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6월 2000-06-01   3507

힘없는 운송기사 울리는 아주레미콘

강요된 지입제 현대판 노비계약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아주레미콘(사장 신경호)은 아주산업의 계열사로 1960년 벽돌제조 판매회사로 시작했다. 아주산업은 서교호텔 등 17개 계열사를 소유한 100대 그룹에 포함된다. 1983년부터 레미콘 제조 판매를 주력 업종으로 삼아 현재 아주레미콘은 레미콘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성장했다.

수원, 구로, 인천 등 6곳에 시멘트 배합공장을 보유한 아주레미콘의 레미콘 보유 대수만도 250여 대. 이 회사에 소속된 기사 수만도 300여 명이다.

지입제도 도입으로 노조 무력화

레미콘 업계에선 굴지의 기업으로 꼽히는 아주레미콘의 파행적인 노사관계는 지난 87년 노조설립에 대한 사측의 대응으로부터 시작됐다. 전국을 휩쓴 민주화의 물결은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노조가 결성됐고, 이에 대해 회사측은 운전기사들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고, 저임금 구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노무 관리방안을 도입했다.

각 공장별로, 운전기사 개인에게 레미콘 차량을 불하해 주고, 개별적으로 운반 도급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노무 관리방법은 이후 타업계에도 확산되어 레미콘 운전기사들의 지위 하락에 일조하였으며 현재는 지입제도가 차량을 이용한 사업장 상당부분에 도입되어 있다. 당시 운전기사들은 이 지입차주로의 전환이 노동탄압이라 판단하고 강경하게 저항하였으나 회사측이 불하를 받지 않는 운전기사는 나가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하나씩 굴복하여 개별적으로 회사와 레미콘 매매계약과 운반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우선 차량의 매매계약 자체부터 운전기사에게 턱없이 불리했다. 이때 불하받은 중고차량의 매매가격은 시장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더욱이 1995년경부터는 시중은행보다 훨씬 높은 이율의 이자를 할부금으로 부과하였다. 다른 레미콘 회사의 경우엔 할부금에 대해 이자를 가산하지 않고 있는 반면, 이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도 훨씬 낮은 운반단가를 책정하였으며(표 참조), 96년 이후부터 한 차례도 운반단가를 인상해 주지 않았다. IMF가 닥치자 유류 인상분, 차량 유지비 인상분, 보험료 인상분, 제세공과금 인상분을 100% 운전기사들에게 전가시켰다. 하지만 운전기사들은 회사측의 이같은 행태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입제도가 이들에게 재갈을 물렸기 때문이다.

아주레미콘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무더기로 시정명령을 받을 정도의 몰상식한 계약을 강요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약서 10조의 내용은 ‘을(운송기사)은 갑(회사)이 허용하지 않는 단체구성, 집단행위, 노동쟁의와 유사한 불법쟁의, 갑의 경영질서 파괴행위, 레미콘 운반도급 업무지시 거부 등을 선동하거나 이에 동참하여서는 아니된다’이다. 이 조항은 헌법 제21조 제1항에 정하여진 ‘결사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한 것이다. 11조 ‘을은 본계약의 유효기간 내에 갑 이외의 제3자와 본계약과 유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 그러나 갑과 을 사이의 계약관계는 고용관계가 아닌 도급관계로서 위 조항은 ‘고객이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조항’에 해당하여 약관법 제11조 제3호에 의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 계약서 제16조 제3항은 ‘을이 본계약을 위반 또는 이행치 않아 갑이 입은 손해배상금의 산정은 갑이 계산하여 산정한 금액으로 갑에게 배상하여야 하며 이에 대하여 을은 하등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손해배상의 범위는 당사자 중 일방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계약서 제17조 제1항은 ‘을이 본계약을 위반하여 본계약이 중도에 해지되거나 을이 중도에 본계약을 해지할 경우에는 위약금으로 일금 1,000만원정을 제16조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과 별도로 갑에게 배상한다’, 제19조 제7항은 ‘제6항의 규정에 의해 본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을은 갑에 대하여 본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한편 제19조 제6항에서는 ‘갑은 경기가 침체되고 레미콘의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여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하였을 때에는 본계약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이라도 본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이때에 갑은 을에게 30일 전에 해지통지함으로써 본계약은 해지된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을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본계약의 중도해지를 원할 경우에도 갑의 동의 없이는 해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갑이 을의 잘못이 아닌 외부적인 사정에 의하여 본계약을 중도해지하는 경우에 아무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사업자인 갑이 부담하여야 할 위험을 운송기사들에게 이전시키는 조항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약관법 제7조 제2호).

또한 계약서 제19조는 갑에게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권을 부여할 뿐 을에게는 전혀 해지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약관법 제9조 제1호는 법률의 규정에 의한 고객의 해지권을 배제하거나 그 행사를 제한하는 조항을 무효로 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계약에, 99년엔 유류비 인상분이라도 올려달라고 회사측에 요구한 운송기사 대표 4명을 계약 해지했고, 올해 운반단가 인상요구에 회사측은 인상안을 거부했다. 또 120명의 운전기사들이 참여연대 김칠준 변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아주레미콘에 항의하는 내용의 스티커를 차량에 부착하였다는 이유로 120명 운전기사들을 일제히 계약 해지해 버렸다.

일방적으로 120여 명 운전기사 계약해지

현재 120명의 운송기사들은 운송기사 협의회를 조직하고 그 가족들과 함께 매일 집회를 개최하며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회사는 기사들과의 대화와 중재를 위한 참여연대의 면담요청도 ‘상관하지 말라’는 식으로 거부하고 있다.

또한 기업의 부도덕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불량 레미콘 사용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에는 회사가 시간초과나 함량부족으로 반품된 레미콘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지하철 공사장이나 학교, 아파트 신축공사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제보도 들어오고 있다. 그 제보가 사실이라면 레미콘 업계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실공사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이다. 사실, 지입차주 제도로 인한 노동관계법의 미보호와 단결권의 소멸은 지입차주에 대한 부당한 처우로 이어지고 있고, 레미콘 업계의 불법행위로도 연결되고 있다. 현장에서 레미콘 회사의 불법행위를 잘 알고 있을 운송기사들이, 그것에 항의하고 개선하고 싶다 해도 회사의 일방적인 강요와 계약해지 협박에 대항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아주레미콘 사태는 요즘에 전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의 일면과 ‘정상적인 고용계약이 어떻게 자본가측의 전략으로 비정규직으로, 또는 허울만 좋은 자유계약직으로 전락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삶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의 부실시공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지입제도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고 그 시금석으로 아주레미콘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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