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2월 2002-12-01   15573

3인이 지켜본 사형수의 마지막 24시간

‘사형이 아니라 살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사형제도 폐지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사형제도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생성되고 지속돼온 것을 생각한다면 ‘폐지’ 논쟁이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30일 여야 의원 155명은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에는 사형집행이 한 건도 없었다. 가장 최근에 사형이 집행됐던 것은 97년 12월 말. 집행장은 서울구치소, 대구교도소, 광주교도소 세 곳이었다. 당시 23명의 미결수들이 전국 동시다발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때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집행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증언자들의 얘기를 중심으로 현장을 재구성해본다.

죄와 벌

97년 12월 29일 저녁, 명동성당.

이영우 신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서울구치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내일 김정수 신부님이 급하게 치러야 할 일이 있으니 아침 일찍 구치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영우 신부는 천주교 교정사목 위원장이었던 김정수 신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사형집행을 알리는 전화임을 그들은 안다. 잠을 청할 수 없는 것은 박미희 씨(가명·50세)도 마찬가지. 9년 전부터 소년원에 나가 봉사하기 시작해 최근엔 사형수성당에서 자원봉사하는 그에게도 구치소로부터 전갈이 왔다. “교무계로 나와달라.”

97년 12월 30일 아침, 서울구치소.

어제처럼 오늘도 새벽 명상에 잠겨 있던 진관 스님은 왠지 모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진관 스님은 96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10년형을 구형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1년 이상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숨을 내뱉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정적이 감돌았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자, 진관 스님의 방 앞에 소지가 선다. 작고 네모난 구멍으로 밥그릇을 내미는 소년수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식사 후, 조용하던 구치소 안에 소리가 났다. 같은 동 사형수가 있던 방문이 철커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몇 분 후 복도 끝을 지키고 있던 교도관의 음성이 들렸다. “자네, 그 동안 수고했네.”

오전 10시 사형 시간.

밖에서 보지 못하도록 높고 흰 담벽에 에워싸여 있는 하얀색 건물, 이곳이 처형장이다. 정수범(가명·당시 27세)은 형장 안으로 들어왔다. 구치소장이 그의 수번과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을 확인했다. 정수범은 예, 라고 떨리는 음성으로 답한다. 마지막까지 의연하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왔다.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오늘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함을 알립니다.”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에게 유예된 시간이란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정도였다. 짧은 시간 동안, 그의 눈앞에 가족들과 구치소에서 같이 지냈던 사람들이 스친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그 사람도. 새해를 하루 남겨둔 겨울날.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너무 더워 잠이 오지 않던 여름날 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죽으면 내내 잠들 텐데, 덜 자면 어떠냐?”며 무더위에 잠을 설치는 수인들을 위해 밤새 부채질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그에겐 시간이 없다. 시간이 정지된 사형장에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불의가 세상을 덮치고, 불신이 만연해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들 가는가. 어둠이 쌓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그의 목소리는 흰 건물 안을 구슬프게 울렸다. 노래는 끝났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집행관이 머리를 들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집행!”

97년 12월 31일 오전 11시, 서울구치소 뒷문.

구치소 안에서 24시간 보관되었던 시체들이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었다. 성직자들과 오랫동안 사형수 봉사를 해오던 자원봉사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수범의 관도 나왔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정수범의 관은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죄를 참회한다”며 안구와 사체기증을 유언으로 남겼기 때문. 정수범을 포함해 사체를 기증한 사형수는 세 명이었다.

그 후, 사형집행장 단상에서 집례를 보았던 김정수 신부는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김정수 신부뿐 아니라 사형집행인이었던 교도소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생명을 빼앗는 방법으로 단죄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분명 견디기 힘든 일이리라. 그가 마땅히 죽을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현재 천주교 교정사목 위원장인 이영우 신부는 “나 또한 집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해야겠지만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당시 직간접적으로 사형 집행을 목도했던 이들은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지난 10월 6일 진관 스님은 사형제도 폐지를 요구하며 여의도까지 행진한 뒤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이영우 신부는 또한 “사형제도는 법의 이름으로 죄인을 영원히 이 땅에서 밀어내는 것”이라며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적 살인과 제도적 살인

법조계에서도 폐지냐 존치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형제도를 유지함으로써 잔인하고 포악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범죄예방설과 국민정서상 타인의 목숨을 잔인하게 살해했을 때 그 대가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응보사상에 기반한 논리를 펴고 있다. 대법원과 법무부 또한 “우리나라 실정과 국민의 도덕적 감정을 고려하여… 또사형이 가지는 강한 위하력에 의한 범죄방지효과라는 관점에서 존치론이 압도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존치론자들의 ‘범죄예방설’과 ‘시기상조론’, ‘국민정서론’을 폐지론자들은 조목조목 비판한다. 비판의 요점을 살펴보면 첫째, 전 세계 108개 국에서 현실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후에도 반인륜적 범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통계치를 제시한다. 이로써 범죄예방설은 허구로 드러난 것이므로 사형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세계 각국의 동향은 사실상 ‘폐지’ 쪽으로 기울어졌다. 폐지국 수가 존치국 수를 능가한 상태이기도 하다. 폐지론자들의 논리는 인간의 존엄성, 재판의 오판가능성, 범죄예방효과의 허구성, 사형제도의 폐해 등을 주요 골자로 들고 있다.

또한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들은 존치론자들의 ‘국민정서상 시기상조’라는 입장에 대해 이 문제는 국민의 여론을 액면 그대로 존중한 것이 아니라 법률가 및 입법자들의 의지 및 정치적 결단에 의해이뤄진 것이라며 “법률가 및 입법가가 자기 임무를 방기하고 그것을 대중의 탓으로 전가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또한 이들은 미국 델라웨어주에서는 사형폐지 후 2년 만에 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는데, 오히려 그 뒤 살인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존치론자들의 범죄예방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편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범죄 피해자들의 인권과 요구사항에 주목해야 함을 주장한다. 즉 피해자 가족의 경우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형이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적인 기제인가에 대해선 재론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이영우 신부는 “가해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종수단은 아니”라며 “사형은 앞으로 양자가 화해할 수 있는 계기와 가해자가 진정으로 죄를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희 씨는 그 자신이 피해자 가족이다. 사건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0대였던 조카가 유괴, 살해되는 사건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10년이 넘도록 교도소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아직 남편과 가족들에게 교도소에서 봉사활동하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가족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 그러나 그는 “국가가 관용과 포용을 발휘해야 하며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그 상처를 치료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사형폐지론을 주장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들이 낸 사형폐지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중이며,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허일태 동아대 법과대학 교수는 “법사위원 6명 대부분이 검사출신들로서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반대 내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국가에 의한 제도적 살인인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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