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0월 2004-10-01   1103

[회원사랑방] 대한민국의 경제정의, 장하성이 그곳에 있다

장하성 교수 초청 강연을 듣고


1998년 봄, 상장기업들이 한해 실적을 발표하는 주총시즌이다. 컴퓨터 단말기를 들여 다 보며 차트분석에 열중하던 나는 방금 들어온 기업속보가 시장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짧은 시간 내에 고민하고 있었다. 순간의 판단에 어마어마한 돈이 왔다갔다하는 증권시장의 생리상 이 고민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으리라. 이때만큼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누누이 강조했던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에 의한 가치투자’도 뭐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였다. 딩동! 소리를 울리면서 들어온 속보하나! “장하성 교수가 이끄는 참여연대, 삼성전자 주총에서 삼성자동차에 대한 불법지원 밝혀내….” 찰나의 순간 대한민국의 많은 증권브로커들은 삼성전자에 대한 매도버튼을 눌러댔을 것이고, 많은 희비가 엇갈렸을 것이다.

소액주주운동을 계기로 시작된 장교수와의 인연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장하성 교수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장하성 교수가 재벌과 고군분투하며 싸웠던 그 때 나는 대학교 3학년으로 실전에서의 경영학 공부를 한답시고 장외시장의 엔젤투자부터 시작해 상장회사투자까지 하고 있었다. 재벌들의 불공정한 관행과 횡포에 의한 개미들의 피해사례에 대해서 치를 떨고 있던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참여연대의 회원이 되고 자원활동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문을 굳게 닫은 철옹성처럼 꿈쩍 않을 것만 같이 느껴졌던 한국의 재벌들에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IMF이후 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됨으로써 개방화, 투명화라는 시대적 조류도 있었지만 장하성 교수가 이끄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전방위적인 활동은 대한민국 재벌뿐만 아니라 경영계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체제로 독립적인 사외이사제가 구성되고 주주재산에 대한 재벌총수의 편법적인 세습에 쐐기를 박게 했다. 재벌 계열사끼리의 상호지급보증과 불법.편법지원을 감시하여 주주가치를 보호하기도 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증권집단소송제라는 혁혁한 공을 이끌어 냈다. 여타의 금융선진국에서도 이러한 모든 제도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린걸 감안할 때 단기간 내에 대단한 성과를 이룬 장하성 교수와 참여연대의 역할은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역사에서 실로 찬사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경제학교과서를 다시 써야 된다는 극찬의 표현을 한 몸에 받던 미국 발 신경제(New Economy)에 대한 기대감은 정보산업, 인터넷 버블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폭풍처럼 할퀴고 지나갔다.

그 후 미국식 경제체제가 엔론, 월드컴과 같은 대기업의 회계부정과 내부자 거래, 최고경영진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등으로 휘청거리는 것을 보았을 때, 미국의 월스트리트에 그 뿌리를 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와 금융체제의 수명이 길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이런 고민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의 우량기업에 대한 M&A를 하고 난 후 유상감자, 상장폐지, 유보율을 벗어난 고배당 정책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면서 기업의 알맹이만 쏙 빼먹고 회사를 떠나버리는 사태를 목격한 후 더 심각해졌다.

‘이제껏 꼬박꼬박 잘 내던 법인세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우리네 형님, 누나들의 일터는 어떡하라고?’ 답이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대안연대라는 곳에서 북유럽의 사민주의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우리나라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참여연대와는 상이한 의견차를 보이고 있었다. 재벌의 존재를 차라리 이해해주자는 대안연대의 주장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게 사실이나, 경제패러다임에 관한 우리나라만의 어떤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자는 그들의 용기는 흥미로웠다. 장하성 교수와 대안연대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기를 근 1년 여. 오늘 드디어 장하성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나의 소감은 남달랐다.

‘한국경제의 길 찾기’라는 근사한 주제를 갖고 말이다. 장하성 교수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갖고 있던 고민에 대해 풀어놓는다. 본인도 이 부분에 대해선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부 언론이나 학자들로부터 “우리나라의 국부(國富)를 외국인에게 유출하는 앞잡이 아니냐?”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밝히며 소액주주운동을 다른 무엇도 아닌 ‘경제정의’란 측면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하였다.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 소액주주운동의 성과를 평가하지 말고 ‘경제정의’가 바로잡혔을 훗날 우리나라 국민들이 얻게 될 가치를 생각해 보자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경제가 새로운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새로운 틀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져야 된다고 강조하고, 이는 곧 기존의 틀인 기득권세력의 창조적 파괴를 의미한다는 요지였다. 대안연대의 재벌활용론 내지 재벌타협론은 성공회대 신정환 교수의 글을 빌어 스웨덴의 사회적대타협을 논리적 모순이라고 일축하며, 대한민국의 신성장엔진은 다시는 재벌로 통용되는 한국 경제계의 기득권세력이 움직이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 관점에서 본 소액주주운동

강의 전반 내내 우리나라의 경제패러다임 전환을 기업지배구조(Coporate Governance) 개선에 중심을 두고 설명하는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세계 최우량 기업들의 저평가라든가, 코리아디스카운트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객관적인 자료를 들어 설명해 강의에 참가한 많은 회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경제정의’라는 화두를 위해 재벌과의 외로운 투쟁과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힘써온 장하성 교수는 고배당의 유출과 같은 현상은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며,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야말로 저평가된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치와 대한민국의 경제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여기서 얻는 부가가치야말로 우리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국부(國富)라고 역설하면서 앞으로의 소액주주운동은 일정시점 이후로는 사회책임투자(SRI)와 같은 형태를 통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강의를 마쳤다.

장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와 움직이는 행동 하나에도 소홀할 수 없었던 나는 폭풍우가 지나간 맑게 개인 푸른 하늘처럼 그간 홀로 고민해왔던 많은 궁금증들이 해소되고 있음을 느끼며 빙그레 웃을 수 있었다.

윤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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