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4월 2004-03-13   1295

[인터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청산 못한 역사가 탄핵 정국 불러와

오늘은 현재이고 어제는 과거인가. 올해는 현재이고 작년은 과거인가. 그 누가 과거와 현재를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을까. 충격과 혼란을 불러들인 탄핵안 가결에 대해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단호하게 ‘오늘의 탄핵만행이 바로 식민과 독재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현재 중앙대학교 중문과와 국어국문과 겸임교수이며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 민예총 지도위원 등을 맡고 있고,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통과시킨 주역인 임 소장을 만나 오늘의 한국역사를 진맥해본다.

시간이 지난다고 과거 되지 않아

몇 시간 전에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는 기막힌 사태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오늘의 상황이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은 일제 잔재의 유산이고 사상이다.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5.16보다도 훨씬 더 교묘하게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건이다.”

그때와 지금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예전에는 그들의 손에 총칼이 쥐어져 있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의회를 통해 국권을 찬탈한 것이다. 전국민에 대한 속임수이며, 이런 경우 선악분리가 힘들게 된다. ”

그렇다면 선악분리를 하기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식민의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식민의 역사 속에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일제부역자와 친일파 청산의 민족적 과제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오늘과 같은 일은 또 생길 것이다.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다.”

법안 누더기로 만든 이들이 국권 찬탈

그럼, 친일진상규명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지난 2일 찬성 151, 반대 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먼저 그동안 많은 반대에 부딪혀 번번히 통과되지 못했던 법이 이번에 통과된 것에 대해서 정부의 의지을 높이 평가한다.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이 거의 반세기에 걸친 반민족적 독재의 시대를 지나면서 지배세력으로 지위를 굳혔기 때문에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친일진상규명법에 대해 누가 반대했나?

“특히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과 심규철 의원을 비롯해 야당은 온갖 구실과 궤변과 억지, 아집과 트집으로 법률안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누더기 작전 등으로 시간을 끌면서 명백한 반대의사 표명 없이 슬그머니 회기를 넘기려고 했었다. 북한이 개입했다느니, 억지아닌 억지를 쓸 때면 기가 막혔다.”

친일진상규명법의 통과를 두고 기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누더기’가 되어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인가?

“이 법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 규명이기에 당연히 어떤 구분 없이 ‘행위’ 그 자체에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조사대상이 대폭 축소되었고, 조사대상자들의 이의축소 권한 등은 강화된 반면, 위원회의 조사권은 단서조항을 많이 붙여 활동위축이 되었다. 이래서 무슨 조사가 되겠는가? 또한 위원 추천권을 국회가 행사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되었다. 또한 위원들의 임기기간을 3년으로, 조사기간 또한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여 부실조사를 하게 된다. 조사를 직접 수행하는 사무국을 축소한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

“만인봉화”로 민족사의 꺼지지 않는 등불 피우자

수정된 법안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

“이 법은 말 그대로 아직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애초의 원안을 그대로 살려 다음 국회때 다시 제안할 것이며, 친일파재산환수특별법도 함께 통과시킬것이다.”

친일진상규명법의 통과는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안다. 친일인명사전 기금 모금이 11일만에 5억원 달성 신화를 이루는 등 다 죽은 친일인명사전을 네티즌들이 살렸는데 이에 대해 감회가 깊을 것 같다.

“물론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 삭감으로 정치인들의 몰역사성을 국민이 꼬집은 것이다. 5억원을 무려 3만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동참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국민의 친일역사청산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현재 모금운동은 계속 되고 있나?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만인봉화 100일대장정’캠페인에 참가할 수 있다. 한반도 지도에서 원하는 지역을 클릭하면, 그 지역의 애국선열지사들의 이름이 나온다. 100분의 독립운동활동에 대한 설명도 간략히 준비해 놨다. 원하는 이름을 클릭하면 신청하는 순서대로 봉수대가 채워지며 신독립군 회원으로 가입되게 된다.”

이렇게해서 모으는 돈은 어디에 쓰이는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은 물론이고, 역사정의실현운동을 지원하게 된다. 과거의 문제가 바로 현재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후에 무늬만 법이 아닌 제대로 된 법을 만들기 위해 친일진상규명법의 원안을 기필코 제대로 살려낼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이번 친일진상규명법의 통과로 일본에서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이를 한일관계 악화로 연결시켜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는 한일관계를 허심탄회한 우호국가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추고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밝히고 털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과거 청산을 통해 현재를 만들고 올바른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1949년 반민특위가 국가권력의 불법적인 폭력으로 해산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과오는 다시 현재의 우리들을 억누르고 있다. 밤이 되어도 삭혀지지 않는 분노를 끓어안고 국회로 모이는 사람들. 검은 하늘 아래 있는 국회의 모습은 누구 말대로 상여의 뒷모습과 비슷하게 보인다. “국회 탄핵”을 목이 쉬어라 연신 외치는 물결을 보며, 이번에는 기필코 친일파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루기를 소망한다.

홍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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