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3월 2003-02-25   2618

‘섹시한 남자와 힘센 여자는 연애 못해요?’

이나래와 박미란이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말하다


이 달에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만들어진 오락프로로 비판을 받고 있는 MBC-TV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대해 두 여자가 신나는 수다 한 판을 떨었다. 편집자주

주말 황금시간에 요즘 많은 시청자들이 괴롭다. 드라마건 쇼건 모두 짝을 못 지어 안달이다. 독신으로 즐겁게 사는 이들에게 방송은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젊고 섹시한 여자와 젊고 힘센 남자가 만나 이루는 사랑이야기는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는 걸 모르나보다. “두 여자”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한국청소년연맹에서 일하는 박미란(27세) 씨와 안양외고 2학년 이나래 양이 마주앉아 MBC-TV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박미란(이하 박) : 사람들이 왜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보는지 생각해 봐야겠죠? 이나래 씨는 왜 보죠?

이나래(이하 이) : 유달리 새로워서 보는 건 아니에요. 전에 꽃님이라는 평범한 여학생이 나왔던 프로그램 기억나세요? 당시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일반 여성들의 어떤 면을 보는지 궁금해서 보았고,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누가 누구와 연결되는지 궁금해서 보게 되죠.

: 저는, 재미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꽃미남들이 나와서 갖은 재롱을 떨어주니까 별 생각없이 주말에 보게 되더라구요. 귀여운 흥수 때문에 보는 거죠. 질질 끌려다니며 인기를 끄는 흥수를 보는 게 안타깝긴 해요.(웃음)

: <강호동의 천생연분>의 하이라이트는 신고식이에요. 여자들은 섹시한 춤, 남자들은 코믹댄스로 정리되더라구요.

: 맞아요. 여자들은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고 가슴선을 살짝 보여주면서 얇은 천 하나 걸치고 춤을 춰요. 남자연예인들에 비해 여자연예인들은 대부분 얼굴은 예쁜데 지명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나와요. <사랑의 스튜디오>하고 똑같아요. 남자 출연자들은 주로 학벌 좋고 대기업 다니는 애들인데 여자들은 “저, 이번에 4학년 됐어요”하고 말하는 예쁜 애들이잖아요.

: 유민이나 빈 같은 경우가 이 프로에서 뜬 연예인이죠.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춤으로 인기를 끌어요. 오죽하면 어떤 가수들의 경우 “이제 정말 음악활동만 할래요”하는 기사들이 나오니 기가 막히죠.

변함없이 섹시하기만 한 여성

: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 있고 남자들이 찾아가는 선택 방법을 단순히 생각하면 여자가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사실 남자는 여러 번의 선택권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여자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분위기예요. 한 표도 못 받았다고 울지를 않나.

: 남자들이 여자들이랑 짝을 이뤄 게임할 때는 어때요? 윤정수처럼 잘 생기지 않은 연예인이 열심히 하는 걸 보면 가끔 보기 좋기도 해요. 여자들 업고 몇 바퀴 돌거나 코끼리 흉내까지 내잖아요? 그럴 때 잘 생긴 남자들이 허약하게 쓰러지는 걸 보면 실망스러울 때도 있더라구요.

: 그 프로에서 여성의 섹시함말고 다른 걸 표현하는 게 있나요? 게임 자체가 여자가 가벼워야 이기는 것들뿐이죠. 과자나 빨리 따먹으면 되던가?(웃음)

: 게임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같이 노력해서 이기는 게임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상한 건 열심히 하고 튼튼한 여자들은 결국 표를 받지 못해요. 몸이 가볍고 여려보이는 여자들에게만 표가 몰려요.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남자들은 그나마 다양해졌는데.

: 그러니까 0표 됐을 땐 윤정수가 남자는 무조건 힘이라면서 붕어 엑기스 먹고, 여자들은 몸을 사리는 거예요. 이유진 씨가 나왔을 때 정말 열심히 해서 이겼잖아요? 그런데 자막은 비실비실 해 보이던 상대편 여자를 동정하는 식으로 나왔어요. 이유진 씨도 이미지 망가뜨려가며 힘쓰고 싶었겠어요?

왜 짝 못 지어 안달이야?

: 방송을 보면 왜 짝을 못 만들어 저렇게 안달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만남은 곧 결혼이라는 식의 논리를 조장할 때도 화나죠. 특히 남자가 나이가 좀 들었을 경우에는 강호동이 “저 여자가 정말 좋습니까? 만나고 싶습니까?”가 아니라 “저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 있습니까?”라고 물어요. 여자들에겐 아예 묻지도 않죠. 관심을 보이면 결혼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 정말 싫어요.

: 연령대가 다양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여자 연예인들은 나이가 매우 어려요. 가끔 채리나 같은 나이 든 연예인들이 나오지만 카메라에 잘 잡히지도 않더라구요. 여자가 연상인 커플도 많은데 이상하지 않아요?

: 그 프로에서 하는 게임이나 도를 넘는 개인기 자랑에 나이 많은 여자들이 왜 나오겠어요? 그리고 사실 능력 있는 여자들이 그런 곳에 나와 남자의 애정을 구걸하겠어요? 당연히 얼굴 예쁘지만 인기 없는 여자 연예인들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 게임을 하다가 꼭 걸고넘어지는 게 윤정수예요. 윤정수가 그 중에서 다리도 짧고 못 생겼으면서도 인기가 많은 독특한 캐릭터잖아요? 그게 오히려 인기를 끌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여자들에게는 그런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발언이 없군요.

: 거기 나오는 여자들은 다 예뻐요. 건드릴 만한 여자가 없죠. 전에 박경림 한번 나왔지만 그녀는 인기가 매우 높잖아요. 바로 퀸카가 되어 나갔어요.

: 우리 반 남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텔레비전에 나와서 섹시한 춤을 추는 여자들이 좋지만 그래도 자기 여자는 안 그러길 바란대요. 마지막 커플 선택에서 결국 얌전해 보이는 여자들이 선택되는 것도 그런 이중성 때문일까요? 텔레비전에서 여자들이 당당하게 춤추는 것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잖아요?

: 만약 여성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누가 좋을까요? 옛날 같으면 이영자 정도가 좋을 것 같은데, 지금 김원희가 있지만 강호동 같은 카리스마를 얻기는 힘들죠. 이경실이나 김미화가 진행을 한다면 아예 맞선 프로가 돼버리겠죠? 여성 연예인 층이 두텁지 못한 것도 <강호동의 천생연분>같은 프로가 반복되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가장 우스운 장면은 스포츠신문을 들고 나와 그 프로를 통해 스포츠지의 1면을 차지한 연예인들을 추켜세울 때다. 연예프로와 스포츠지가 스캔들을 주고 받는다는 막연한 시청자들의 추측을 사실이라고 방송이 입증한 셈이 되는 것. 강호동과 시청자가 하나되어 스포츠지를 비웃었지만 그 웃음의 뒤는 씁쓸하다.

결국 그다지 이름이 없는 연예인들 즉, 가수지만 콘서트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배우지만 제대로 된 연기를 해 본적이 없는 신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스포츠지를 통해 자기 이름을 알리는 것이니까. 그러나 <강호동의 천생연분>에는 그런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은 방송과 스포츠지의 공생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두 여자는 말한다. 발빠른 속보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은 현실보다 감각이 느리고 고리타분하기만 하다.

간단하게 말해 <강호동의 천생연분>은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박경림이나 윤정수는 젊고 섹시하고 예쁜 그들을 더 빛나게 하는 캐릭터일 뿐이다. 청소년들에게 열심히 해서 남자들의 사랑을 쟁취하는 오승은을 닮으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최선을 다하는 섹시한 춤이 당당하기보다는 불쌍해 보이고 눈물을 흘려 동정심을 자극하는 장면은 짜증스러울 때도 많다. 방송이 연예인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기는커녕 인기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게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섹시한 남자와 힘센 여자의 커플을 꿈꾼다면 ‘강호순의 천생연분’이라도 되어버리는 걸까? 다양한 ‘커플’들의 모습은 방송에는 어울리지 않는가? 개인기 없어도 당당한 게 개인기라고 우기는 뻔뻔한 연예인은 없을까? 방송은 시청자들의 즐거운 상상을 말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이 달의 나쁜 방송’으로 선정한 바 있다. 진행자 강호동의 출연자에 대한 비하발언이나 출연자의 인권을 경시하는 여러 행동들 때문이다. 전혀 명랑하지 않는 ‘명랑운동회’도 도마에 올랐다.

물론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진지한 눈빛으로 “당신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생관이 뭐죠?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당신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입니까?”하는 질문을 주고받는 것도 어울리지 않긴 하다. 두 여자가 주문하는 것은 그런 도덕주의에 젖은 방송이 아니다. 제발 “사랑의 스튜디오” 재방송은 그만하고 21세기에 걸맞는 제대로 된 사랑프로를 만들라는 것이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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