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6월 1999-06-01   1353

긴급체포권 남용 검사 고발한 운전기사

긴급체포권 남용 검사 고발한 운전기사

시내버스가 승객을 수십명 태운 채 과연 뺑소니를 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럴 수 있다면 이후 승객으로부터 있을지도 모르는 신고나 고발을 어찌 감당할 것이며…”.

“시내버스가 승객을 태운 채 뺑소니를 쳤다면 약 6~700미터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승객의 승하차는 어떻게 할 것이며…”.

“시내버스는 대형차량이며 상대방 차량은 소형 승용차(소나타Ⅱ)인데 순발력이나 속도면에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겠습니까?”“본인이 아무리 지능지수가 미천하다 하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정황증거가 입증하듯이 경미한 접촉사고에 뺑소니를 친단 말입니까! 모름지기 뺑소니는 감당할 수 없는 대형사고일 때와 아무도 목격자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가능한 것 아닙니까?”.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발분지설

필자가 근래 읽은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직후에, 하늘을 찌를 듯한 분기(憤氣)를 누르고 단호하게 자기 결심을 밝힌 글을 발분지설(發憤之說)이라 하거니와 … 주문왕은 유리에 억류되어 있으면서도 분기함으로써 ‘주역’을 지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를 오도 가도 못하면서도 분기함으로써 ‘춘추’를 지었으며 … 손빈은 다리를 잘리고도 분기함으로써 ‘손자병법’을 찬술하였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귀양가고도 분기함으로써 ‘여씨춘추’를 남겼다. 이들은 모두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낼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어 앞날에다 희망을 걸어 본 것이다.(이윤기, 『무지개와 프리즘』)’역사의 아이러니일 터이다. ‘인간의 기적’은 이렇듯 극한의 상황이 빚은 상승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니 말이다. 초입부터 거창하게 고전을 인용한 뜻 또한 비록 크기와 무게는 다를지언정 결코 가볍지 않은 한 시민의 ‘발분지설’ 때문이다.

서두에 옮겨 놓은 ‘대통령께 보내는 탄원서’의 주인공인 시내버스 운전기사 조인준 씨(63세). 사실이 그러하다면 분명 억울한 일임에 틀림없는데, 아무튼 25만 원 상당의 경미한 접촉사고가 어떻게 뺑소니로, 그 해명과정이 어떻게 공권력의 횡포로 발전하였는지 알아보자.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접촉사고는 1996년 6월 15일 밤 10시 30분경 아현동 굴레방다리 인근에서 발생했다. 조씨에 따르면 당시 승객 20여명을 태우고 신촌에서 서대문 방면으로 약 시속 65km로 운행하던 중 옆 차선에서 달리던 택시가 급차선 변경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급제동을 했는데 이때 뒤따라오던 승용차 우측 앞 타이어와 버스의 좌측 끝부분 범퍼를 스친 접촉사고가 났다. 사고 원인 또한 승용차의 안전거리 미확보와 전방주시 태만을 지적했다.

반면 피해승용차 운전자 김모 씨의 진술은 약간 다르다. ‘4차선에서 주행 중이던 버스가 3차선으로 갑자기 차선을 변경한 후 다시 2차선으로 끼어들면서 버스 후미로 차 앞부분을 긁고 그냥 가 100m 가량 따라가 차를 세운 후 서대문경찰서에 신고, 사고를 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시 발생상황 진술서에 기재된 피해차량의 주행속도는 20km였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다. 거의 동시에 출발한 시속 65km의 차와 시속 20km의 차가 어떻게 부딪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 경찰이 참여한 현장검증을 마친 후 사고처리는 조씨의 진술이 인정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시내버스 운전자가 뺑소니를…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당시 모방송국 기자로 자칭하는 사고 목격자가 16일 아침부터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면 뺑소니는 빼주겠다’는 등 협박성 전화를 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은 급변했다. 사건을 맡은 정모 경장은 ‘전날의 푸근한 표정은 간 데 없고’ 조씨에게 일방적으로 합의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에 조씨가 항의하자 정 경장은 ‘당신의 운명은 내 펜대 놀리기에 달렸다’며 진술서 수정까지 요구했다.

그런데 더 큰 사단은 불안한 마음에 경찰서 옆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민원실을 방문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교통담당관에게 사건개요를 설명하자 시달지침에 따라 물류피해가 70만 원 미만일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며, 담당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훈계한 것이다.

괘씸죄를 걱정했던 조씨의 우려대로 ‘경찰서에 들어서자 정 경장은 적개심에 차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참을 노려보다가 욕설을 퍼붓더니 신문조서를 찢어버리고 다시 조서를 꾸미기 시작, 엉뚱하게도 뺑소니를 부각’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장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다. 표적단속을 걱정한 회사의 만류에 부딪친 것이다. 접촉사고는 25만 원의 합의금으로 마무리지어졌다.

이후 사건은 경미한 접촉사고를 넘어섰다. 정년퇴직 후 회사의 부담에서 벗어난 조씨는 본격적으로 사건 조작과 편파처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수사 요구에 검사실에서 체포

98년 1월 20일 서대문경찰서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사건조작과 편파처리 부분은 없으나 합의를 종용하고 민원을 야기하였으니 조치하겠다는 내용. 다시 법무부와 대통령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냈다. 답변은 역시 ‘부당한 일처리를 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어 공람종결한다’는 것.

이에 조씨는 재수사를 요청하며 담당 검사를 만나려 하였으나 안되자, 상급기관인 부부장 검사 조모 검사를 찾아가 의도적인 사건 취하 강요를 요구하는 이의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씨에 의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긴급체포되기 전까지 재수사는커녕 ‘내용도 없고 형편없구만. 더구나 증거도 없잖아’, ‘정황증거란 말 쓰지마, 뭘 안다고 건방지게’, ‘컴퓨터를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어’, ‘나 바쁜 사람이야! 당신, 나한테 지금 시비하는 거야’, ‘왜 자꾸 전화질이야. 우리가 연락할 때까지 가만있어!’라는 등의 무시를 당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8일 오전 11시, 세 번째 방문한 조 검사실에서 조씨는 ‘너를 긴급체포하겠다. 죄명은 뺑소니다. 끌고 가!’라는 명령과 함께 체포되어 28시간 동안 구금됐다. 조 검사는 또 기소유예되었던 도로교통법 위반 사실을 약식기소했다.

“긴급체포는 현행범 내지는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는 자, 또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하였거나 음모한 사실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네까짓 게 뭘 알어, 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하더군요.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하니 그럴 필요없다며 휴대폰까지 압수했습니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70조, 제200조 2, 3항,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 감금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인권유린입니다.”

병은 알려야 고칠 수 있다

조씨는 현재 조모 검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는 민원을 제기하는 국민에 대해 적정한 처리를 해줄 의무가 있으며, 이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할 의무 또한 있습니다. 수사기관에 대해 불신과 민원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적정한 민원처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의제기에 어느 기관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최초 수사단계에서도 묵살당했고, 검찰청에서도 마찬가지로 주행속도에 따른 사고경위, 뺑소니 여부, 처리경찰의 편파수사 여부 등에 대해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의절차를 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사람을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로 긴급체포한다는 것은 끈질긴 민원제기에 대한 보복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수사기관인 검사가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공권력을 위법하게 사용하는 것을 묵과한다면 더 이상 공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조씨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지난 3년 동안의 과정에서 공권력과 언론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과 같이 ‘밑바닥 생활전선에서 허덕이는 보잘 것 없는’ 시민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병은 알려야 고칠 수 있다’는 믿음때문이었다고 한다.

손정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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