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1월 2000-11-01   4054

레즈비언들의 저녁식사

3%의 사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경우 총 인구 중 2∼3% 가량을 각각 게이(남성 동성애자) 혹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인구로 규정하고, 소수자로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동성애는커녕 일반적 성 지식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터부시하던 한국사회는 최근 홍석천 씨의 커밍 아웃을 계기로 동성애 문제 등 성 정체성 일반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엔 게이(남성 동성애자)뿐 아니라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sexual), 드랙 퀸(drag queen 여장 남자), 드랙 킹(drag king 남장 여자) 등 성적 소수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논의는 대학가를 비롯한 일부 관심계층에서 이뤄질 뿐 사회적 인식의 저변 확대는 요원한 현실이다.

지난 10월 6일 『중앙일보』는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동성애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였다. 이 결과 33.7%가 동성애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답했고, 나머지 응답자는 ‘잘못된 행위’라는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응답자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인권침해를 받고 있고(77.5%),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며(84.6%), 직업선택에 있어서도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82.99%)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작 동성애자들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어떤 코드로 읽고 있을까? 게이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전 회장 천정남 씨의 말을 들어보자.

“늦은감이 있지만, 그간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숨기려 하고, 드러내기 꺼려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홍석천 씨의 커밍 아웃을 계기로 동성애가 공론화되고 있으니 반길 만한 일이죠.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긴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봐요. 이러다 보면 동성애자 인권이 더욱 향상될 것이고, 실제 인권법에서도 성적 소수자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레즈비언 성폭행, 그리고 레즈비언 스토킹

그의 말처럼 ‘변태’ 혹은 ‘정신이상자’로 취급되던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은 수준이랄 수 있다. 특히 ‘동성애자=게이’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는 이들도 적잖다. 실제 동성간 친밀도는 남성보다 여성이 일반적으로 높다. 따라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게이보다 레즈비언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레즈비언 잡지 『버디』 편집장 한채윤 씨는 추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고충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은 여성에다 동성애자라는 이중억압을 당하는 탓에 개인적인 피해가 아무리 커도 아예 존재 자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단다. 따라서 최근 레즈비언 인권단체 ‘끼리끼리’는 레즈비언 간 성폭행 문제, 레즈비언 스토킹 등에 주목해 활동하고 있다. 한채윤 씨의 말을 들어보자.

“성폭행이란 원래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억누르는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레즈비언 간에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죠. 이를테면, 어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스토킹 하다 안 만나주면 ‘당신이 레즈비언이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든가, 아니면 매 맞는 아내처럼 폭행을 당하는 레즈비언도 있지요. 일반적으로는 경찰에 신고하지 왜 그렇게 당하고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경찰에 가는 순간 자신이 레즈비언이란 게 알려지고, 그 후엔 더 많은 사회적 피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아예 폭력을 감수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제도권에서의 장벽은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석천 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여전히 그는 방송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고, 사실상 동성애는 이성애자들의 호기심거리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실제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은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는가. 신촌에 위치한 한 레즈비언 전용카페에서 두 여성을 만났다. 『버디』 한채윤 편집장과 온라인에서 여성 퀴어 공동체를 운영하는 『니아까』의 홍난영 씨다.

퇴근 무렵 저녁시간에 떡볶이와 오렌지소주를 시켜놓고 둘러앉았다. 이런저런 수다 끝에 한채윤 씨는 그동안 우리가 교육받아온 그릇된 성 지식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동성 간의 섹스나 스킨십은 문제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동성애는 나쁜 거야, 하면 안돼! 하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애자와 달리 동성애자들은 아무리 이성을 사랑하려해도 동성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연스럽지 않거든요. 이런 점을 인정해주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시민사회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물다섯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았다는 한채윤 씨는 이성애자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동성애자임이 드러나는 순간 영원한 이단아로 전락해버리는 게 못마땅해 96년부터 본격적인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시작했단다.

“저는 3년 전 여자친구와 결혼해 잘 살고 있어요. 그러나 혼인신고는 물론 아직 부모님께 인사도 못 시켰어요. 이성애자들은 자연스레 할 수 있는 행동이 우리에겐 다 차단되죠. 법률적으로도 보호 못 받아요. 결혼했지만 회사에서 가족수당 같은 것도 못 받고, 가족구성이 안 되니까 의료보험, 국민연금… 다 대상이 안 되죠. 개인적으로는 노처녀가 왜 시집도 안 가고, 맨 여자들만 만나고 다니냐고 구박받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내 사랑을 남들에게 말할 수 없을까, 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까…. 정말 서글퍼져요. 아마 이성애자들은 잘 모를 거예요.”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불편이라고 호소하는 홍난영 씨는, 홍석천 씨가 돈 벌려고, 인기 때문에 커밍 아웃 한 거라고 뭇매를 맞을 때마다 속이 터진다고 했다. 늘 동성애자 아닌 척, 남자도 좋아하는 척, 결혼도 해야 하는 척…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면서 사는 고달픔을 이성애자들은 모를 거라는 게 그의 호소다. 그럴 때면 ‘외국으로 가서 확 결혼하고 살아버려?’ 하는 유혹이 들기도 한다고. 홍난영 씨는 지난 97년 가족들에게 커밍 아웃을 했단다. 약 4개월간의 가출 후에야 인정받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늘 “네가 동성애 하는 건 좋은데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아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건 사실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집에 늦게 들어올 때는 막 혼내다가, 술 마시면 ‘늦게 다니는 건 좋은데 술은 먹지 마라’, 그러다 담배를 피우면 ‘술 마시는 건 좋은데 담배는 피우지 마라’. 동성애도 그런 연장선에서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프랑스 PACS법 한국에서도 만들자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가족에게 커밍 아웃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혹시 가족들이 가정에서 잘못 길러져서 동성애자가 된 게 아닐까 자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오해하고, 쓰러지고… 그런 상황이 싫어 커밍 아웃 못하는 사람이 사실은 많다고.

성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차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마당에 이제 그런 차별은 없어져야 인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 그들은 동성애자 인권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차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홍석천 씨의 경우처럼 부당해고에 대한 고용안정과 혐오범죄로 낙인찍어 성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일이 생길 때의 대비책 마련 등이 그것이다.

프랑스엔 PACS법이 있단다. 일종의 시민연대협약 같은 건데, 이는 법적으로 동거인에게 부부와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로서 한 집에 같이 사는 동거인에게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등 동성애자에게 법적 혜택을 주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한채윤 씨의 입장이다.

“이성애자가 독점하는 세상에서는 미혼모나 동성애자, 결손가정 등에게 똑같은 법적 혜택이 주어지지 않아요. 특히 한국처럼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는 구조에서는 그런 문제가 더욱 심하죠. 저희가 동성애 인권운동을 하는 이유도 이성애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제동을 걸고, 성적 소수자인 우리들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한채윤 씨는 동성애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그 다음에는 ‘양성애’ 문제가 사회를 뒤흔들 거라고 예상했다. 지금 한국사회엔 레즈비언 전용 카페가 서울 4군데, 대구 1군데 있고, 레즈비언들만의 연극패 ‘연극사랑’, 풍물패가 활동하는 등 퀴어 공동체 안에 또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그들 나름대로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좋지만 우리 사회의 성적 소수자들이 더 이상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떠돌 게 아니라 자연스레 한데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그것은 섣부른 꿈일까.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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