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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1999년 11월
  • 1999.11.01
  • 4264
지금으로부터 8년 전, KBS 구내식당에서 몇몇 사람들과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점심시간도 아니고 저녁치고도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고 하루 일을 마친 후라 느긋하게 식당을 전세낸 듯 신나게 떠들기까지 하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문득 저쪽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꼿꼿하게 앉아 숟가락을 든 팔만 움직이는 것이 멀리서 보기에도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사관생도가 절도있게 밥먹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입었던 옷을 보면 하루종일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는(먹으면서 꼭 흘리기 때문에) 나로서는 무척 신기한 모습이었다. 어찌 사람이 식탁에서 저럴 수 있을까.

나는 물을 가져온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일부러 그쪽 자리로 빙 돌아갔다. 남자 셋이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도 하면서 보통 우리네가 밥을 먹듯 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만 조금씩 끄덕일 뿐 표정변화도 없이 정물화처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이목구비 어느 한 군데도 빈틈이 없이 야무져 보이는 게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게 생겼다’는 말이 이때 쓰라고 나온 거구나 싶었다.

“아, 그 때? 그 때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사관생도 같았지요. <기동취재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원종배 선배랑 할 땐데, 그게 밤 9시에 시작을 했거든요. 그러니 긴장도 되고 화장과 의상을 완전히 다 끝낸 후에 먹는 밥이라 여간 조심스러워야지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내 기억 속의 자기 모습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아는 지금의 그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는 게’ 아니라 남의 일에 잘 웃고 잘 울고 자기 코도 석 자이면서 남이 무슨 걱정을 하면 도와주기를 자청하는 ‘오지랖’이며 약속시간에 자주 늦게 나와서는 미안하다고 쩔쩔 매며 늦은 이유를 어리광 섞어 이야기하는 귀여운 푼수기질이 있는데다 잘 잊어버리고 잘 잃어버리는 심각한 건망증의 소유자이며, 사람의 좋은 점은 화끈하게 칭찬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우아하게 좋은 말로 넘어가지 못하는 반(反)내숭파이다. ‘어머, 그랬어?’ 하면서 맞장구를 치거나 ‘깔깔’대고 웃을 때 그를 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한다. 겉보기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사람은 겉만 보아서는 모르기 마련이라지만 8년 세월동안 몇개의 산과 고개를 넘어오면서 겉과 속내의 차이가 더 커진 것이리라. 그가 넘은 고개가 몇개 이런가. 루프스라는 병에 걸렸고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보지 않는 국제결혼을 했으며 여자 아나운서라는 이름과는 어쩐지 쉬 연결되지 않는 정치영역에 발을 디뎠으며 1년 전에 딸을 입양하여 어렵게 어머니가 되었다.

“몸에 병없기를 바라지 말라”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정미홍이다.

“미안해. 내가 이번 금요일 약속 못 지키겠다. 왜냐하면 내가 누굴 좀 만나야 하는데 우리 루이사가 재정적으로 자립하는데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거든. 그 사람이 하필이면 그 날 그 시간밖에는 만날 기회가 없다는 거야. 어떻게 하지. 미안해. 내가 미안해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 일이 왜 중요하냐 하면….”

루이사는 ‘루프스를 이기는 사람들의 모임’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그 병은 면역체계 이상현상으로 외부의 균과 싸워야 할 몸안의 면역체들이 오히려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신성 류머티즘이라고 한다. 과로에서 비롯되며 정미홍 또한 아나운서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공부욕심을 내다가 발병했다.

죽음의 고비를 서너 차례 넘기면서 그는 오히려 강해졌다. 평생토록 이 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이 병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는 판단 아래, 루프스라는 병에 대한 지식들을 흡수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이 병으로 고통받으며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잃어가는 사람들, 특히 파혼을 당하거나 이혼을 당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병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이들과 나누기로 결심했다. 루이사는 그가 든 깃발의 이름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루이사의 필요성을 설명, 경제적인 도움을 모으고 전공 의사들과 연대체계를 만들어 의지할 수 있는 공간(사무실)과 항상 도와줄 수 있는 사람(상근자)과 의학적 정보를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드러나 있지 않은 환자들에게 병을 알면 병을 이긴다는 용기를 주어 루이사에 모여 들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가 루프스라는 병에 참여함으로써 그 극복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들이 연대하기 시작한 셈이다.

루이사를 위해 그는 팔걷고 ‘돈벌이’에 나섰다. 그림 전시회를 열었고 인순이 디너쇼를 열었고 12월에는 조영남 디너쇼를 계획하고 있다. 일정 액수를 모아서 그 기금의 이자로 사무실 운영비와 인건비를 충당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금년 안에 해야 한다. 욕심이 많아서라거나 성미가 급해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금년 여름 고향 미국으로 돌아간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살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민 수속을 밟는 한편, 그 전에 기금마련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의사의 경고도 무시한 채 연일 강행군인 것을 모르지 않는 나이기에 선선히 ‘선약 파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이번에는 내가 가야 할 차례예요.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빚진 게 너무 많은데….”

준비된 남편

남편 때문에 바삐 루이사를 놓고 떠나야 하지만 루프스는 이들 결혼의 중매장이인 셈이다. 오래전부터 영어공부 모임을 통해 안면이 있던 트리카가 크리스마스 휴가차 고향에 왔다가 전화를 한 순간, 정미홍은 모두들 휴가를 떠난 땅 설고 물 설은 타향의 기숙사에서 루프스 발명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정미홍의 방을 경비원과 함께 열고 들어온 그는 당장 병원을 향했고 가족만이 보호자가 될 수 있는 병원 규정에 맞춰 혼자 약혼자가 되었다. 혼수상태에서 며칠을 헤매다 깨어난 정미홍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집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크리스마스를 고스란히 병상에 바친 ‘홀로 약혼자’였다.

인간적인 감사를 느끼고 귀국한 정미홍 뒤를 곧장 따라 들어온 트리카는 ‘둘이 약혼자’가 되자고 청했다.

“고마운 거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고마움을 결혼으로 갚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지요. 그를 사랑하는가 스스로 물었을 때 자신있게 그렇다는 답이 나오질 않았어요. 특히 방송 일을 계속하고자 했던 나로서는 보수적인 언론계에서 국제결혼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도 없지 않았어요.”

‘생명의 은인이오니 평생 곁에서 모시겠습니다’하는 대사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것이고 또 전설의 고향시대에 살았다 해도 정미홍의 입에서는 절대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현대사회의 자의식 강한 정미홍임에랴.

선뜻 승낙하지 않는 정미홍에게 트리카가 말했다.

“당신은 평생 병을 안고 살아야 하니 내가 돌봐야 합니다.”

그는 자기 누나 중에 한 명이 루프스 환자여서 그 병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를 심사숙고한 끝에 ‘참 좋은 사람’, ‘사랑할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에 그는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반대가 산처럼 나타났다. 결심까지가 어렵지 한번 결심하면 밀고 나가는 게 또 정미홍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국제결혼 결사 반대를 외치며 자리에 누우신 친정 어머니는 그의 또다른 누나가 티벳불교신자라는 사실이 연결고리가 되어 결혼식장에 등장하셨다. 변호사인 그는 정미홍의 활동무대인 한국으로 자신이 옮겨 올 준비까지 다 하고 왔다. 결혼생활의 햇수가 늘어나면서 아이를 기르고픈 정미홍에게 신체적으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출산보다는 입양을 적극 권한 사람도 그의 남편이었다. 루프스 환자인 것을 알면 파혼이나 이혼인 게 한국의 인심인데, 모든 조건을 듣고 보면 정미홍에게 그는 안성맞춤, 아니 미리 ‘준비된 사람’이었다.

일어나, 혜나야

얼마전 토요일 밤 정미홍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사전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약간 기가 막혔다. 돌잡이 생일잔치에 잠깐 사회를 부탁하면서 사전회의라니. 솔직히 유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평소 일에 있어서 준비에 철저하다는 것을 아는 터라 순순히 나갔다. “내일 거기 온 사람들에게 꼭 혜나를 위한 축하 말을 한마디씩 부탁해줘. 그걸 비디오로 담을 거야. 나중에 혜나가 커서 자신의 출생 때문에 방황할 때 그걸 보여주면 아무리 비뚤게 나갈려고 하다가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겠니. 자기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알면 그러지 않겠어. 얘가 나중에는 분명히, 특히 사춘기 때는 그런 방황을 할 거라구.”

나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인간 정미홍이 존경스러웠다. 입양할 결심이 대단하다고만 여겼는데 자기만족을 위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먼 앞을 내다보며 준비하고 사는 그를 보며 나의 어머니됨은 내 배 아파 낳았다는 것에 자만하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의 자동차 뒷좌석에서 본 다음날 입힐 아이의 돌복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전통의상을 빌려 온 것이라 했다. 그 또한 자기 일에 대한 철저한 정보수집과 준비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집 냉장고벽에 이렇게 붙어 있다.

“아주머니 번거로우시겠지만 혜나에게 이렇게 해 주세요. 밥은 시간 맞춰 주세요. 낮잠에서 일어나면 운동시켜 주시고요….”

혜나가 넘어지면 그는 박수를 친다고 한다. “혜나야, 일어나. 일어나. 용치? 그래, 잘 한다.”

그러면 아이는 웃으면서 일어난다. 세상에는 넘어질 일도 많고 발걸어 넘어뜨리는 일도 많음을 알기에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지금부터 가르치기 위하여 아니, 넘어지는 것은 애써서 일어날 때의 뿌듯함을 느끼는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이제 혜나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는 아마 자신이 살면서 힘들 때 외웠던 말 “자신의 날개로 나는 새가 아름답다”를 따라하게 가르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가끔 그는 자신의 인생에게 큰 획은 우연히 그어졌다고 믿는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정외과를 택한 것부터 그랬다. 예비고사 점수가 나빠서 ‘순 눈치작전’으로 안전지대를 골라 원서를 냈던 것이다. 그가 조순 서울시장 후보의 부대변인으로, 또 조순 시장 밑에서 홍보과장으로 공무원이 될 기회가 있을 줄 알고 정외과를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귀티가 나 보이지만 가난한 집의 맏딸인 것도 그의 겉다르고 속다른 점이다.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외국인 회사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한 데다 어쩐 일인지 영어가 좋아 영어공부를 꾸준히 해 놓았던 것이다. 1년쯤 다녔을까. 어느날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아나운서 시험원서를 내러가는 길이라고 했다.

“평소 아나운서가 돼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호기심이 들었어요. 그거 재미있겠다 싶었죠. 다음 해에는 나이 제한에 걸려 응시도 못한다는 것을 아니까 마지막 기회다 싶어서 친구한테 부탁했죠. 내 것도 내달라고. 그냥 그런 거예요. 돼야 한다거나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요.”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이었다. 1차시험은 카메라 테스트. 10명도 안 되게 뽑는데 뽑혔다. 다행히 시험이 일요일마다 있었고 몇 차례의 선발과정을 거쳐 그는 마지막 면접에 들어갔다.

“외국인 회사보다 월급도 훨씬 적은 데 왜 여기를 왔지요?”

“이 일이 하고 싶어서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데 돈은 두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이 말 한마디가 뽑히게 했을 거라고 그는 지금도 생각한다. 알려준 친구는 떨어지고 자신은 우연히 아나운서가 된 것이다. 일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날 무렵 그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때까지 방송하는 사람들은 올림픽을 위해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다 그게 끝나니 다음 지표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신나게 나 자신을 쏟아부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힘들어도 사는 건데 타성에 젖어 그럭저럭 사는 것을 저는 참을 수 없었어요.”미국유학을 결심하고 떠났다. 가서 학창시절로 돌아가 죽어라고 공부하다가 죽을 뻔한 것이다.

우연히 아나운서가 되었지만, 그 선택에는 언론계는 의식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여성차별이 없을 거라는 기대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경력이 제법 되는 기혼여성 아나운서들만 지방발령이 난 것이다. 누구나 승진을 앞에 둔 경력이 되면 지방을 도는 것이지만 나이든 기혼여성들을 한꺼번에 지방발령을 낸 것은 암묵적인 권고사직이라는 건 뻔한 거였다. 그가 요즘 여러 여성단체에 참여하여 자기가 가진 힘을 합하는 것도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교육방송에서 프리랜서 진행자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을 무렵, 나는 빳빳했던 여자 아나운서 한 명이 이렇게 시들어가는구나 싶었다. 그의 병이 알려진 다음에는 병마 때문에도 어쩔 수 없겠구나 했다.

어느 잡지사의 부탁으로 조순 서울시장 후보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만난 정미홍, 그는 환자같지 않게 활달했고 자신이 새로 맡은 일로 신바람이 나 있는 모습이었다. 한때 그의 영향력이 너무 세다는 소문에도 시달렸지만 서울시 홍보과장 역할을 그는 똑소리나게 잘해냈다.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그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정치가 곧 생활이므로’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들의 사회의식화를 강조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꼭 놀러와요. 거기서 좋은 것 많이 배워다가 우리나라에도 써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게.”

아직 이민 비자를 받아쥐지는 못했지만 미국에 가서도 그는 결코 조용히 있지 못하리라.

애초에 ‘나는 저기까지만 날겠다, 여기만 넘고 날개를 접겠다’ 계획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기에. 날개를 접고 쉬려다가도 자기 앞에 벽이 놓여질 때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더 높이 날아 그 벽을 넘으며 사는 것이 자신의 사는 방법임을 이제는 알기에.

나는 그를 고정관념에 도전한 삼관왕으로 기록한다. 뉴스의 꽃쯤으로 여겨지는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다양한 활동영역을 개척한 것이 하나요. 둘은 불교경전 보왕삼매론의 “몸에 병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지나니 성인 몸의 병으로써 수련의 도구를 삼으라”는 구절처럼 환자에 대한 우울한 고정관념을 넘은 것이요, 셋은 여자는 반드시 제 몸으로 자식을 낳아야만 어머니가 된다는 결코 쉽게 넘어설 수 없는 고정관념에 지지 않은 것이다.

그가 다음에는 어떤 고정관념의 벽을 통쾌하게 넘을지 기대된다. 그 모습은 비장하기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나게 하다가 ‘우연히’ 생기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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