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6월 2003-06-01   2715

올 여름엔 남자도 시원한 치마를!

더운 여름날 가장 짜증나는 복장은 몸에 꼭 끼는 청바지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 더욱 몸에 달라붙어 불쾌지수를 높인다. 그런 날 여성들이 입는 헐렁한 치마는 여름을 한결 가뿐하게 만든다. 다리 아래로 솔솔 부는 바람도 시원하고 엉덩이를 조이지 않는 복장은 오래 앉아 있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추운 겨울날 여학생에게 강요하는 교복치마는 구속이지만 더운 여름날 입는 치마는 자유다. 이런 즐거움을 여성만 누린다면 어딘지 불공평하지 않는가?

올 여름엔 남자도 시원한 치마를 입고 다녀보자! 어중간한 길이의 반바지는 별 효험이 없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눈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치마보다 반바지를 입은 채 다리를 벌리고 앉은 남자들이니까.

우리 몸에 걸치는 모든 것들은 이미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사라졌다. 사각팬티는 여성들에게도 유행이며 남성전용 화장품들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유니섹스 바람을 점친 기사들은 너무 오래전 얘기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의 남성도 군복바지에 짧은 여성을 한 여성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른 성의 특징을 따라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고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또 하나의 심리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아직 남성의 치마는 금기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혼수를 장만하는 신혼부부가 커플 앞치마와 함께 커플치마를 구입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잔잔한 꽃무늬 치마를 입고 소개팅에 나타난 남성을 보면 아마 여성들은 ‘센스 있는 남자’라는 표현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 복부비만으로 고민하는 남성들에겐 제일 먼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테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허리띠가 보이지 않아 민망한 경험은 없었던가. 치마는 신체의 약점을 커버하기 쉬울 때가 많다. O자형으로 휜 다리 때문에 여름에도 긴 바지를 고집했던 남성들은 자신감을 찾아라. 더위도 잊고 개성 있는 남자라는 칭찬도 듣고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짧은 치마 긴 치마에 두루 도전해본 남성들은 여성이 타이트 스커트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불편함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름치마에 맛을 들인 남성들이 사시사철 치마를 고집할 지도 모른다. 남성용 스타킹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헬스장의 풍경도 변할 테다. 울퉁불퉁한 근육보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다리가 더 아름답다.

의복의 역사에는 사회의 변화가 담겨있다. 전쟁 직후에는 밀리터리룩이 유행하기도 했고 그 유행이 한 차례 지나고 나면 그에 대한 반발로 화려한 드레스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반대로 옷이 단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도 있다. 남성도 치마를 입으면 여성처럼 앉을 때 다리를 오므리고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강요하게 될까? 혹시 누가 더 무거운 치마를 입을 수 있냐는 것으로 남자들 사이에서 경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남성들도 여성들처럼 시커멓게 자란 다리털을 밀어낼까?

이처럼 남녀가 함께 치마를 입는 모습은 눈만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변화로 마음까지 즐겁게 해주는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 마음부터 시원하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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