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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1999년 12월
  • 1999.12.01
  • 1584
『오늘은 다르게』 박노해 지음, 해냄 펴냄, 1999
나는 감옥 문을 나서며 세 가지 운동원칙을 세워보았다. 하나는 더 이상 지는 싸움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되는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즐거운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오늘은 다르게』 147쪽, 이하 쪽수만 표기)

박노해(42, 본명 박기평). 84년 “시는 무기”라며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던 『노동의 새벽』으로 문단은 물론 한국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얼굴없던 시인’. 80년대 후반 사회주의에 매료됐던 사노맹의 중앙위원으로 경찰의 끝없는 추적에 시달렸던 혁명운동가. 지난해 8월 15일 7년 5개월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오며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외쳤던 그. 세기말, 그는 80년대로부터 참 먼 곳까지 와 있는 것 같다. 지난 5∼8월 매주 월요일 15차례에 걸쳐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박노해의 희망찾기’를 보완해 내놓은 『오늘은 다르게』는 그의 변화된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산문과 시가 어우러진 『오늘은…』에서 그는 여전히 치열하게 살 것을 거듭 다짐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가장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이 빠른 변화 시대에 참사람의 길이 무엇인지, 새로운 진보란 무엇인지, 나는 정말 알고 싶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것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다. 그리하여 이 고통에 찬 세상을 좀더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함께하고 싶다. 이 크나큰 욕심이 오늘도 나를 끝없는 배움의 열정으로 살아 있게 하고, 사람들과 연대하게 하고, 좁은 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31쪽) 그러나 그의 ‘치열함’은 80년대의 혁명운동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사람은 이렇게 그 자체로/사람을 설레게 하고/사람을 성찰하게 하고/내 안의 아름다움을 밝히게 하는 구나//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려면/내가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어야겠구나…”(21∼22쪽).

그가 『오늘은…』 발간 뒤 인터뷰 한 내용은 그 ‘다름’을 짐작케 한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을 시작해야 할 때… 그 혁명이란 사회제도를 바꾸는 차원을 넘어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운동… 70∼80년대는 ‘옮음’에 대한 신념, 즉 ‘정의’가 사회적 힘이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움’이 사람을 움직이는 시대…”(『문화일보』 99년 9월 21일자 19면).

‘평등’, 즉 ‘고르게 부자인 삶’을 꿈꾸던 혁명가는 어느덧 “고르게 덜 벌어 덜 쓰는 삶”을 주창하는 생태운동가가 되어 있다. 그는 또 “친생태주의, 친여성주의, 영성주의 등이 ‘한 생각’을 이룬” ‘몸철학’을 주창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한겨레21』 268호, 98년 9월 3일). 감옥에서 “소년수들을 스승삼아…그들의 노래, 말법, 몸짓, 표정까지 따라 하며 신세대를 이해하고자 서투른 몸부림을 계속”(127∼128쪽)하고 있는 ‘개화한 중년’이다. 90년대 초 실존 사회주의권 몰락 뒤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온갖 ‘진보’를 한몸에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해탈’에서 ‘신세대’까지 그의 포괄 범위는 참으로 넓고 그가 풀어낸 정갈한 글줄은 다 좋은 말이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오늘은…』을 읽는 동안 내 심사는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왜일까? “『노동의 새벽』을 읽으며 속으로는 섬뜩해 하면서도 겉으로는 높이 평가하던 내가, 이제 (그가 감옥에서 펴낸)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으며 속으로는 감동하면서도 겉으로는 ‘박노해도 갔군’이라고

빈정거린다”(『이코노미스트』 506호, 99년 10월 12일)고 고백했던 어느 교수의 ‘분열적 심리’와 같은 것일까.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80년대 이후 박노해의 삶의 궤적을 떠올리면 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나 ‘뭔가 이상함’에 대해 몇마디 해야겠다. 무례함을 용서하길!

“세상 변화를 빨리, 민감하게 알아야겠는데 공부를 해도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주식투자는 분명 투기적 성격을 띠고 있고 불건전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기업이 돌아가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종의 필요악이죠. 돈이 한 푼도 없지만 여유가 생기면 빌려서라도 100만 원 정도 해보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학습이죠.”(『이코노미스트』 506호) 생태와 영성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그가 ‘주식투자’를 하고 싶단다.

출옥 뒤 그가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의 <정범구의 세상읽기>에 출연했을 때,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얼마 전 같은 텔레비전 방송의 <심혜진의 파워인터뷰>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나는 차마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볼 수 없어, 그만 끄고 말았다.

좀더 직선적으로 얘기해야겠다. 나는 그의 ‘이기는 운동’ ‘돈되는 운동’ ‘즐거운 운동’이라는 세가지 운동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지적한 새로운 운동원칙이라는 게 지금 한국사회 시민사회운동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문학적 비유라고는 하지만, ‘즐거운’ 운동은 몰라도 ‘이기는 운동’ ‘돈되는 운동’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그가 요즈음 ‘민중’이나 ‘노동자’라는 말은 전혀 쓰지 않고, 대신 ‘국민’ 또는 ‘가난한 이웃’이라는 표현을 즐기는 것에 ‘혐의’를 두고 싶다.

뭔가 겉돌고, 들떠 있는 듯한 느낌. 유시민은 그의 ‘지나친 자기합리화와 자기 과시’을 지적했고, 시인 김정란은 그의 영웅주의적 수사학을 문제삼았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시작보다 결과예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는 박노해에게, 유시민은 “자꾸 큰 줄기의 이야기만 하려드는 게 걸리는 부분”이라며 “조금 더 자신의 문제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나는 내일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성을 찾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영성을 중시하는 박씨에게 또 “다양한 사회 가치중 정의와 평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중앙일보』 99년 8월 10일자, ‘박노해의 희망찾기’ 결산 좌담회).

나는 ‘노동자 시인’ ‘사회주의 혁명운동가’ 박노해가 21세기를 앞두고 ‘희망의 전도사’로 나선 것에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의 ‘나르시시즘’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한가지 부탁만은 하고 싶다. ‘빛고을의 피’를 자양분삼아 시작된 80년대 운동의 한 상징인 ‘박노해’라는 이름 대신, 이제부터라도 본명인 ‘박기평’으로 글 쓰고, 강연했으면 좋겠다. 옳고 그름을 떠나 80년대의 박노해와 지금의 박노해는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끝으로 그의 아름다운 시 한편을 그와 함께 읽고 싶다.

미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불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 정의가 없다면

가진 자 더 가진 이 세상에 운동이 없다면

나는 한바탕 쓰러지고 깨어져서야 알게 되었네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은 애당초 끝이 없다는 걸

그것은 내가 그만둘 수도 없고 그 누가 끝낼 수도 없다는 걸

그것들은 인생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구해야만 한다는 걸

그러니 나는 그것의 완성을 바라지 않네

그것이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도 않네

오직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즐기며 나아갈 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이 좋게 해나가려 애쓸 뿐

끝도 없고 완성도 없는 이 길에서

나는 오늘도 새순처럼 웃네

이렇게 아픔으로 이렇게 슬픔으로

(‘끝이 없는 길’ 전문, 96쪽)


책소개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이 책은 대학이 우리 사회를 학벌에 기초한 신분사회로 편성하고 판정하는 악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시각에서 쓰여진 현직 대학교수의 신랄한 교육현장 비판서이다. 대학개혁의 방법론으로 그간 제기돼온 ‘대학 평준화론’을 넘어, 대학을 기능단위로 해체하자는 대학해체론을 저자는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김동훈/바다출판사/8,000원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바람의 딸 한비야. 그녀는 지난 6년간 현대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전세계 65개국 남짓 오지를 찾아다녔던 오지체험가이다. 그가 이번에는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800km에 이르는 우리 땅을 49일간 두발로 걸어다니며 여행기를 썼다. 한비야/푸른숲/7,900원

겨울의 집 이 책은 3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린 소설이다. 해방 전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철포댁과 그의 후손들, 그리고 역사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는 다양한 이웃 사람들이 얽히면서 한 가족의 삶이 격동의 역사를 거쳐 현재로 녹아드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대환/실천문학/8,000원

복지와 이데올로기 이 책은 신우파, 중도노선, 사회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녹색주의 등의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복지 이데올로기를 끌어내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복지 축소의 와류를 헤쳐나갈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을 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빅 조지·폴 윌딩 지음/한울/12,000원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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