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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1999년 05월
  • 1999.05.01
  • 1470
예수를 닮은 여자, 부스러기선교회 강명순 총무
“저는 상보다 상금이 너무 좋아요. 마침 애들 먹여살릴 돈이 다 떨어져서 걱정이었는데 이 돈으로 애들 때꺼리가 해결 됐거든요.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묘한 수상소감에 박수와 함께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요. 저는 이 자리에 오신 국회의원, 장관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가난하고 힘든 아이들과 여성들을 언제까지 국가가 몰라라하고 있을 겁니까. 다 먹고 살만하다고 하지만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고생하는 사람들, 아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런 것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되는 게 아닙니까? 제발 이제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러면 저 이런 상 안 받아도 좋아요. 이 상, 여러분께 드리겠습니다” 70년대 대학 데모에서나 들었음직한 어조로 준엄하게 쏟아내는 추상같은 발언에 장내는 긴장감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조금 전 ‘돈이 좋다’고 천진하게 웃던 사람이 저 사람인가. 한 머리에 앞 뒤로 두 얼굴을 가졌다는 야누스, 말만 들었는데 바로 그걸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상은 저 혼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스러기 선교회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 다 좀 일어나 주세요. 아니 이리로 좀 올라들 오세요. 이분들과 함께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지만 우리 남편, 당신도 올라오세요. 시간이 없어요. 빨리 올라오세요. 여기는 제 아이들이에요. 이분들과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뽑아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를 아우르며 굳어있던 분위기를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놓고 물러가는 왕오지랍이 또 하나의 얼굴이었다.

올해로 14번째인 한국여성대회에서 뽑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 강 명순. 그가 시상식에서 연출해 내는 모습은 이랬다. 그 현장을 보고 도대체 저이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여인을 아시나요

“25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어린이와 여성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몸으로 겪으며 함께 하는 삶을 살아온 점을 높이 사 수상을 결정했다”고 심사위원회는 발표했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이 그의 수상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부스러기 선교회 협동총무, 빈민여성교육원 원장, 안산시립 어린이 청소년 쉼터 ‘신나는 집’원장, 예은 여성학교 교장, 안산시 원곡동 경로식당 총무, 부스러기 장학회 상임이사, 사랑의 먹거리 운동 협의회 공동대표....

사실, 그는 세상에 익히 알려진 사람이 아니다. 여성계에서도 썩 지명도가 높은 축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은 수상식장에서의 그를 보고 과연 그답다는 생각과 함께 그가 살아온 인생의 요약판 또한 저러함을 알리라.

때는 1988년 3월, 장소는 이화여자대학교 서광선 교수 연구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나는 거기 있었다. 내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어떤 여자가 찾아왔다. 작은 체구에 커트머리, 맑은 목소리에 명랑한 말투는 학생 같은데 옷차림도 그렇고 어딘지 모르게 ‘낡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선생님, 죽겠어요. 정말 언제까지 이래야 되지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래서 또 이렇게 찾아왔지요”사람의 정체도 분명치 않은데 귀동냥으로 들려오는 말은 사람을 더 헷갈리게 했다. 죽겠다는 사람이 미소를 띄며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아마 나도 모르게 얼굴에 호기심이라고 씌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례를 약속 받고 일어서는데 그이를 소개시켜 주셨다.

“여기는 빈민운동 하는 강명순 선생, 우리 학교 졸업생이지” “아-”

이름을 듣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 나왔다. 여성학을 공부한 지 얼마 안되어서 그가 쓴 책 ‘빈민여성, 빈민아동’이 출판되었고 우리는 그 책을 읽으며 가난한 여자들의 일생이 아닌, 일상이 준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같은 가난이지만 술이라도 먹고 아내에게 화풀이 할 수 있는 남자보다, 새끼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뭐든 해야 하는 여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책이었다.

“저렇게 작은 여자였어? “

교수실 문을 닫고 돌아서서 내가 한 혼잣말이다. 그와 동시에 내 가슴속에 한 가지 파문이 일었다. 나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학진학을 목표했는데 저 사람은 대졸학력을 가지고도 왜 가난한 삶의 현장을 골라서 사는가. 그 파문이 얼마나 질긴지 그로부터 10년이 넘은 오늘 그를 마주하자마자 나는 그것부터 물었다.

단 한번 눈길에 정해진 팔자

“대학교 2학년 때, 학교에 가려면 양장점을 사열하면서 지나야 했는데 어느 아침 학교에 가다가 양장점 봉제공장에서 나오는 내 또래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어요. 얼굴이 부석부석하고 누런 그 여공의 눈에서 나는 어떤 원망스러움이 담겨 있다고 느꼈고 괜히 그에게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강의에 가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 버스나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그것을 타려고 막 뛰어 오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것을 타면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 내리고, 만약에 놓치면 ‘아이고 어쩌나’ 괜히 안타깝고 아깝고 그런 마음을 가진 적 있는 분 손 들어보세요” 백 명중에 십 수명이 손을 든다.

“지금 손드신 분들은 오지랍이 넓을 팔자를 타고 나셨으니 집에 계시지 말고 동네 통반장이라도 하셔야 해요” 농담 어린 내 말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남의 일에 끼어 들지 않고 제 앞가림 제가 하는 것을 미덕으로 치는 현대사회에 제대로 적응한 사람과 생기는 것 없이 ‘남의 일에 발구르게 되는’ 사람.

강명순의 대학 시절, 그렇게 여공과 마주쳤을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렇다고 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을 터, 가난한 사람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끼고 그날 이후 자신의 삶의 방향을 그쪽으로 틀어버리게 되는 그에게서 나는 ‘팔자’라는 말을 떠올렸다.

얼굴에 철판 열 개 깔았소

“나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아이들 밥 먹이고 공부시키는 일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거든요. 그런데 요새 알았어요. 우리< 신나는 집>에 다니는 한 아이가 글을 썼는데, 공납금 안내고 급식비 안 낸다고 담임이 칠판에 이름을 적어놓고 매일 괴롭힌다는 거예요. 그 당한 일을 이야기 하다가 설움이 복바쳐서 어린것이 친구들이 다 있는데서 우는데 퍼뜩 중학교 2학년 때 일이 생각나요. 그 때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기 일보직전까지 갔는데 공납금 안 냈다고 서무 선생님이 나늘 창고에가둔 기억이 나는 거예요. 돈 못 낸 아이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 것이더군요.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나서 ‘얘는 공납금과 급식비 꼭 도와줘야 한다’고 추천된 사람이 200명. 64명이던 것이 확 늘어난 거지요. 예산이 부족해서 잘라내야 할 판이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냥 그 200명 모두에게 돈을 주기로 결정했어요. 1억이 들어요”“그 돈이 다 어디서 나요?”

“모아야지요”

어디서 어떻게 모을 거냐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도와주지는 못하면서 걱정만 늘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고작 내 입에서 나온 말은 ‘힘드시겠어요’ “힘든 수준은 이미 초월했어요. 나는 얼굴에 철판을 열 개나 깔았어. 처음에는 도와달라고 손 내밀면서 내가 뭐가 모자라 이 짓 하나 속도 무척 상하고 자존심도 많이 다쳤어요. 예전에는 ‘당신들 돈 내 놔’였어요. 그러나 내가 그 사람들 돈 벌어 사는데 보내준 것 없고 돈 맡겨놓은 바도 없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주시옵소서’ 하니까 잘 줘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 끝에 그는 “내가 어떻게 그 사람들 주머니를 끄르겠어”하며 여운을 남겼다. 그가 믿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님을 만나 보셨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만났지. 가난한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신데, 매일 만나지요. 인내천이라고 하잖아요. 성경에는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구절도 있구요.” 눈곱만큼의 망설임도 없는 직설적 확신에 오히려 간접적인 질문이 옹색하게 느껴지는 순간,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을 말했다.

“요새 애들 웬만한 선물 받고도 귀한 것 몰라요. 가난한 애들은요, 지우개 하나만 사줘도 얼마나 좋아하는데. 가난한 할머니들한테요, ‘할머니 예뻐지셨어요’ 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얼굴이 환하게 펴져요. 부자한테 그래보세요. ‘너 왜 나한테 아부하냐? 관심 꺼’ 그러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귀한 그 사람들이 나눌 줄 안다는 거예요. 많이 있는 사람들은 나누지 않아요. 나눌 줄 안다는 것은 마음이 없으면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나누는 마음이 있어요. 나는 그들에게서 받은 게 너무 많아요. 내 영혼의 의지처가 그들이에요”처음에 그는 동창과 친구 친지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수모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너무 좋아서’였다. 그러다가 1986년 부스러기 선교회를 만들기로 했다. 몰라서 못 돕는 사람들에게 알려 조금씩 모아서 나눠 줄 생각이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말렸다. 소식지 보내는 우표 값도 안 나올 거라고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닭똥집을 하나 까야 10원을 버는 사람들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작은 시민들이 부스러기가 되어 부스러기를 돕겠다고 나타났다. 그는 여기서 다시 한번 나눔의 마음이 가난한 자 속에서 싹트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느님이 살아 계시니까 될 거라고 우겼던 것은 결국 이런 마음을 믿었던 것이리라.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소득은 사람에 대한 가능성과 신뢰감을 얻었다는 겁니다” 그가 얼굴에 열 겹으로 깔았다고 표현한 철판은 어쩌면 하나님이 씌워준 철가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의 강명순이 영국의 대처 수상보다 더 센 철의 여인 아닌가.

밥 한 그릇에 통일을 담는다.

흔히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 그 잘사는 미국에도 거지는 있기 마련이라는 예를 든다. 빈민운동가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는 자신이 75년부터 빈민지역에서 일했고 85년에는 빈곤 자살자가 공식적으로만 1032명이었던 점을 먼저 상기시킨 뒤 부스러기 선교회 소속 공부방 신나는 어린이집 이야기를 했다.

“신나는 집 애들은 어떻게 모으느냐고 묻습니다. 모을 필요가 없어요. 밥 준다니까 애들이 까맣게 몰려와요. 처음에는 단칸방에 살아서 공부할 데 없고 부모가 먹고사느라 바빠서 애들 숙제도 못 봐주는 게 빈곤의 또 다른 문제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밥 해 먹이고 목욕시키는 게 더 큰 일이 됐어요. 당장, 목사나 전도사네 집 애들이 배고픈 자기 친구들 집으로 데려오니까요. 그래서 신나는 집을 시작하게 돼요. 눈으로 보니까요”신나는 집은 작년 여름 강명순씨가 안산에 세운 게 처음이었는데 한 달도 안 돼 다섯 개가 생겨났고 여기저기서 하겠다고 해서 그 해 12월에 36개가 되었다. 지금도 열 군데가 줄서서 기다린다. 도움 받아야 할 아이들이 도처에 그렇게 많은 것이다.

당장 아이들의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냐 마느냐를 통해서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는 그는 우리 나라의 가난, 결식아동, 청소년 비행, 왕따문화를 한고리로 꿴다.

“우리나라 가난은 사회구조적 악순환에서 와요. 가난하고 해체된 가정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가 날품팔이, 막노동,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버스안내양, 식모살이, 농사짓다 올라온 사람들이에요. 산업화의 과정에서의 희생자들이죠. 돈 없고 빽 없고 기술 없고 배운 거 없고 방 칸, 아무 것도 없어요. 자녀양육을 보고 배운 적도 없어요. 자신들도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든요.”“결식 아동 937명을 조사했더니 단칸방이나 지하셋방에 살고 목욕시설이 없어요. 몸에서 냄새나지요. 부모가 챙겨줄 여유가 없어요. 준비물 못 챙기지. 공부 못하지, 돈 못 내지, 선생님 매일 야단치지, 어떻게 왕따가 안 되겠어요? 너희는 학교에 가서 앉아 있는 게 기적이다, 제가 그래요”“가난한 애들이 비행청소년 된다고들 하지요. 맞아요. 필요한 것을 거리에서 모두 조달하는 아이들이 있고 그 기술을 동생에게 전수시키는 애도 없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오렌지족 낑깡족처럼 부유층의 아이들 중에는 비행청소년 없어요? 그들은 부모가 다 갚아주니까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거겠지요. 가난한 아이들이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라는 말을 벌써 알아요. 그래도 가난한 애들은 죄책감이라도 있지요” 통일은 남북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경제발전의 톱니바퀴로 사람에 대한 존중과 나누는 마음이 잘려진 지금 남한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통일과 정서적 공감대도 중요하다는 말에 나도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그는 남한내 통일의 가능성을 아이들에게서 찾는다.

“지난 겨울방학 때 신나는 집 36개소에서 1500명에게 세 끼 밥해서 매일 먹였어요. 민간단체에서 지원금 받아서 캠프도 하고 상담도 하고 했는데 밥 짓는 자원봉사는 완전 무료였어요. 주부습진도 걸리고 허리병도 걸렸어요.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옛날에 공부만 가르칠 때보다 밥해 먹이니까 내 가족 내 자식같이 정들고 더 좋다고 부엌도 변변치 못하고 환경 나쁘지만 계속해야 되겠다고 해요. 두 군데 신나는 집이 힘들어 닫았다가 다시 열었어요.

애들이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쏙쏙 변화가 돼서 그 보람이 대단해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어요. 중학생만 되어도 안 변해요. 초등, 아니 유치원은 조그만 사랑에도 변화가 돼요. 그 아이들을 돌보면 우리 나라 국민 3대가 행복합니다”밥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밥이 곧 나눔이다. 두레반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 동네사람 지나가면 ‘밥 먹고 가’ 불러들여 앉히던 가난한 시절이 오히려 통일시대였음을 강명순은 우리에게 기억시킨다. 따지고 보면 남북통일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군량미로 쓸까봐 두려운 마음을 굶고 있는 동포에 대해 아파하는 마음이 앞지를 때 통일이 오는 것 아닌가. 통일은 밥 한 그릇에 담겨있는 지도 모른다.

큰 분노는 큰 사랑에서 나온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봄비를 맞는 것 같았다. 포근하고 촉촉한 봄비. 인터뷰를 마치려 하는데 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보고에는 결식 아동이 없다고 해요. 15만 명에게 복지부가 급식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건 점심만 주는 거예요. 점심 굶는 애가 저녁은 안 굶겠어요. 또 아침은 먹었겠냐구요. 토요일 일요일은 학교 급식 안 해요. 공휴일은 뭘 먹고살지 알아 봤느냐구요. 자기들 밥 먹는 너무 간단한 원리를 왜 모르냐구요. 방학 때도 급식쿠폰을 점심에만 줘요. 어떤 학교는 방학기간 동안의 쉰 장을 한꺼번에 줬는데 그걸 애가 변소에 빠뜨려서 낭패가 났어요. 일주일에 한번 불러서 뭘 먹었는지도 물어볼 겸 일주일치씩 주는 게 그리 힘든가요. 좋은 선생님도 없지 않다는 것 알지만 난 애들을 통해 보면서 교육 관계된 사람들 많이 야속해요. 저번에 교육부에서 공청회 하는데 사무관 한 명이 이런 말을 합디다. 결식아동 아홉 집에 가 봤는데 티브이, 냉장고가 다 있더라. 결식아동은 13만인데 겨우 아홉 집 보고 그런 소리 하는 것도 문제지만 요새 티브이 냉장고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그걸 얻어 왔는지, 중고를 샀는지. 버린 걸 주워왔는지, 또 냉장고 열어봤을 까요? 그 안에 뭐 들어있더냐구요. 전기세 못내서 냉장고 꺼놓은 집도 많아요. 선생님들 힘들고 몇 아이 때문에 급식시설 쓸 수 없다고 상품권으로 주고 밥집식권 주는 어른들이 월급 받는 사람들이고 교육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그이의 큰 사랑은 사랑이 없는 어른들을 향할 때는 그만큼의 큰 분노가 되었다. 결식아동에 그나마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 안에 받을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것은 사람대접이 아닌 것이다. 그는 그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나눔의 진실은 준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주느냐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게 참여연대에서 나오는 책이니까 이런 소리 좀 합시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결식이 매일 밥 안 먹어야 결식인줄 아세요? 라면만 먹거나 달랑 김치 한 가지로 밥 먹는 애들도 결식상태예요. 아동권리차원에서 정부가 예산 지원하라고 연대해서 권리 따내야 해요. 시민단체가 그런 일 해야 해요. 나는 애들 밥 해 먹이느라 바빠서 연대할 시간이 없어요. 1500명 밥 먹이는 게 하루 225만원, 한 달에 4500만원, 1년 6억이니 모금하느라 힘들어요.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는데, 보도블록 들쑤시는 돈만 안써도, 전 대통령들 비자금 끌어들이면 다 해결되잖아요” 그는 70년대에는 민주화와 통일에 모든 단체가 매달려 민중생존권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지적과 함께 시민단체나 교수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민교육에, 지식전달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는데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희생하고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바탕 위에 우리가 대학에 다닐 준비를 하고 대학에 다니고 했으니까요” 우리 모두 가난한 자에게 빚졌으면서 차용증서 없는 빚은 빚이 아닌 줄 알고 사는 이 시대의 ‘가진 자’들에게 그는 화가 난 것이리라. 그러나 이런 분노도 기대와 애정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것.

“내일까지 생각하면 골이 터져 죽으니까 오늘 하루만 생각하고 산다”는 그에게 억지로 ‘이 일을 하면서 얻은 게 많다지만 잃은 것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민주야, 잃은 거 뭐 있냐? 별로 없지. 우리 딸도 별로 없대. 산동네 살아봐서 요새 매일 쓰는 수세식 변소도 감사하지.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거 많아”가난한 사람들과 눈물바람 속에 살면서 자기 희생으로 웃음꽃을 피워내는 그를 보며 예수가 생각나는 것은 그가 예수쟁이여서만 일까. 오늘은 평소 안 쓰던 내용을 하나 더 쓴다.

아이들 밥 값 담는 그릇 번호

조흥은행 : 강명순: 304-01-059966

당신이 작은 부스러기를 밥 그릇에 담는 순간 한 아이가 웃고 그 웃음 따라 통일이 와요.
오한숙희 여성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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