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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1999년 06월
  • 1999.06.01
  • 1477
다시 듣고 싶은 희망의 함성
87년 6월 11일. 그날 신문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동지의 팔에 허리를 붙들린 채, 목을 외로 꼬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 그의 정수리에서 얼굴로, 땅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던 붉은 피.

최병수 씨(화가, 40세)는 그 사진을 보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당장 이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민미협(민족미술인협회) 활동을 막 시작했던 최씨는 이한열 군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갔다. ‘초상권’에 대한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허락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으로 가서 한열이 부모님을 뵈었더니 얼굴에, 딱 적혀 있어요. ‘나한테 말시키지 마.’ 그래서 이리저리 학생들을 수소문했는데, 전부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러던 와중에 한 여학생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됐죠.” 그의 도움을 받아 최씨는 그날 밤새 판화를 제작했다. 엽서 크기의 휘장 180여 장을 하루만에 찍었고, 다음날 그 휘장은 병원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가슴에 달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실크인쇄로 4,000여 장을 더 찍었다. 사흘 후, 이번에는 세로 10미터, 가로 7.5미터의 대형 광목에 그림을 그렸다. 그가 그린 걸개그림은 학생회관에 걸렸다.

이한열 군의 장례식 때까지 그는 모두 8장의 그림을 그렸다. 시청 앞 노제 때 트럭을 타고 있던 이군의 영정도 그가 그렸다. 시청 노제에서, 광화문에서 한열이는 100만 인파들의 머리 위를 그렇게 맴돌았고,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이제 11년이 지났다. 당시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죄인’들은 ‘전직 대통령’이란 명함을 달고 지역화해를 위한 거대한 행보(?)에 나선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최병수 씨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본주의의 모순과 싸우고 있다.

그가 처음 ‘그림’으로 ‘투쟁’을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 당시 목수로 일하던 그를 미대에 다니던 친구들이 그림판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그는 민중미술운동의 일환으로 신촌역 벽화 작업에 동참했다가 연행되었다. 도시미관과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를 향해 형사가 물었다. 직업이 뭐야? 목수인데요. 그러자 형사는 말했다.

“그냥 화가라고 하지.”

그래서 그는 ‘관제 화가’가 되었고, ‘걸개그림 화가’가 되었고, ‘사회면 화가’가 되었다. 최씨가 사회적 이슈를 쫓아다니며 민중의 삶에 천착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열네살 때 가출을 했어요. 그때부터 막노동일을 전전하다가 미술운동을 접하고 『말』지 등을 읽으면서 세상을 봤죠. 악취가 나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왜 막노동하면서 돈을 못 받나, 이걸 계단식으로 생각 해봤어요. 사장, 파출소장…장관, 대통령, 그 위에 누가 있나. 내 돈을 결국 누가 떼먹나, 생각해보니까 미국이더라구요. 대자본이더라구요.” NL? PD? 그는 모른다. 그가 ‘노동해방도’ 걸개그림을 그릴 때, 누군가 물었다. 네가 사회주의를 아느냐고. 그래서 그는 대답했다. 나는 열네살 때부터, 내 돈 뜯어가는 사장들하고 맨날 싸우면서, 평생 자본주의를 배운 사람이다, 라고.

‘노동해방도’와 ‘장산곶매’를 그려내던 그가, 89년 ‘쓰레기들’(92년 리우 환경회의 때 전시)이란 작품을 만들어 낼 때, 사람들은 “최병수가 맛이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만 보고 하는 말이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여줘야 돼요.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재벌들하고 싸워야죠. 대자본가가 노동자들 해고하면서 모은 재산으로 소 끌고 금의환향하고, 서울시장이 지하철 노동자 해고하면서 실업자 기금 전달하고, 어느 교수가 토크쇼에 나와서 민중운동사 얘기하면서 6·10항쟁을 6·29라고 표현하는데 속이 뒤집히더라구요. 그러면서 자기가 그때 운동권 제자들을 잘랐다면서 눈물을 흘려요. 야, 이거구나. 6월항쟁이 저 사람한테는 항복문서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들은 세상이 바뀐 줄 알 것 아니에요. 썩은 지식인들과 재벌들이 세상 바뀌었다면서, 결국은 자본주의의 우위성을 선전선동하고 있는데. 자본주의라는 큰 풍선 아래 민중은 질식당하며 죽어가는 건데.” 그의 그림 ‘투명한 야만’에선 거대한 빌딩, 자유의 여신상, 핵무기 아래 짓눌리고 깔린 허름한 판자촌이 그려져 있다. 소수가 장악한 권력과 부, 그 아래 억압받는 민중의 삶, 자본주의의 허구는 결국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 그의 관측이다.

일산에서 더 들어간 ‘깡촌’에 있는 그의 집은 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장’이었다. 그 공간에서 그는 햇볕이 날 때 걸개그림을 펼쳐 말리고, 구상하고, 작업한다. 요즘은 ‘반지 연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구를 보석처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링, “이 반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이 반지를 낄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대형 공연기획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베를린 공연처럼, 20세기의 장면들을 이 링 안에 넣어서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사회를 구상하는 거죠. 단순한 환경 콘서트가 아닌, 정치·사회·경제·문화가 다 들어가고, 인류의 역사가 다 들어간 콘서트 말이에요.” 그리고 그 콘서트에 참석한 사람들의 손에는 누구의 영정 말고, 누구의 죽음 말고, 살아나는 지구, 함께 살아갈 세상을 그려 넣을 작정이다. 최병수 씨는 그날, 분노의 함성이 아닌 희망의 함성을 다시 한번 듣고 싶다.
이유진 전 『사회평론 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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