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4월 2000-04-01   2332

피에트로 검사와 언론의 반부패연대

시민사회와 언론계가 연대해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정치를 완전히 청산했다는 얘기는 한국에서는 믿기 힘든 유토피아인 것처럼 보인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대상자 명단을 발표했음에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및 민주국민당이 거의 외면했고, 자민련은 낙천대상자를 100% 공천한 현실을 보면 개혁은 요원한 신기루가 아닌가 싶다. 정경유착, 보스일인정당, 지역주의가 미로처럼 얽힌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만이 의롭고도 고독하게 투쟁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런데 한국언론들은 시민사회의 개혁투쟁 보도에 인색하고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에 대한 보도자세가 너무나 소극적인 데다 자민련의 ‘음모론’을 대서특필함으로써 4월 총선의 방향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론개혁은 2000년의 중심화두이며 절실하고도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김대중정부 출범때부터 언론개혁 논의가 무성했지만, 오늘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언론개혁은 정치개혁과 맞물린 지난한 과제이다.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외쳤던 김대중정부에게 국민이 기대한 것은 썩은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개혁해 국민 모두가 행복감을 체감하는 민주적 시민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벌과 금융기관의 부채를 공적자금으로 갚아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빙자한 정리해고를 법제화함으로써 실업자를 양산했으며 중산층 붕괴에 의한 빈부격차의 확대와 빈민 1,000만 명을 만들었다. 한국사회는 부자 20%와 서민 80%의 불균형사회로 급속히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천민자본주의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데, 20%의 특권층 대변지만 난무하고 80%의 대중의 의사를 반영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언론계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시민사회와 언론이 손잡고 부패정치 일소한 이탈리아

시민사회와 언론이 공조해 부패구조를 혁파한 사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20세기말 이탈리아는 사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이 공조해 부패정치를 몰아내는 데 완전히 성공한 모범사례를 보였다. 서유럽 사람들은 ‘검은 손들을 깨끗한 손들이 몰아낸’ 표본이라 했지만, 한국언론에게는 꿈같은 얘기가 아닌가 싶다. 밀라노법원의 디 피에트로 검사가 주도한 이탈리아의 썩은 정치를 혁파하는 작업을 ‘깨끗한 손’이라고 불렀다. 1992년 2월부터 2년간 ‘깨끗한 손’의 판·검사들은 40년 장기집권한 기민당과 사회당 연정을 부패사정을 통해 붕괴시켰다.

한스 피터 크리시 교수는 『서구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정치인, 대기업 총수와 임원, 은행장과 임원, 고위관료와 지방단체장 3,000여 명이 체포되거나 수사를 받았다. 국회의원의 33%가 형사 소추됐고, 내각이 총사직하고 국회가 해산됐으며 헌법을 개정해 부패공화국을 몰락시키고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집권 기민당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당을 자진 해산했다. 사회당수인 크락시 전 총리는 튀니지에 망명해 객지에서 병사했으며 페루치그룹 가르디니 회장 등 18명이 자살했다. 디 피에트로 검사 자신이 ‘사법혁명’이라고 부른 ‘깨끗한 손’의 부패사정은 언론의 연대가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계와 금융 및 재계의 사정중단 압력은 대단히 거센 것이었다. 시민사회가 ‘깨끗한 손’ 지지시위를 벌여 압력에 대한 방패가 됐으나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언론이 가세함으로써 이른바 특권 기득권세력의 압력을 차단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처음에 언론은 특종경쟁 때문에 ‘깨끗한 손’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특권층의 모략과 역선전이 시작되자 언론은 한때 주춤거렸다. 이 때 최대의 지성지이며 중립지인 『코리에 데라 세라가』(발행부수 69만 부)가 동업 언론사에 공동취재를 위한 풀제를 제의했다. 중도좌파노선의 『레퓨블리카』(64만 부)와 우파지 『라 스탐파』(40만 부) 지식인 중심 좌파지 『일 마니페스토』(10만 부) 등이 풀제에 가담했다. 좌우파 언론들이 이념을 초월해 보도를 위한 공동전선을 형성함으로써 ‘깨끗한 손’의 부패사정의 정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특히 언론들은 ‘깨끗한 손’의 부패사정을 지지하는 사설과 칼럼을 연재소설처럼 써댐으로써 부패정치인과 대기업사주들의 압력을 막아주었다. 언론의 공동취재에 국영TV 등 방송매체까지 가담해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이탈리아의 부패사정이 성공하게 된 것이다.

‘깨끗한 손’의 더러운 손 몰아내기에 대한 언론의 역할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사에 속한다. 서구언론들도 보도하지 않았는데, 이는 언론의 당연한 직분이며 책임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여기서 지적해 둘 것은 이탈리아 언론이 사법부와 시민사회와 연대한 배경에는 기자사회의 투명한 처신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 한 명의 기자도 부패의 도마에 오르지 않을 만큼 깨끗함으로써 ‘깨끗한 손’의 진실을 보도하고 특권세력을 지속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언론들은 ‘부정부패가 근절될 때까지’ 부패추방을 위한 풀제를 지속했는데, 부패추방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한국언론은 그 당시 보사부 출입기자단의 촌지사건이 보도돼 망신당했으며, 한보사건 같은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패언론인 리스트’가 나도는 것은 권언유착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것 같다.

80%의 대중은 누가 대변할 것인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지향점이나 목적에서 ‘깨끗한 손’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왜냐하면 부패정치를 끝장내 투명정치를 함으로써 한국사회를 민주적 선진사회로 도약시키려는 애국적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수천명의 고관대작과 금융 재계 지도층이 구속돼 재판을 받아 최고 30년까지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총선시민연대의 운동은 부패정치인들이 출마하지 않으면 면책되는 대단히 관대한 운동이라 하겠다. 헌정파괴행위자나 반 인권행위자들은 준엄한 사법적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도 낙천낙선만으로 대접하는 것은 온건한 조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오히려 선거법위반이라는 잣대로 지도부를 소환조사하고 언론은 ‘음모론’을 보도하면서 ‘의도적으로’ 축소 보도하거나 외면한다. 일부 언론은 공공연히 시민운동을 비판하는 사설이나 칼럼을 실어 낙선운동에 제동을 걸고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 등 선진언론과 한국의 후진언론간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언론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소수의 독과점 언론기업이 이익을 장악하게 되면 국가에 대해 비민주적인 가공할 힘을 휘두를 수 있다’고 모리스 뒤베르제 교수는 「정당론」에서 경고했다. 한국언론의 현주소를 적절히 표현한 경고의 말씀이다. 조선, 중앙, 동아 3대지가 언론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이는 ‘비민주적 힘을 휘두르는 독과점’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3대지 또는 4대지는 ‘언론재벌이거나 재벌언론’으로 보수를 표방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국민과 국가보다 사주와 기자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20%의 특권계층을 대변한다. 한국 사회의 80%에 해당하는 중산층, 지식인, 중소기업인,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언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민주언론의 기본인 이념의 다양성이 없는 현실이다. 언론의 소유구조를 조정하기 위해 정간법도 개정해야 하며, 세무조사도 균등하게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문제는 보수언론의 여론시장 독과점에 있는 것이다.

뒤베르제 교수의 해답은 이렇다. ‘언론의 독과점을 억제하거나 균형을 잡게 하는 다양한 요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국가 안에서 자본주의적 보도제도와 사회주의 보도제도를 공존시키고 양자에게 상호 시정을 해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공존제도는 일반적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및 많은 서구나라에서 현저히 시민교육의 성과를 올리고 민주제도를 확대 강화할 수 있었다.’ 80% 서민대중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안언론의(사회주의 보도제도) 발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해법은 한국언론의 장래를 위해서도 결정적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섭일 경원대 겸임교수 · 참여연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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