쟁에 동참해 아무런 의미없는 희생을 치뤄서는 안된다라고 호소한다. 또한 이 전쟁을 추동하는 부시 미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다시 당선될 가능성도 희박한 것이 아니냐면서 국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왜 ‘지는 해’에 대해 빌붙느냐고 일갈한다.

“새로 재편될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에서 얼마나 기름을 얻어먹으려고 온 국민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 넣습니까. 우리나라가 테러를 당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또 간다해도 이게 실익이 있는지,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대로 국익을 따진다해도 이게 남는 장사인지도 의문입니다.

저도 영화배우라는 직업만 아니면 보통 시민이죠. 신문방송 등 기존의 언론보도로 아는 수준의 국제관계 상식이지만, 제 나이의 보통 상식으로 봐도 이것은 나쁜 것이거든요. 저도 군대에 다녀왔지만, 군대에 있는 3년만 해도 가족들은 얼마나 걱정이 많습니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만한 그런 뜻있는 일도 아니고 우리 조국을 지키는 것도 아닌 이 무의미한 전쟁에 왜 우리가 동참해야 하나요. 우리 젊은이들의 피의 댓가와 미국과 동조해 군화발로 이라크 사람들 짓밟고 얻을 경제적 이익과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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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을 겁내서, 파병을 거부하면 미국이 안보상, 경제상 불이익을 줄까봐 겁이 나서 그런 면이 있죠. 하지만 그런 것들로 어떤 피해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전 시대처럼 그렇게 결정타를 맞는 상황이 생길까요? 미국이 강대국이지만 다른 대륙도 있고 아시안 국가들도 있고, 또 우리가 옳은 일을 함으로 해서, 이슬람권 국가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활로는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제 국제관계가 그렇게 미국에게 잘못 보였다고 우리나라 체제가 갑자기 위협을 받고 경제가 마비되고 북에서 쳐들어 오고… 갑자기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 김선일 씨를 죽인 이라크 저항세력이 군인이 아닌 무고한 민간인을 그토록 무참히 살해한 것을 비난했다. 그러나 저항의 빌미를 제공한 당사자는 바로 미국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라크가 미군에게 저항하는 것을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일본에게 저항했던 것에 비유하며 파병은 도저히 안될 일에 동참하겠다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심정적으로 순수한 이라크 저항세력은 이해가 됩니다. 우리 일제시대 때 윤봉길, 안중근 의사 이런 분들도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거든요. 멀쩡하게 살고 있는 나라에 석유 뺏어 먹으려고 군대 끌고 들어와 폭격하고 사람 죽이고 이러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저라도 가만히 못 있을 것 같은데. 이거는…일제 36년을 겪은 우리나라로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에 동참하자는 거예요.”

최현주 기자, 사진 정김신호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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