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099

시민사회와 호주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호주제- 폐지

현행 호주제에서는 외도하여 낳은 핏덩이 아들이 열 명의 딸과 처보다 승계순서가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해마다 3만 명의 여 태아가 대를 잇지 못해 ‘쓸모없다’는 이유로 감별 뒤 살해당하고 있다.

고은광순 한의사·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운영위원

새천년을 맞기 전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법 중 하나가 바로 호주제이다.

호주제는 여성에게 사종지도(四從之道)를 강요한다

호주의 승계 순서는 남편→아들→손자→미혼의 딸→처로 되어 있다.‘남편의 씨앗으로만 낳았다’고 생각하는 아들·딸·손자를 ‘피가 섞이지 않은 남’, ‘타성(他姓)’인 아내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외도하여 낳은 핏덩이 아들이 10명의 딸과 처보다 승계순서가 앞선다. 가족의 화목, 혼인의 신성함보다 남계혈통 대잇기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남자만 씨앗을 생산한다는 무식과 여성을 ‘도구’로 보는 법감정이 행간에 들어 있다.

‘모든 남자는 모든 여자에 앞선다’는 호적감정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의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 이등인간이라고 규정한다.

호주제는 여성에게 남편집안 귀신이 되기를 강요한다

결혼이란 성숙한 남녀가 양가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야 하지만 민법은 결혼과 동시에 여성이 남편(집안)에 입적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부가입적:夫家入籍). 딸은 법적으로 ‘출가외인’이 되는 것이다. 명절 등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것은 남성중심의 과거지향적 문화로 고착되어왔고 가부장제는 여성의 정체성을 박탈하는 억압의 문화를 만들어왔다(보지도 못한 시할아버지의 제사가 낳아준 부모의 생신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이런 이유들로 해마다 3만 명의 여 태아가 대를 잇지 못한다는 등 ‘쓸모없다’는 이유로 감별 뒤 살해당하고 있다(지난 10년간 감별 후 살해당한 여 태아의 수는 26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기초자료:통계청. 참고로 4년간의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국군의 수는 13만.)

호주제는 입적·제적·복적 과정에서 차별을 만들어낸다

결혼시 여성은 제적과 입적 과정을 밟아야하고, 이혼하면 제적되고 친권과 양육권을 부여받아 함께 사는 자녀와는 주민등록상 ‘동거인’일 뿐이다. 또 재혼할 경우 남성의 자녀와는 달리 여성의 자녀는 새로운 가족의 호적에 입적될 수 없으며 입양의 형태를 취하더라도 새아빠 혹은 형제들과 성씨가 달라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호주 중심의 호적법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발생하는 현대사회에서 심각한 차별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호주제 폐지를 강력히 반대하는 보수전통주의자들은 아직도 “남자만 씨앗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전래의 미풍양속인 가(家-남성혈족중심의 가문)를 계승하고 제사를 계승시키는 역할을 하는 호주제는 의미있는 것”이라 말한다.

국민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문서인 호적의 기준자에 불과한 호주는 ‘직계비속남자’를 우선순위에 둠으로써 한 가정의 주인(戶主), 가문의 전수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호주제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 및 남녀평등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헌법이념을 원초적으로 짓밟는 악법이다.

호주중심의 호적법은 남녀차별을 관행화하며 권위주의적이고 종적인 사고를 낳아 모든 차별과 부조리에도 둔감해지게 하는 역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진보를 방해한다. 북미, 유럽국가의 92.3%가 부모양계 혈통주의를 택하고 있으며 호주제는 한국에만 남아 있다. 부계혈통주의로는 양성평등한, 시민의식이 발달한 민주국가를 결코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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