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5월 2003-05-01   4279

강혜란과 차은주가 “아침마당” 이상벽을 말하다

희생을 담보로 행복가정 이룩하세?


KBS-TV “아침마당”이 사회자 이상벽 씨의 발언으로 주부들의 쓴소리를 듣고 있다. 이 땅의 며느리이자 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성들이 만나 이에 대한 속시원한 심경을 털어놨다. 편집자주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주던 방송인 이상벽 씨는 KBS TV <아침마당>에서 연일 시청자들에게 실망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14일 방송된 ‘긴급 가족회의- 앞 못보는 어머니 누가 모셔야 하나요?’에서 출연자로 나온 며느리에게 “말하는 자세부터 잘못됐다. 어머니에게 못한 건 사실 아니냐. 자꾸 토를 단다니까!”라며 짜증스럽게 반응해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이것은 곪아있던 문제들이 터진 사건이라 볼 수 있다.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한 이상벽 씨의 진행태도는 그동안 많은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사무국장과 성교육 강사 차은주 씨가 만나 <아침마당>을 여성의 눈으로 분석했다.

강혜란(이하 강) :<아침마당>이 가족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긍정적 기능은 인정할만해요. 시대가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추이를 따라가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죠. 그래서 <아침마당>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은 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토론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차은주(이하 차) :<아침마당> 이전의 아침프로그램은 연예인 사생활 중심의 토크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보통사람들이 등장하는 <아침마당>이 나와 매우 신선했어요. 특히 주부나 시어머니가 나와서 말하는 ‘1분 스피치’ 기억나세요? 참 재미있었죠. 당시에는 <아침마당>이 끝나야 주부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웃음). 이야기 소재를 주니까. 그런데 요즘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특히 사회자의 역할이 중요한 데 시각이 너무 가부장적으로 한정되어 있어요.

강 : 아내가 식당 일을 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남편이 30년 동안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면서 폭력까지 행사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었죠.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참고 살라고만 말하죠. 그것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저런 집도 있는데 나도 참고 살아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은근히 강요받아요. 그래서 제작진은 이혼율을 감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차 : 저희 시어머니는 금요일 아침이면 꼭 전화를 하세요. “지금 방송 나온다, 꼭 봐라”고 하면서요. 차마 드러내고 하지 못하는 말을 방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고부간에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이 때 프로그램을 통해 시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모델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죠. 특히 고부간의 문제에서 이상벽 씨는 항상 시어머니의 편만 들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낀 이야기를 해요. 그렇지만 이상벽 씨의 삶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죠. 세상은 변했어요.

강 : 함께 진행하는 이금희 씨의 역할에 관해서도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이금희 씨는 이상벽 씨가 지나치게 한쪽 편을 들 경우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이상벽 씨는 “이러니 결혼을 못 하는 거야”라는 말로 이금희 씨, 즉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을 비하합니다. 자신은 완성된 가족에 속한 성숙한 인간이고 이금희 씨는 철이 없는 노처녀라는 거지요. 이러한 편견에 두 사회자의 큰 연령의 차이가 더해져 평등한 진행이 되기 어려운 기본적인 요소가 되고 있지요.

차 : 그 반대의 경우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성진행자가 나이가 많고 남성진행자가 어리다고 해도 자연스러운 진행이 충분히 나올 수 있어요. 고정관념에 의해 사회자를 정하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도 대부분 여성이니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가족은 변했다

차 :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다양성을 방송이 인정해야 해요. 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출현하고 있지만, 방송은 양친부모가 있는 가족이나 대가족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족이 행복한 가정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지요.

강 : 남성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고 무조건적인 화해를 요구하죠. 그 화해가 누구를 위한 화해인지, 따져봐야 할 때라고 봅니다.

차 : 화해를 요청하는 방법의 문제도 있어요. (이상벽 씨 목소리를 흉내내며) “손잡아 주세요”라고 대화가 충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악수를 시켜요. “너희는 꼭 살아야 한다. 반드시 (이혼하지 말고) 꼭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죠. 유도질문을 하는 것도 사회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출연자들이 방송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말이 조리 있지 못하잖아요? 그 때마다 이상벽 씨가 중간정리를 해주는 데 출연자가 의도했던 바를 짚어주지 않고 이상벽 씨의 시각으로 해석할 때가 많아요. 그러고 나서 주부들 만나면 다들 분개합니다(웃음).

강 : 특히 고부간의 문제에서는 아들의 역할에 대한 조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부족한 지점입니다. 아들들은 아직도 어머니와 아내가 싸우면 중간에서 먼산만 쳐다보는 존재죠. 방송이 그 역할에 대한 인식을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침마당>을 보고 있으면 미혼여성이 늘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여요.

차 : 맞아요. 강의를 나가보면 요즘 젊은 여성들은 결혼제도 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신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들은 다양한 가족제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이런 방송을 보면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강 : 제작진의 변화가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 인권문제에 예민한 다양한 패널이 나와서 조언을 해야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지고 다양한 가족들이 볼 수 있어요. 출연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말해볼까요. 주부와 직업여성을 대하는 태도에도 차이가 있어요. 강금실 장관 나왔을 때 보셨어요? 어찌나 예의바른지. 깜짝 놀랐어요.

차 : <아침마당>은 모범이 되는 주부들을 보여주곤 하는 데 그것도 아주 스트레스죠. 서정희식(돈도 잘벌고 살림도 잘하는) 수퍼며느리를 등장시키는데 기가 막혀요. 직장일 하면서 도우미 쓰는 주부는 한 명도 안나와요.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강 : 지난해에 개그맨 백제현 씨 가족들이 나왔을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요. 백제현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월급을 자신이 관리하고 그 중에서 70만 원 정도 떼어서 며느리를 준다고 해요. 그리고 열쇠를 따로 만들어 집을 수시로 방문한다는 얘기를 방송에서 했어요. 얼마나 며느리가 가시방석이겠어요? 70만 원으로 살림하기도 힘들텐데 언제나 가시방석이라면. 더 황당했던 것은 그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며 백제현 씨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거예요. “원래 좋아하는 게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내도 좋아한다”라니요. 그런 사람은 없죠. 보다못해 다른 패널이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진정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냐고 질문을 했죠.

차 :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의 그런 발언들과 그러한 가족관계를 방송에서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것은 그러한 삶의 방식이 사회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묵인된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강 : <아침마당> 전반에서 시어머니의 모델이 되는 전원주 씨를 보고있으면 자신이 얼마나 며느리를 꽉 잡고 있는지를 시청자들에게 제시하는 것 같아요. 둘째 며느리가 나왔을 때는 얼굴이 못 생겨서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더라구요. 우리 시대 어머니들이 보여주는 아들 가진 유세, 아시죠? 그런 전통적인 모델상의 시어머니만 중점적으로 부각이 됩니다.

차 : 이상벽 씨는 자신의 세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데, 이상벽 씨 나이의 남성들이 다 똑같지는 않다고 봐요. 그들도 자식세대를 겪으며 자연스러운 변화를 거쳤어요. 과거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무조건 강요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죠. 이상벽 씨의 진행태도의 문제는 자신의 생각이 50∼60대 남성들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강 : <아침마당>을 통해 시어머니 세대들을 이해할 필요는 있어요. 며느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들이 어머니 세대를 괴롭히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단지 평등하고 자연스러운 가족관계를 만들자고 요구하는 거라고 봐요.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화해고 가족의 행복아닐까요?

차 : 아마도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률입니다. 아마 이상벽 씨가 문제를 계속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자를 유지하는 것은 이상벽 씨가 갖고 있는 고정시청자들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진행을 해도 시청률은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서 우리 시대의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들, 딸, 며느리, 장인의 관계에 대한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 진행하면 주부들이 즐겁게 TV앞에 모일 수 있게 하는.

강 : 그렇죠. 현재의 분위기는 며느리들이 시부모님 앞에서 애교떨고, 뒤에서는 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요. 전반적인 제작환경에 여성이 적다는 게 이런 프로가 나오게 되는 배경인 것 같아요. 편성이나 기획을 결정하는 윗 단위에 갈수록 여성의 숫자는 현저하게 줄어들죠.

과거 며느리들은 남의 집 상가에 가서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슬프게 곡을 했다. 이는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도 있지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쌓여있는 한과 스트레스를 눈물로 날려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눈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다듬이질 소리만 들어도 그 날 며느리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있다. 그처럼 그동안 며느리들은 자신의 심정을 말할 곳도 감정을 풀어놓을 공간도 없었다.

현재는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아침마당>이다. 저녁마당이 아닌 이상 이 프로는 오전 시간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주부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 어릴 때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울고, 평범한 사람들의 고부갈등이나 부부관계를 엿보며 자신만의 고민의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러나 <아침마당>은 점점 주부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는커녕 아침부터 속을 터지게 만들고 있다.

가족 속에는 수많은 관계가 포함되어 있고 그 누구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두가 노력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당>은 그 열쇠를 여성에게만 넘긴다. 며느리가 최선을 다하면 무엇이든 해결된다고 유도해 시청자들을 자기검열에 빠지게 한다. 더 위험한 것은 <아침마당> 자체가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와 그대로 닮아있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이상벽 씨는 방송의 중심이 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간다. 이금희 씨도 출연자도 <아침마당>의 주체가 되어 발언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마치 가족이 아버지의 의견대로 일사분란하게 살아가고 그것이 갈등에 부딪칠 때 여성이 그 책임을 떠안는 것처럼 말이다. 희생을 담보로 행복가정 이룩하세? 방송은 현모양처를 길러내는 봉건시대의 학교가 아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방송에 문제의식을 가진 많은 주부들이 매체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그것이 조금씩 반영되고 있는 점이다. 아울러 여성계가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여성의 방송세력화인 것 같다. 주요 방송인의 대부분은 남성이거나 남성화 된 여성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남성의 눈으로 만든 방송이 제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세력화 말고도 할 일이 많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