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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1999년 04월
  • 1999.04.01
  • 1822
못다 한 연구로 사회개혁 앞장서야죠
새 학기의 캠퍼스는 씩씩하다. 아직 목도리를 둘렀을지언정 팔짱을 낀 여학생들의 조잘거리는 영상은 생기를 몰고 온다. 봄눈이 흩날리는 날이었다. 겨울을 빠져나가기가 참 힘들구나 생각한다. 짙은 회색빛의 캠퍼스는 그래도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늦장 추위를 달고서 밀고 온 이 봄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있다고 믿으면서 걸어간다. 발자국이 찍히는 그것이 길이다.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46세)의 강단 복귀 소식을 듣고 연구실로 그를 찾아갔다. 97년 2월 28일 한 교수는 학내 민주화를 주도한다는 괘씸죄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박원국 전 재단이사장 퇴진과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한 투쟁이 폭발했다. 그리고 꼭 2년만에 그는 다시 강의실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6월에 복직 결정되었으나 강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 99년 2월 28일 학교측으로부터 새학기 강의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전공과목 세 개와 교양과목 한 개, 모두 네 과목을 맡게 되었다. 실질적인 복직이 이루어진 셈이다.

첫수업에 대한 감회를 물어보았더니 ‘조선시대 생활사’ 강의에서 역사의 원동력인 무언의 다수, 민중의 생활사를 복원해보자는 얘기로 강의를 시작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바로 그와 덕성여대 학생들이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그는 이제야 지난 2년을 돌아보면서 한숨을 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서로가 짐을 벗은 것에 대해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건은 끝이 났다고 해도 후유증이 크고 계속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보통이지만 별 무리 없이 마무리됐으니까요.” 한 교수는 현이사장을 비롯해 새 이사진이 그래도 과거와는 다른 민주적인 인물들이어서 신뢰할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기득권층의 지형이 변화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 고단한 싸움을 시작했을까.

“처음에는 개인의 명예회복이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재임용 탈락처분 철회 및 교수재임용제 개선 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80여 개 대학의 약 3,000명의 교수들이 서명에 참여했고 사회각계에서 힘을 모아주었습니다. 복직과 함께 당시 이사진의 퇴진까지도 투쟁의 목표로 삼게 됐습니다.” 학단협(학술단체협의회)과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학계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들까지 위원회에 참여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위원회에서는 한 교수의 복직을 위해 세 권의 투쟁백서를 내고 서명작업을 벌이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 덕택에 언론도 과거와는 달리 많은 관심을 보였다. 혼자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만큼 이러한 분위기는 큰 힘이 되었다.

부당함에 맞선 승리의 기쁨

“현행법상 학교측에서는 재임용해줘야 할 아무런 의무는 없습니다. 따라서 재임용 탈락이 부당할 수는 있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더욱 보통 재임용 탈락이 이슈로 부각되면 학교측의 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교수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양비론적인 평가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본질은 비켜가고 당연히 논의는 상대적 약자인 교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제도적인 문제로 접근해가야할 당위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부당하지만 불법이 아닌 제도적 현실하에서 재임용 탈락을 무효화시킨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중간중간 타협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사회측에서 일체의 경비를 대줄테니 1년간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오라는 것. 또한 한 교수의 복직과 박원국 전 이사장측 인사를 이사로 임용을 맞바꾸자는 조건이었다.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이 제안에 대해 학생들과 상의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반대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거부에 때로는 단식까지 하면서 돕고 있는데 그들의 의사를 배반할 수 없었다. 때로는 그가 분열을 조장하고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일부의 오해와 괴문서 등으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학생 뿐 아니라 졸업생, 학부모에게까지 격려편지로, 서명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끝까지 자신이 걸어야할 길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부당한 것을 거부하고, 원칙을 지킴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을 택했다.

그의 재임용 탈락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국면으로 확대되면서 적지 않은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렇게 긴 싸움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민주세력이 환영하는 축복받는 복직, 그것은 정의로운 과정을 통해 획득된 것이기에 마음이 좋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바쁘게 전화를 받아야 했다. 한 교수의 복직이 성공사례가 되어 전국의 많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이 그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재임용 탈락의 사례는 한 교수 이전에도 많았지만 아직도 적지 않게 계속되고 있다.

지속적인 개혁 노력이 있어야

“이번 사건의 해결에 많은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 것에 감사합니다. 여러 정치 사회환경이 변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조금씩 진보해 나간다고 봅니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보수세력은 집요하고 끈질기다는 사실이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단결해서 대응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갖게 합니다.” 모든 사회개혁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시민단체뿐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래도 이 사회가 조금씩은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수많은 실직자들의 아픔이 있기에 자신이 복직됐으니 배부른 소리한다고 욕먹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그가 힘을 합쳐 운동하는 법을 학습하면서 생긴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이제 교육부에서는 소청기관으로 ‘교원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재임용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육제도개혁이 한발 나아간 것이다.

그는 “한상권이라는 사람에게 사회성이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힘을 느낀다고. 자신을 추스르는 힘으로 그것을 적극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교수에게 힘을 실어줬던 것은 그의 학자로서의 자세, 즉 연구와 강의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내내 ‘현장성’을 강조했다. 자신이 지지와 격려를 받은 것이 학자로서의 현장을 지키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서 좋은 강의와 연구논문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또한 복직 이후의 활동에 대해 위원회와 논의해서 앞으로의 자신과 위원회의 활동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네번째 투쟁백서를 4월까지 정리하고, 8월말에는 대중들에게 이번 사태를 자세하게 알리기 위해 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그네의 외로움도 알 테지만 동지들과 함께 외로움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인상은 투사보다는 학자가 더 잘 어울려 보였다. 그러나 투사답다는 생각도 든다. 부드러워서 강한 투사.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준 것에, 한눈 팔지 않고 곧게 가준 것에, 좋은 결과를 안겨준 것에 대해. 그는 이번 성과를 모든 개혁세력의 공으로 돌렸지만 그래도 고맙다.

한 시간 가량의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나오면서 다시 한번 교정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 이 캠퍼스에 전쟁터와 같은 구호와 상처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정문 앞에 걸려 있는 ‘한상권 교수 복직 환영’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그 옛날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신입생들은 알까. 지금 이 평온한 교정이 지난 2년간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많은 이들이 어깨를 모으고 치열하게 싸웠던 전장(戰場)이었던 것을.
김문정 이대 신문방송학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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