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8월 2004-08-01   1294

재벌과의 싸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여연대의 대표적인 활동기구인 경제개혁센터는 1996년부터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를 내걸고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재벌개혁 운동을 전개해왔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을 걸고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과의 싸움을 시작한 경제개혁센터의 역사를 장하성 전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통해 들어보자. 편집자주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의 활동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7년 3월7일 제일은행의 주주총회였다. 경제민주화위원회를 1996년에 만들어 첫 번째 경제개혁 시민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 이른 아침에 종로2가에 있는 제일은행 본점으로 향하던 때의 설레임과 두려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준비도 많이 했고 마음도 단단히 먹고 나섰는데 참여연대의 질의와 항의는 묵살되고 주주총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주총이 끝난 후에 우리들은 내내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는 제일은행의 주주총회가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역경과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으며, 그날의 주총이 우리나라 경제시민운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오늘의 참여연대 경제개혁운동이 있게 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낸 경제민주화위원회 출범시의 주역들은 김석연, 김진욱, 최영태, 김준기, 이윤호, 윤종훈, 차규근, 하승수, 이상훈, 이한일, 홍승욱, 김현정 그리고 박원순, 김기식, 이승희였다.

참여연대를 경제시민운동의 대표적 위치에 이르게 한 출발점인 제일은행 주주총회로부터 7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주주총회와 법정에서의 투쟁, 길거리와 국회 그리고 정부부처를 누비며 벌인 캠페인과 로비, 국내외 주주들을 상대로 한 로드쇼와 서명운동, 셀 수 없이 많은 성명서와 보도자료 그리고 토론회와 공청회, 수많은 이름없는 시민들의 격려와 성원, 재벌들과 기득권세력들의 끊임없는 음해와 방해공작, 그리고 밤을 새우며 머리를 맞대고 벌이던 토론과 전략회의들이 있었다. 헌신적인 상근간사들의 노력은 말 할 것도 없고, 열정과 희생으로 활동을 해온 수많은 전문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이루어낸 것이다.

시작부터 희비 교차한 재벌과의 싸움

1998년 참여연대는 두 가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하나는 3월27일 삼성전자에서 13시간 30분이라는 기록적인 마라톤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전자가 해외 위장회사를 이용해 삼성자동차에 지급보증을 한 것을 밝혀냄으로써 재벌기업의 경영에 일대 전환점을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7월 24일 제일은행 전·현직 임원을 상대로 제기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주주대표소송에서 4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승소함으로써 주식회사 경영에 대변혁을 예고한 것이었다. 두 사건은 이후에 우리나라 재벌기업들과 금융기관의 경영에 역사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참여연대를 실천적인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항시 성공적인 성과만 거둔 것은 아니었다. 8년여의 경제팀 활동 중에서 두개의 실패한 시도는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쉽다. 1999년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관개정이나 계열사와의 거래 등의 현안을 사전에 협상을 했었다. 주주총회일 이틀 전 새벽에 협상이 타결되어 새로운 주주총회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보람으로 기뻐했었다. 그러나 다음날 삼성전자는 합의된 내용을 이행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통보를 해왔고 우리는 손안에 쥐었던 다이어몬드가 부서져 모래알이 되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아쉬운 순간을 겪었다. 몇 년후 삼성은 다시 대타협의 제안을 해와 참여연대가 기꺼이 이에 응하기로 했으나 이마저도 이루어지지 못해 삼성은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대화와 협상보다는 불신과 대립이 계속되는 안타까움을 겪게 됐다.

또 다른 아쉬운 실패는 LG그룹 계열사인 데이콤의 일이다. 2000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데이콤은 참여연대가 요구한 지배구조개선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사주조합 주주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 한명을 선임하기로 한 것은 재벌그룹이 노조 경영참여의 새로운 모델을 수용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999년에 합류한 김상조, 김기원 두 분이 종업원의 우리사주조합의 참여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여 제시한 새로운 시도가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새로운 노조지도부가 들어서고 데이콤이 파업사태로 치달으면서 우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종업원 경영참여의 새로운 모델을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었다.

소액주주의 권리 제고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기여

아쉬운 실패가 있었던 만큼 보람있는 성과도 적지 않았다. SK텔레콤의 사외이사선임은 우리나라 사외이사 제도의 효시가 되었고, 비록 소송에서 패소하기 했지만 삼성전자와 두산의 전환사채에 대한 문제제기는 재벌총수들의 편법적인 회사재산 빼돌리기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 현대투신의 바이코리아펀드에 대한 장부열람,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소송 등 수많은 활동이 우리나라 기업과 경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과였다. 이 많은 활동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을 기념비적 성과는 2003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증권집단소송제일 것이다.

증권집단소송제는 15대 국회 때에 참여연대가 입법청원안을 제출하면서 논의가 시작됐으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재계와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계속되어 법사위에서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진통을 겪다가 16대 국회가 끝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에 극적으로 제정됐다. 증권집단소송제는 국민들의 작은 권리를 지켜낼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집단소송제의 효시가 되었고, 시장질서를 바로 잡는 경제적 효과 뿐 아니라 우리사회에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회적 의미가 더욱 크다.

제도개혁운동의 구체적 실천

참여연대의 경제개혁운동은 2001년에 김상조 교수로 리더쉽이 교체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운동의 중심축이 소액주주운동에서 보다 광범위한 제도개혁운동으로 확산됐다. 생명보험회사의 상장, 지주회사제도의 개선, 신용카드회사의 부실과 신용불량자 문제와 같은 구체적인 경제현안에 대해 정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역량을 과시했다. 증권집단소송제의 제정이라는 대성과를 거둔 것은 물론이고 사회복지분야와 협력하여 국민연금의 개혁안을 만들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와 같은 경제구조의 개혁정책을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시민운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경제팀의 활동은 많은 이해당사자들과의 긴장관계의 연속이다.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그러한 기업과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 은행이나 투자신탁과 같은 금융기관, 전경련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단체와 끊임없는 갈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활동들을 한다. 더구나 경제정책현안이나 제도개혁의 이슈에서는 재경부나 청와대와 같은 관료조직과 권력기구와도 긴장관계를 갖게 된다. 가족이나 친척 또는 친구 중에 그러한 기업, 금융기관이나 정부부처에 관계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일상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다. 참여연대활동을 통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거미줄처럼 인간관계가 얽혀있는 현실에서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가 아니라 의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참여연대 경제팀은 아직은(?) 단 한번도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팀에서 함께 활동했던 모든 분들이 참여연대 활동으로 인하여 인간관계나 사회활동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되더라도 묵묵히 이를 받아들이고 자기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참여연대 경제팀은 우리나라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서게 된 만큼 책임성도 커졌다. 물론 지난 8년 동안 많은 운동가들이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해 온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불과 20여명에 불과한 소수의 시민운동가 집단이 한국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는 참여연대가 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사회에서 역할이 주어진 조직과 기구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함으로써 얻게 되는 반사적 영향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가 많아져서 참여연대 경제팀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이루어내고자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참여연대가 우리나라 경제개혁을 위해서 해야할 일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기억 속에 옛날은 아픈 상처조차도 아름답게 포장되어 남는 것 같다. 시민들이 보여준 많은 관심과 지지 또는 정반대로 이해집단으로부터의 비난과 음해뿐 아니라 혼자서 견뎌내야 했던 외로움마저도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던 것은 함께 꿈과 이상을 나누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함께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어온 친구들을 얻게 된 것이다. 단지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 많은 친구들이 함께 이루어낸 공의 일부를 훔치는 미안함도 있었다.

훗날을 위해서 그동안 함께 경제개혁운동에 많은 것을 희생하고 봉사한 분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경제민주화위원회 발족시에 참여했던 분들은 앞서 이미 언급했으며, 그 이후에 경제팀에서 활동한 분들은 김주영, 고태관, 이찬진, 이은정, 조병규, 정문영, 윤형근, 김경률, 김선웅, 신인수, 오기형, 윤영규, 윤복남, 강용석, 김기원, 김상조, 채이배, 박응조, 김헌수, 하일호, 이지선, 이소영, 송호창, 김우찬, 채이배, 권혜영, 이정환, 이지수, 이주영, 송난근, 김영희, 김준오이다. 참여연대 경제팀이 거둔 성과는 그 모두가 상근간사들의 희생의 대가이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으로부터 “당신 나하고 한번 붙자”고 결투신청을 받고도 이를 묵살하고 승리한(?) 김기식. 마이다스처럼 무슨 일이든지 되게 만드는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지녔음에도 어린 생김새로 적을 혼란에 빠트린 이승희. 나라살림을 다 맡겨도 걱정할 필요없게 할 정도로 너무도 꼼꼼한 김은영.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시민운동가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두 사람, 너무도 부드러운 남자인 박근용과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이수정. 그리고 경제팀의 새식구인 최한수. 이들이 참여연대 경제개혁운동의 오늘이 있게 한 전사들이며, 한국경제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희망의 꽃들이다.

장하성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