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1월 1999-11-01   2262

환자가 주인인 안성의 농민병원

21세기 대안의 삶을 찾아 3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

일생동안 아프지도 않고 병원에 갈 일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병원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일체의 인간적인 요소가 배제된 듯 싸늘하고 냉정한 분위기, 병을 치료하는 것은 심각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그런 엄격한 분위기가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프지 않은데도 병원에 일부러 찾아가는 일은 좀체 드물다. 병원은 몸이 아파야만 찾아가는 곳이다. 마지못해서 가는 곳이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가서도 유쾌한 기분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별로 드물지 않은 불친절하고 권위적인 의사라도 만나는 날에는 없던 병도 도질 지경이다. 질병이 사회적 환경의 귀결이라며 혁명에 목숨을 던진 노먼 베쑨과 같은 인물, 아니 그건 너무 특별하고 거창한 예라서 현실성이 없다면, 어린 시절에 보던 왕진가방을 들고 환자를 찾아 분주히 달리던 동네 병원의 이웃 아저씨 같은 미더운 의사는 이제 만날 수 없는 것인지.

경기도 안성은 시로 승격된 지 몇 년 안된 인구 13만의 조그만 소도시다. 많은 주민들이 인근 농촌에서 농업, 축산업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고 얼마 전까지 ‘읍내’라고 불리던 시내에는 농기구상 등 농촌지방 소읍의 풍경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매 2일, 7일이면 5일장이 열려 떠들썩한 장날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다.

안성시내에 있는 안성농민의원, 안성농민한의원. 겉모습만으로는 여느 병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병원 문턱을 넘으면서 마주하게 되는 “환자권리장전”은 방문객의 가슴을 자못 설레게 만든다.

환자는 투병의 주체자이며 의료인은 환자를 치유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환자는 이윤추구나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가운데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 모든 환자는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관한 현재의 치료계획 및 이후에 관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으며 검사자료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모든 환자는 자신에게 유해한 생활환경, 작업환경을 개선토록 국가 및 단체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대략만 인용한 이 글은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이러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다. 곰곰이 되짚어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임에도 이 말들이 그저 황송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한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이 환자를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일 것이다.

안성농민의원·안성농민한의원은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보게 만들면 만들었지 도저히 존엄한 인간으로 보기 힘들게 하는 지금의 의료현실, 이를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묵묵히 그러나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병원을 설립한 것은 갸륵한 뜻을 가진 개인이 아니고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이다.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의 출발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성군 고삼면 가유리의 마을 청년회가 진료소 유치에 나섰고 농민들의 건강에 관심이 높았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기독학생회가 주축이 된 의료인들이 이에 호응해 주말진료에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주말진료를 통해 신뢰를 쌓은 주민들과 의료인들이 1992년 11월, 공동 출자한 ‘안성한의원’의 문을 먼저 열고 1994년 4월 253명이 1억 3,000만원을 출자해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을 세우고 5월에 안성농민의원이 문을 열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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